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노란봉투법’ 시행… “하청 노조 교섭 요구 거세진다”

시간 입력 2026-03-10 16:57:19 시간 수정 2026-03-10 16:5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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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 “6개월 간 준비 끝 노란봉투법 시행”
사용자 범위 및 노동 쟁의 개념 대폭 확대
불법 행위 대한 기업의 손해 배상 청구 제한
반도체·가전 등 산업계, 노사 갈등 심화 우려
주요 기업, 노란봉투법 따른 대책 수립 박차
정부 “제도적 지원 통해 노란봉투법 보완”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법률’ 시행 첫날인 10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에서 열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투쟁 선포대회에서 조합원들이 행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른바 ‘노란봉투법’이라 불리는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법률’이 10일부터 본격 시행됐다. 사용자 범위와 노동 쟁의 개념을 확대하는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서, 재계는 당장 수많은 협력 업체와 하청 업체의 교섭 요구가 빗발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경영 활동이 위축되고 산업 경쟁력이 저하될 것이란 위기론이 확산하는 가운데, 주요 기업들은 현장의 갈등과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그러나 초기 법 적용 및 해석에 빈틈이 여전히 많은 터라 당분간 혼선은 불가피해 보인다.

고용노동부(노동부)는 노란봉투법이 6개월 간 시행 준비 기간을 거쳐 이날부터 본격 시행된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서울 여의도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에서 열린 창립 80주년 기념식에 보낸 영상 축사에서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하청 노동자가 원청과 직접 교섭하게 됐다”며 “대립과 갈등 대신 대화와 타협으로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노란봉투법은 사용자와 노동 쟁의 개념 등을 규정한 2조와 노조 활동 관련 손해 배상 청구 및 배상 책임을 다룬 3조 등을 골자로 하는 개정 법률이다.

먼저 원청 사용자 입장에서 교섭 대상이 기존보다 크게 늘었다. 사용자 범위가 ‘협력 업체 근로자의 근로 조건에 대해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로 재정의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원청 업체와 직접적인 계약을 맺지 않은 하청 업체도 원청에 교섭을 요구하거나 파업에 돌입할 수 있다.

노동 쟁의 범위는 기존 ‘근로 조건의 결정’에서 ‘근로 조건의 결정과 근로 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 경영상의 결정’으로 확대됐다. 이는 해외 투자나 공장 증설 등 과정에서 근로자 지위 또는 근로 조건의 실질적·구체적 변동을 초래하는 정리 해고·구조 조정 등의 경우까지 모두 아우른다.

또 불법 파업 등 쟁의 행위로 손해가 발생했을 때 손해 배상 책임을 파업 참가자의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산정하도록 제한됐다. 이에 기업이 불법 행위를 한 노동자에 손해 배상 소송을 하기 어려워졌다.

‘노란봉투법’ 시행 첫날인 10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에서 열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투쟁 선포대회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날 노란봉투법이 본격 시행되자마자 원청을 상대로 한 협력 업체와 하청 업체들의 교섭 요구가 빗발치는 모양새다.

한국노총,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등에 따르면 이날 하청 노조들은 노란봉투법 시행에 맞춰 원청에 교섭 요구 공문을 발송하고 있다. 앞서 공문을 발송한 하청 노조들은 이날 재차 공문을 발송했고, 일부는 교섭 단위 분리도 신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교섭을 요구하는 협력 업체와 하청 업체 규모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민주노총의 경우 900여 개 사업장에서 14만명 규모의 조합원들이 원청을 상대로 단체 교섭을 요구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를 두고 노동계는 우리나라가 노동 존중 사회로 한걸음 더 나아가게 됐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그러나 크나큰 사회적 혼란이 초래될 것이란 우려도 상존한다.

우선 사용자가 누구인지 불분명하다는 지적이다. 원청 업체와 근로 계약을 직접 맺지 않은 하청 업체도 원청을 사용자로 볼 수 있도록 정의만 바꾸다 보니, 기존 근로기준법과 상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근로 계약 관계에 있는 당사자’ 간에 단체 교섭 및 단체 협약 등이 가능하다. 그러나 노랑봉투법으로 인해 이같은 규정에 허점이 생겼다.

노동 쟁의 대상이 되는 경영상 결정이 어디까지 해당하는지도 명확치 않다. 경영상 결정이 근로 조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사실상 경영자의 모든 결정이 쟁의 행위 대상으로 볼 수 있는 셈이다.

아울러 수준 이상으로 과도하게 손해 배상 청구를 제한할 소지가 생겼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일각에선 불법 쟁의 행위에도 면죄부가 주어진 것과 진배없다고 염려한다.

민주노총 조합원과 진보당, 사회민주당 의원 및 당원들이 2025년 8월 국회 본청 앞에서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 국회 본회의 통과를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에 대다수 기업들은 인사 및 법무, 노무 등 유관부서를 중심으로 노란봉투법에 따른 대책 수립에 힘을 쏟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기업들은 하청 노조의 교섭 요구에 대비해 교섭 창구 단일화 절차 매뉴얼을 마련하고, 하청 업체의 고충 처리 시스템 도입 지원을 검토 중이다. 실제 하청 노조의 파업이 발생할 경우, 생산 차질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경영계에선 사용자 범위, 쟁의 대상이 되는 경영상 결정의 범위, 교섭 창구 단일화 절차 등의 해석을 둘러싸고 원·하청 간에 적잖은 갈등이 초래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지난 8일 입장문을 내고 “일부 노동계는 사용자성 인정 가능성 여부와 무관하게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고, 사용자성이 인정되지 않은 교섭 의제에 대해서도 교섭을 요구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며 “향후 노사 간 분쟁은 심화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어 “노동계는 원청과의 단체 교섭에서 사용자성이 인정된 범위 외의 무리한 요구를 내세우거나 이를 관철하기 위한 불법 행위는 자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2025년 8월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 처리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같은 경영계의 걱정은 진즉에 현실화했다. 노란봉투법 본격 시행 이전부터 하청 노조가 원청에 임금·복지 등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사례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특히 산업 구조상 수백개의 협력 업체 및 하청 업체를 두고 있는 반도체, 가전 등 주요 산업계에서 이같은 움직임이 강하게 일었다.

삼성전자 협력사인 이앤에스 노조는 통상 임금 지급 문제로 사측과 갈등을 빚던 중 지난해 6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청 업체인 삼성전자가 직접 문제 해결에 나서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최근 임금 체불 문제까지 삼성전자가 나서 해소해야 한다며 요구 범위를 확대했다.

SK하이닉스도 직접적으로 관계없는 근로 계약을 재조정해 달라는 요구로 골머리를 앓았다. SK하이닉스는 그룹 계열사 SK에코플랜트가 짓고 있는 청주 반도체공장 ‘M15X’와 관련해, SK에코플랜트 협력사에서 해고된 노조원들로부터 부당 해고를 해결해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LG전자도 가전 유지·보수 자회사 근로자들로부터 차별 문제를 해결하라는 요구로 몸살을 했다.

LG전자 가전 유지·보수 자회사 근로자들은 앞서 지난해 5월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청 업체인 LG전자는 권한과 이익만 가지려 하지 말고 책임 있게 자회사 노동자들과의 단체 교섭에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LG전자 가전 유지·보수 자회사 노조가 2025년 5월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전국금속노동조합>

경영계를 중심으로 현장의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란 위기론이 확산하자 정부는 제도적 지원을 통해 노란봉투법을 보완하겠다는 뜻을 분명이 했다.

노동부는 노란봉투법 관련 정부 유권 해석 자문기구인 ‘단체교섭판단지원위원회’를 운영해 주요 쟁점에 대한 판단 기준과 방향성을 제시키로 했다.

또 법 시행 초기 기업 현장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이달 중 노란봉투법 설명회를 개최하고, 올 상반기 동안 정기 세미나를 운영할 계획이다.

아울러 지방노동청을 중심으로 전담반을 만들어 원·하청 교섭 절차를 적극 안내하는 동시에 실제 현장 교섭에 신속 대응한다.

특히 공공 부문이 노란봉투법 취지에 걸맞은 교섭 모델을 선도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경영계는 교섭을 회피하기보다는 대화와 책임 있는 자세로, 노동계는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절제와 타협의 자세로 대화에 임해 달라”며 “정부의 노력과 노사의 대화 및 타협의 노력이 더해지면 원·하청 노사와 우리 경제가 상생하는 길이 만들어질 것이다”고 강조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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