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반도체 보조금, 서방 기업만 퍼주기…대규모 공장건설, 삼성·SK는 언제 받나

시간 입력 2024-01-08 07:00:00 시간 수정 2024-01-05 17:36:34
  • 페이스북
  • 트위치
  • 카카오
  • 링크복사

미 상무부, 마이크로칩에 약 2131억원 보조금 제공키로
‘자동차·국방 분야 필수 부품’ MCU 생산 설비에 투자
첫 보조금 수혜 기업은 영국 방산 업체…인텔도 물망
미국·서방 기업에 집중 조짐…삼성·SK, 혜택 못 받나 우려

미·중 반도체 갈등. <그래픽=권솔 기자>

미국이 자국 반도체 업체에 ‘반도체 지원법(Chips and Science Act)’에 따른 대규모 보조금을 지급키로 했다. 영국 방산 업체에 이어 두 번째다. 얼마 전엔 미 정부가 세계 최대 반도체 업체인 인텔에 막대한 보조금을 주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당장 바이든 미 행정부가 미국 및 서방 기업에만 보조금을 퍼주고, 정작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약속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K-반도체를 홀대 하고  진영은 기대 수준에 못 미치는 지원을 받게 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5일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현지 시간으로 4일 미국 상무부는 자국 반도체 업체 마이크로칩테크놀로지(마이크로칩)에 1억 6200만달러(약 2131억원)의 보조금을 제공하는 예비거래각서(PMT)를 체결키로 했다고 밝혔다.

마이크로칩은 전기차를 비롯한 자동차, 가전 제품, 비행기, 항공우주, 국방 분야 등에 주로 사용되는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 머추어 노드(40㎚ 이상) 등 레거시(구형) 반도체를 생산하는 업체다.

마이크로칩의 반도체는 최첨단 제품은 아니지만 안정적인 구동이 필수인 환경에서 주로 사용된다. 특히 미국 방위 산업에서 상당수 활용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스(NYT)는 “마이크로칩은 방산 기반의 반도체를 공급하는 미 최대 반도체 업체 중 하나다”며 “국가 경제에 중요한 산업에서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다”고 평가했다.

마이크로칩이 받은 보조금 가운데 9000만달러(약 1184억원)는 미 콜로라도주 스프링스에 위치한 반도체 제조 시설 현대화에 투입될 예정이다. 나머지 7200만달러(약 947억원)는 미 오리건주 그레셤에 있는 반도체 제조 시설 확장에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마이크로칩테크놀로지 오리건공장. <사진=마이크로칩테크놀로지>

시설 현대화 및 확장이 완료되면 마이크로칩의 반도체 생산량은 3배 가까이 늘어날 전망이다. 미국은 해외 공급망에 대한 의존도를 크게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 상무부는 “마이크로칩에 대한 보조금 지원으로 MCU 및 기타 특수 반도체 생산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며 “향후 900개 이상의 건설 및 제조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다”고 밝혔다. 이어 “코로나 팬데믹 기간 MCU의 부족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에 1% 이상의 영향을 미쳤다”며 “바이든 행정부의 마이크로칩에 대한 투자는 레거시 반도체의 공급망 안정화를 이뤄 미국 경제 발전과 안보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고 덧붙였다.

미 정부 고위 관계자들의 긍정적인 평가도 뒤따르고 있다.

라엘 브레이너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성명을 통해 “마이크로칩이 제조하는 반도체와 MCU는 미국 제조업 내 광범위한 소비재 및 방산 제품에 필수적인 부품이다”며 “이들 반도체를 위한 이번 투자는 수백만명의 미국 소비자와 기업에 영향을 미치는 공급망에 대한 민간 투자 중 일부다”고 밝혔다.

미국이 반도체 지원법에 따른 보조금을 지급키로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미 상무부는 지난해 12월 영국 방산 업체 BAE시스템스 뉴햄프셔공장에 최초로 보조금을 지급키로 했다. 지원 규모는 3500만달러(약 460억원) 수준이다. BAE시스템스는 이번 투자를 발판으로 F-35 등 미군 정예 전투기에 사용되는 핵심 반도체 생산 설비를 현대화 한다는 방침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세계 최대 반도체 업체 인텔이 바이든 행정부의 보조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지난해 11월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정부가 군사용 반도체 생산을 늘리기 위해 인텔에 수조원을 투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 정부는 인텔이 미 애리조나주에 짓고 있는 새 공장에 군사용 반도체 생산 시설을 마련한다는 구상이다”며 “이를 위한 지원 규모는 최대 40억달러(약 5조2612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미국이 인텔과 손잡고 군사용 반도체 생산 확대에 나선 데에는 자국 내 공급망을 강화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아시아 등 해외에서 공급 받는 반도체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미국 내 인텔 공장에 보안 시설을 마련하고, 군사용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확보한다는 복안이다.

특히 시장에서는 미국이 인텔에 지원하는 재원 규모가 얼마나 될지 주목하고 있다. WSJ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이 반도체 지원법에 따른 보조금 527억달러(약 69조3058억원)에서 군사용 반도체 생산 설비 구축을 위한 자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도체 지원법은 미국 내 반도체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2022년 8월 발효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미 현지에 반도체 생산 시설을 짓는 반도체 업체들에게 2027년까지 527억달러의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한 반도체 지원법에 서명한 바 있다.

반도체 지원법에 따른 보조금은 크게 두 분야로 나뉜다. 미국 내 반도체공장 설립 지원에 390억달러(약 51조2889억원), 연구개발(R&D)·인력 육성 지원에 132억달러(약 17조3593억원) 등이다.

당장 군사용 반도체 생산 확대를 위해 인텔에 지원되는 자금은 390억달러에 달할 가능성이 크다. 사실상 반도체공장 설립 보조금의 10%에 달하는 자금이 인텔에 지원되는 셈이다.

삼성전자 오스틴공장. <사진=삼성전자>

미국의 이같은 행보에 여타 반도체 업체들은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미 정부가 미국 및 서방 기업에 자금을 몰아주려는 듯한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에서 반도체 지원법을 겨냥해 미 당국에 지원을 요청한 업체들은 수백여 곳으로 파악된다. 만약 미국이 자국 기업 위주로 보조금을 지원한다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비롯한 다수의 반도체 업체들은 자칫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약속하고도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할지도 모른다.

당장 미국에 대규모 공장 증설 계획을 발표한 삼성·SK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전자는 미 텍사스주에 향후 20년 동안 250조원을 투자해 반도체공장 11곳을 짓기로 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추진하고 있는 반도체 초격차 전략과도 일맥상통한다. 이 회장은 2019년 4월 당시 ‘시스템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하고, “메모리 반도체에 이어 파운드리를 포함한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확실히 1등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022년 7월 바이든 대통령과의 화상 회담에서 300억달러(약 39조4890억원) 규모의 투자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SK는 반도체 생태계 조성에만 150억달러(약 19조7415억원)를 쏟아 붓는다는 구상이다.

이렇듯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미국 내 반도체공장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미 반도체 지원법에 따른 보조금이 미국 및 서방 기업에 편중될 경우, 당초 예상했던 수준을 하회하는 보조금을 받게 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이 확산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몇몇 반도체 기업들은 아예 지원금 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한편 미 정부는 반도체 지원법에 따른 보조금 지원 대상 업체를 추가 발표할 예정이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러몬도 장관은 “현재 570개 이상의 기업이 반도체 지원법 프로그램에 관심을 표명했다”며 “올해 약 12차례의 보조금 지원 발표가 이뤄질 계획이다”고 밝혔다.

미 상무부도 “올 한해 동안 추가 PMT 발표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