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K의 명과 암] ③‘동업 균열’에 MBK 참전, 고려아연 분쟁 ‘장기화’…최윤범, 美 제련소 카드로 ‘판 바꿨다’

시간 입력 2026-04-23 07:00:00 시간 수정 2026-04-29 12: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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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동업경영’ 균열…MBK 참전, 경영권 분쟁 확대
3조원대 자사주 매입·유상증자 맞대응…재무 부담 속 지배력 경쟁
지배구조 개선 긍정적 측면도…최영범, 美 제련소 카드 ‘신의 한수’
경영권 분쟁 장기화 조짐… MBK, 시세차익 상당할 듯

재계 29위 영풍그룹의 핵심계열사인 고려아연은 세계 1위 비철금속 제련 기업이다. 전자·반도체·자동차·2차전지 등 국내 첨단산업이 필요로 하는 기초 소재의 핵심 공급처 역할을 맡고 있다.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고려아연과 영풍은 당초 하나의 뿌리에서 비롯됐다. 두 회사는 황해도 사리원 출신 동향 친구인 장병희 명예회장과 최기호 선대 회장이 지난 1949년 함께 세운 영풍기업사에서 출발했다.

영풍은 이후 1970년 경북 봉화 석포제련소를, 고려아연은 1974년 울산 아연제련소를 각각 출범시켰다. 창업 정신은 경영 방식에도 이어졌다. 고려아연 초대 사장은 최기호 창업자, 2대 사장은 장병희 창업자가 맡는 식으로 공동경영 체제가 이어졌다.

1980년 최기호 창업자가 72세를 일기로 타계하면서 영풍은 장씨 가문이, 고려아연은 최씨 가문이 각각 운영하는 이원화 체제가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지분을 상호 보유해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처럼 동업자 정신을 근간으로 한 지분의 균형은 2대 장형진, 최창걸 회장 때부터 흔들리기 시작한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최씨 일가가 영풍 지분을 시장에 매각하기 시작했다. 반면 장씨 일가는 영풍, 코리아써키트, 서린상사 등 주요 회사들의 지분을 오히려 사들이면서 지배력의 무게추가 장씨 일가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2017~2019년 공정거래위원회의 재벌 지배구조 개선 요구에 따라, 순환출자 고리 해소에 나선 것도 한몫했다. 영풍그룹 역시 영풍→고려아연→서린상사→영풍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야 했다. 장형진 회장은 서린상사가 보유하고 있던 영풍 지분 10%를 매입했고, 서린상사의 영풍 지배력이 사라지면서 영풍에 대한 최씨 일가의 지배력도 함께 사라지게 됐다.

지분 격차에 의한 갈등은 3세대인 최윤범 회장이 고려아연 회장으로 등장하면서, 두 가문 간 지분을 둘러싼 본격적인 경영권 분쟁으로 불거졌다.

서린상사(현 KZ트레이딩)는 대주주는 최씨 일가지만 경영은 장씨 일가가 맡고 있던 기업으로, 현 고려아연과 반대 상황인 기업이었다. 2024년 6월 서린상사는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당초 고려아연 측 4명, 영풍 측 3명이던 이사회를 고려아연 측 8명, 영풍 측 2명으로 재편했다. 장세환 대표는 사임했다.

그리고 양 진영은 고려아연이 대기업들과 진행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와 자사주 맞교환 시점을 전후로 갈등의 골이 더 심화됐다. 고려아연은 현대차그룹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한 것을 비롯해 한화그룹 계열사, LG화학 등과 잇따라 자사주를 맞교환하며 우호지분을 늘렸다. 이로 인해 영풍의 지분가치가 희석됐다.

장씨 일가는 이에 맞서 MBK파트너스(이하 MBK)와 연합해 고려아연 지분 공개매수에 돌입했다. 영풍 경영진이 먼저 나서 MBK에 협업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장형진 회장은 2024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른 기업에 매각하는 방안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상당한 자본이 들어가 웬만한 곳에서는 건드릴 수 없었고, MBK밖에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MBK의 전략 변화도 주목됐다. MBK가 한국앤컴퍼니 공개매수에 뛰어들 당시 이 회사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4대 수준이었다. 통상 PBR이 1 이하면 장부가치 보다 현재 시가총액이 낮아 저평가로 분류된다. 저평가된 기업을 인수해 비싸게 파는 전략인 셈이다.

고려아연은 공개매수 이전 주가가 50만원대였지만, 이 기준으로도 PBR은 21배를 초과했다. 영풍·MBK 연합의 최종 공개매수가는 주당 83만원으로 시세가에 66%나 프리미엄을 얹은 셈이다.

영풍·MBK vs 고려아연, 분쟁 본격화...재무 부담 가중속, 지배구조 개선 평가도

경영권 분쟁은 고려아연의 재무 체력을 소진시켰지만, 역설적으로 10년 넘게 요구받아온 지배구조 개선을 끌어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고려아연 측이 제시한 공개매수가는 영풍·MBK가 처음 공시한 66만원에서 주당 89만원까지 상승했다. 고려아연 측이 자사주 공개매수에 투입한 총 자금은 약 3조6800억원에 달한다. 이 중 고려아연의 자기자본은 5700억원이며, 나머지 약 2조6545억원은 하나은행·스탠다드차타드은행(1조6545억원)과 메리츠증권(1조원) 등의 차입을 통해 조달했다.

차입금 금리는 4.67%~6.50% 수준으로, 연간 이자비용만 약 1500억원 내외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2023년 별도 기준 4100억원 수준이던 총차입금은 2025년 4조1000억원대로 늘어났다.

공개매수로 인한 대규모 차입과 재무 부담 증가로 신용등급도 조정됐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지난해 6월 보증사채 등급을 AA+에서 AA(안정적)으로 하향했다.

영풍·MBK 연합이 제기한 지배구조 개선 의제는 상당 부분 현실화 됐다.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된 이후 최 회장은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나 사외이사 의장제를 도입했다. 지난해 황덕남 사외이사가 의장으로 선임되면서 창사 이래 첫 사외이사 의장이 탄생했다.

영풍·MBK 연합은 2025년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중간배당 재원 마련을 위해 임의적립금 3925억원 전환(미결) △액면분할 및 정관변경(부결) △신주발행 시 이사의 충실의무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부결) △집행임원제도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부결) △주주총회 의장 변경을 위한 정관 변경(부결) △이사회 소집 절차 변경(가결) △임원퇴직금 지급 규정 개정 승인의 건(가결) 등을 주주제안했다.

이 중 임의적립금 전환안은 고려아연 측이 9177억원 수준으로 더 적극 제안해 해당 안이 가결됐다. 이사회 소집 절차는 연합 쪽 주주제안이 수용되면서 이사회 소집 통지 기간을 현행 이사회일 하루 전에서 최소 3일 전으로 연장됐다. 또 임원퇴직금 지급 규정이 기존 명예회장 포함에서 불포함으로 변경됐다.

◆ 최윤범, 美 제련소 카드 ‘신의 한수’…MBK 시세차익 배 이상 달할 듯  

고려아연은 2025년 말 기준으로, 장씨 일가인 영풍 측 32.88%, 최씨 일가인 고려아연 측 15.70%로 크게 양분된 가운데, 미국 우호지분인 Crucible JV LLC 10.59%, MBK파트너스의 한국기업투자홀딩스 8.25% 등으로 지분구조가 나눠져 있다.  고려아연 측 우호지분으로 분류되는 한화·LG화학의 지분율은 아직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현재 양측의 지분율 격차는 약 2~4%p로, 영풍·MBK 연합이 미세하게 앞서는 것으로 추정된다.

당초, 시장에서는 자본과 지분율에서 앞선 영풍·MBK 연합이 이사회 과반을 확보하고 우위를 확보할 것이란 시각이 우세했지만, 최 회장의 미국 제련소 진출 카드가  결국 판세를 뒤집는 카드가 됐다. 

고려아연은 미국 테네시주에 총 11조원(약 74억 달러) 규모의 통합 비철금속 제련소 '크루서블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발표하고, 이를 위해 미국 정부·방산기업 등이 참여한 합작사 Crucible JV LLC를 대상으로 약 2조8500억원 규모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결의했다. 이를 통해, 최 회장 측은 10%대의 새 우호주주를 확보하며 지분율 격차를 대폭 좁혔다.

최윤범 회장은 이처럼 우호 지분을 확대하면서, 전체 이사진의 과반 이상을 유지하며 경영권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고려아연의 이사진 구성에 미미하지만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기존에는 고려아연의 이사진이 최윤범 측 11명·MBK·영풍 4명으로 격차가 컸지만, 지난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영풍연합이 의석을 추가하면서 9대 5로 좁혀졌다. 최 회장이 이사진의 과반 이상을 유지하며 경영권을 사수하고 있지만, 영풍·MBK 진영의 공세로 그 격차가 좁혀지고 있는 점은 경영권 분쟁의 변수가 될 전망이다.     

재계에서는 양 진영간 지분구조, 고려아연이 비철금속 제련 등 국가 기간산업 역할을 든든히 하고 있는 특수성 등을 고려할 때, 경영권 분쟁 국면이 장기화될 공산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영풍과 MBK의 경영협력계약에 따르면 영풍은 계약 체결일로부터 10년간 보유 주식의 제3자 처분이 금지되며, 10년 이후에도 최윤범 회장 및 그 특수관계인에 대한 매각은 불가하다. 반면 MBK에 대한 처분 제한은 계약서상 명시돼 있지 않다.

다만, 경영권 분쟁이 해소되더라도 MBK 입장에서는 막대한 규모의 수익 실현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경영권 분쟁 이전에 50만원대에 머물렀던 고려아연 주가가 22일 종가 기준 169만원까지 치솟은 상태다. 공개매수 당시 제시한 주당 83만원대에 추가 매입한 것을 감안하더라도, 현 주가 수준에서 보면 사실상 배에 달하는 시세차익이 기대된다.

[CEO스코어데일리 / 박소연 기자 / soyeon0601@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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