은행원 ‘억 단위 연봉’ 평균 시대, 이익 원천은 예대마진
금리 인상 기조 수혜 입은 금융사, 사회적 책임 이행 촉구
“서민 고통 분담하는 상생금융 실천해야” 한목소리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은행권에 불어닥친 표제는 ‘개혁’과 ‘경쟁촉진’이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高)에 처한 위기를 금융권 혁신이라는 처방으로 풀어보겠다는 정부 의지로 볼 수 있다. 현재 정부와 민간이 참여한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를 열고 국가 경제 활력을 불어넣을 다양한 방안을 논의 중이다. 이 과정 중 당국은 수출경기 하락과 가계부채 최고치라는 당면한 현실을 풀어낼 우선 과제로 지주차원의 체질 개선을 주문하고 있다. 본지는 민간기업이라는 특성과 공공재라는 이질적인 조합이 충돌하는 과정 속에서 숙의해야 할 논점을 전문가 의견과 함께 3회에 걸쳐 점검한다. <편집자 주>
지독하리만큼 길었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엔데믹 상태에 접어들었지만, 그 여파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분위기다. 지난 3년간 지속된 국내외 경제 불확실성은 가계 및 기업의 부채는 물론 국가부채까지 사상 최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에 주요 시중은행을 비롯한 금융사들은 매년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하며 일명 본인들만의 ‘돈 잔치’를 즐겼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수 천만원에 달하는 성과급을 포함한 연봉은 ‘억 소리’가 났으며, 주주환원이라는 명목하에 실시한 고배당은 외인 및 기관 투자자들의 배만 불렸다는 여론이 주를 이뤘다.
문제는 순익 증대의 실질적 배경이 금리 인상 기조에 의한 일종의 ‘횡재성 성과’라는 비난을 피해가기 어렵다는 점이다. 주요 금융지주사의 이자이익이 전체 영업익의 85%를 차지했다는 점은 예대금리차를 이용한 상술에 치중한 현실을 반증하는 증거로 제시됐다. 금융사의 역대급 성과 뒤엔 고금리에 내몰린 서민들의 눈물이 있었다는 말이 나돌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은행은 공공재’ 발언 이후 금융사의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론은 더욱 대두됐다. 민간기업이지만 정부의 인허가로 보호받는 시장인 만큼 사실상 과점체계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인식이다. 이에 소비자시민단체 등은 앞다퉈 고물가, 고금리, 강달러 3고(高)시대 어려움을 겪는 서민들을 위해 금융권이 앞장서 상생 금융을 실천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 4대 시중은행, ‘억대 연봉’ 평균 시대…삼중고 속 성과급 ‘펑펑’
지난해 4대 시중은행은 총 11조4717억원의 순익을 올렸다. 지난 2020년 7조7711억원, 9조8937억원에 이은 또 한 번의 역대 최대 실적 경신이다.
이에 따라 임직원의 평균 급여는 모두 억대로 올라섰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각사 연결 기준 사업보고서와 연차보고서 등에 따르면 지난해 4대 시중은행의 임직원 1인당 평균 보수액은 모두 1억원을 넘었다.
세부적으로 하나은행이 1억1700만원으로 가장 많았으며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이 각각 1억1600만원, 1억1300만원을 기록했다. 지난 2021년 4대 시중은행 중 유일하게 억대 연봉 대열에 오르지 못했던 우리은행도 지난해에는 1억500만원으로 올라섰다.
NH농협은행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다. 감사보고서를 통해 확인한 지난해 농협은행 임직원의 1인당 평균 보수액은 1억600만원(별도 기준)이다. 당기순이익은 4대 시중은행보다 1조원 이상 낮지만 연봉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이 같은 억대 연봉은 고액의 성과급에서 비롯됐다는 게 금융권 시각이다.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의 자료를 바탕으로 공개한 ‘5대 시중은행 임직원 전체성과급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은행은 임직원에게 평균 2300만원의 성과급을 지급했다. 신한은행과 하나은행, 농협은행도 각각 1900만원, 1400만원, 900만원의 성과급을 줬다.
KB국민은행은 지난해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지만 지난 2020년과 2021년 5대 시중은행 중 가장 높은 금액인 각각 2200만원, 2300만원을 지급한 만큼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한 지난해의 경우 이보다 많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은행을 주요 계열사로 둔 금융지주사는 역대 최대 실적을 바탕으로 고배당 정책을 추진했다. 배당성향 30% 달성을 목표로 매년 배당을 늘려간 결과, 지난해 기준 4대 금융지주의 배당성향은 최대 27.50%(하나금융지주)까지 올라섰다. 우리금융과 KB금융, 신한금융 역시 각각 26.19%, 26.15%, 23.54%를 기록했다.
금융지주사 측은 이익을 주주들과 나누기 위한 차원의 결정이라는 설명이지만 일각에서는 국내 금융사의 외국인지분율이 70%에 달하는 상황에서 외인과 기관투자자의 배만 불린 측면이 있다. 지난해 말 기준 4대 금융지주의 외국인 지분율은 △KB금융 73.19% △하나금융 70.08% △신한금융 62.27% △우리금융 39.73%에 달한다.
때문에 지난해 고액 성과급·배당성향 발표 후 여론은 은행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질타가 주를 이룬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회장은 “최대 실적에 대한 성과를 나누겠다는 목적 아래 고배당 정책이 진행되고 있지만 사실상 이익의 원천은 소비자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냐”며 “어떤 방식으로든 소비자들에게 환원하는 것이 우선시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병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주주환원율이 단기적으로 급격하게 상승하면 기존 채권자의 부를 주주에게 이전하는 효과가 나타나는데 은행지주 채권자의 상당수가 일반 국민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며 “특히 건전성 측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스트레스 테스트 등 근거를 통해 배당성향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대출자는 모르는 깜깜이 가산금리…‘횡재세’ 도입 논의까지 잇따라
은행의 이자이익을 증대시킨 예대마진의 기본은 수신금리는 낮고 여신금리는 높다는 점이다. 대부분이 고정금리인 탓에 금리 변동에 단발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 예적금과 달리 대출은 변동금리가 전체의 70% 가량에 달한다.
특히 고객들은 은행의 대출금리가 어떻게 산정됐는지 알 수 없어 금리인하요구권을 활용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내 신용도 등급에 따라 책정된 금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있어야만 금리인하요구권을 명확하게 요구할 수 있지 않을까”라며 “더 나아가 중장기적으로는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의 아파트 분양 원가 공개처럼 마진율 공개를 통한 은행 간의 경쟁이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고 의견을 표했다.
은행별 대출금리의 차이는 각사별로 책정하는 가산금리에서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대출금리는 대출기준금리(자금조달금리)에 은행별 가산금리를 더한 뒤 개인별 실적 충족 등 조건에 의한 우대금리를 제하는 방식으로 산정된다.
그러나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병덕 의원의 분석에 따르면 가산금리 항목에 은행이 부담해야 하는 예금보험료, 지불준비금, 예치금, 교육세, 출연료 등을 포함시켜 지금까지 차주에게 부담을 전가해왔다는 지적이다.
민병덕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5개년간 5대 시중은행이 대출자에 부과해온 법정 비용은 총 10조2098억원이다. 세부적으로 △예금보험료 2조1994억원 △지급준비금 1조1822억원 △교육세 8186억원 등이 있으며, 기금 출연료 명목으로 △신용보증기금 2조1236억원 △기술보증기금 1조2204억원 △지역신용보증재단 3438억원 △주택금융신용보증기금 2조3218억원 등을 떠넘겼다.
지난해 국감에서부터 이 같은 지적이 이어진 데 따라 금융감독원은 즉시 대출자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예금보험료와 지급준비금을 대출 이자에 포함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민병덕 의원은 “은행 입장에서는 예금자나 대출자나 똑같은 고객이라지만 고객 입장에서는 다른 사람”이라며 “이에 최근 5년 이내의 부당한 이자를 대출자에게 환급하는 등의 ‘대출금리부담완화’를 위한 법안을 대표발의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민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경제위기대응센터’와의 논의를 통해 은행에 일종의 횡재세를 부과하는 ‘은행의 사회적 책임법’을 함께 발의했다. 이는 기준금리 급상승기(1%포인트 이상)에 은행 이자순수익이 직전 5년 평균의 120%를 초과하는 경우 초과금의 10%를 서민금융진흥원(서민자활계정)에 출연하게 하는 것으로 이른바 ‘은행 초과수익 십일조 법안’으로 일컬어진다.
기업이 비정상적으로 유리한 시장 요인(외부 사건)으로 인해 부당하게 높은 수익을 올린 것으로 간주되는 부분에 세금을 부과하기 위해 고안된 횡재세는 이미 유럽연합과 영국 등에서 일부 도입된 방식이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은 EU의 횡재세 권고안을 적용할 경우 지난해 4대 은행이 납부해야 할 횡재세액을 7930억원으로 추정했다.
◆ 사회적 책임 이행 촉구 ‘한목소리’…소비자 상생 요구되는 금융권
지난해부터 이어진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수혜를 입은 금융권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과 금융당국은 물론 여야당, 소비자시민단체 모두가 한목소리로 금융사의 사회적 책임 이행을 촉구하고 나섰다.
시중은행을 비롯한 대부분의 금융사는 민간기업이지만 정부의 인허가를 통해 이뤄지는 산업 특성상 사실상의 과점체계를 인정받고 보호받는 시장인 만큼 공적 책임을 다해야 하는 부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금융사가 행할 수 있는 다양한 사회적 책임 이행 방안이 거론되고 있지만 대표적으로는 대출자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시중은행의 노력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다만 은행이 민간기업인 만큼 지나친 개입은 자본주의 시스템에 반하며, 관치라는 지적도 있지만 공공성이 우선 돼야 한다는 주장이 주를 이룬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회장은 “신용회복위원회와 함께 채무 면제나 선제적 부채 탕감 등의 제도를 추진해 고금리 상황에서 피해자를 구제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을 추천한다”며 “이는 사회적 비용이 적게 드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만큼 이익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관계자 역시 “변동금리 차주가 고정금리로 갈아타 이자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의 확충을 제안한다”며 “일각에서 제기하는 도덕적 해이 발생은 크지 않으리라고 예상되는 만큼 은행권이 앞장서 채무조정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한다”고 의견을 더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비용 지출에 따른 효과가 불명확하다는 특성상 단순히 금융사의 사회공헌 기금 확대 등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는 방안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본다”며 “연체 없이 이자를 납부한 대출자에게 이를 환급해주는 방안을 마련하는 등 금융권 수익의 원천인 대출자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유수정 기자 / crystal@ceoscore.co.kr]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