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상호 관세 재인상 압박에 김정관 산업장관 급파
러트닉 상무장관 만났지만 결론 못 내고 빈손 귀국
인상 조치 이미 시작…‘관세 미정’ K-반도체 불똥 튀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호 관세를 다시 올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가운데, K-반도체에 트럼프발 관세 폭탄의 불똥이 옮겨 붙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현지에서 반도체를 생산하지 않을 경우, 100%의 관세를 매기겠다는 입장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상황이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근심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이에 정부는 김정관 산업통상부(산업부) 장관을 미국으로 급파해 관세 리스크 해소에 나섰다. 그러나 김 장관은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과의 두 차례 협의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빈 손으로 귀국했다. 한·미 양국이 합의점을 찾는 데 난항을 겪으면서 K-반도체를 겨냥한 관세 위기는 날로 고조되는 분위기다.
2일 산업부에 따르면 김 장관은 현지시간으로 지난달 29~30일 이틀 간 미국 워싱턴 D.C. 상무부 청사를 찾아 러트닉 장관과 두 차례에 걸쳐 담판을 벌였다.
이 자리에서 김 장관은 한·미 간 무역 합의를 차질 없이 이행하겠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을 강조했다. 그는 러트닉 장관에게 “‘한·미전략적투자관리를 위한 특별법안(대미투자특별법)’이 신속히 제정되도록 국회와 긴밀히 소통해 나가겠다”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김 장관의 간곡한 설득에도 불구하고 한·미 간 관세 협의는 끝내 유의미한 결론을 도출하는 데 실패했다.
빈 손으로 귀국한 김 장관은 지난달 31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취재진과 만나 “한국 정부가 그 때 (타결)했던 관세 협정에 대해 이행을 안 하려 한다거나 지연할 의도는 전혀 없다는 점에 대해서 충분히 이야기했다”면서도 “그러나 지금 대미투자특별법이 국회에서 계속 계류 중이다보니 (미국측이) 굉장히 아쉬워하는 부분들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법안을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진행해 미국과 이해를 같이 하겠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덧붙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재인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1월 31일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귀국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트럼프 행정부가 이미 한국에 대한 관세 재인상에 돌입했다는 암울한 소식도 알렸다. 김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도 있지만, 관세 인상 조치는 이미 시작됐다”며 “(미 정부는) 관보 게재를 준비하고, 제재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미 간) 논의가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서로 내부 토론을 거친 후 조만간 한국에서 화상 회의를 할 예정이다”며 “이런 과정들을 거쳐 최종적으로 어떻게 결론이 나올지 지켜봐 달라”고 했다.
미국으로 급파된 김 장관이 러트닉 장관과 열띤 논의를 벌였는데도 불구하고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전 산업계가 우려했던 트럼프발 관세 리스크는 당장 현실화하는 모습이다.
앞서 지난달 26일 트럼프 대통령은 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한국 입법부가 한·미 간 무역 합의를 지키지 않고 있다”며 “이에 따라 한국에 대해 자동차, 의약품에 대한 관세와 기타 모든 상호 관세를 15%에서 25%로 인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재명 대통령과 함께 지난해 7월 30일 양국을 위한 위대한 합의를 했다”며 “내가 같은해 10월 29일 한국에 있을 때 그런 조건을 재확인했는데도 왜 한국 입법부는 합의를 승인하지 않는가”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한국 입법부의 승인은 우리나라가 미국에 약속한 투자를 이행하기 위해 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하는 대미투자특별법 입법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11월 26일 국회에 대미투자특별법을 발의했다. 이에 미국도 같은해 12월 4일 관보 게재와 함께 한국산 자동차 관세를 15%로 소급 인하했다. 그러나 이후 국회의 법안 처리가 미뤄지면서 대미투자특별법은 아직 답보 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무역 합의에 따른 한국의 대미 투자가 당초 기대보다 지연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합의된 거래 내용에 맞춰 우리의 관세를 신속하게 인하하는 행동을 해 왔다”며 “우리는 당연히 우리의 교역 파트너들도 똑같이 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반도체 생산라인. <사진=삼성전자>
자동차를 비롯한 다수의 산업이 트럼프발 관세 폭탄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선 아직 관세를 확정 짓지 못한 K-반도체가 새로운 희생양이 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한다. 최근 미국이 반도체 품목별 관세 100% 부과 가능성을 언급한 상황에서, 한국에 대한 상호 관세 재인상이 반도체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달 중순 러트닉 장관은 미 뉴욕주 시러큐스 인근에서 열린 마이크론테크놀로지(마이크론) 신규 반도체공장 착공식에서 “메모리 반도체를 만들고 싶은 기업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며 “100% 관세를 내거나, 미국에서 생산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러트닉 장관이 특정 기업을 지목하진 않았으나 한국과 대만이 세계적인 반도체 강국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두 국가에 100% 관세 부과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러트닉 장관에 이어 트럼프 대통령까지 관세를 무기화하고 나서면서 K-반도체를 둘러싼 관세 100% 부과 위협은 급격히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사태의 심각성이 날로 커지자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매출액 기준 지난해 3분기 SK하이닉스의 D램 시장 점유율은 34%로 집계됐다. 삼성전자는 33%를 기록했다. SK·삼성의 시장 점유율 합산은 67%로, K-반도체가 전 세계 D램 시장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HBM(고대역폭메모리)의 경우 K-반도체의 입지는 더욱 독보적이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매출액 기준 지난해 3분기 SK하이닉스의 HBM 시장 점유율은 무려 57%에 이르렀다. 삼성전자는 22%였다. 이로써 K-반도체의 시장 점유율은 79%나 됐다.
그러나 미 정부의 반도체 품목별 관세 부과가 현실화할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100% 관세가 매겨지면 K-반도체의 가격 경쟁력은 급격히 약화되고, 이에 따른 실적 부진 심화, 삼성·SK의 시장 지배력 축소 등 여러 악재에 직면할 수 있다. 심지어 삼성·SK가 ‘만년 3등’ 마이크론에 메모리 패권을 내주는 초유의 사태에 맞닥뜨리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에 정부는 트럼프발 관세 폭탄 대응에 사활을 걸었다. 김 장관에 이어 미국으로 향한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달 5일까지 워싱턴 D,C.에 머물며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과 관세 문제를 비롯한 한·미 통상 현안을 집중 논의한다.
지난달 29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미국으로 출국한 여 본부장은 “미 정부와 의회의 상황을 파악하고, 합리적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다각도로 협의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정부의 관세 재인상 저지 기조에 국회도 발맞추고 있다. 민주당은 관세 문제와 맞물린 대미투자특별법을 이달 임시 국회 회기 중에 처리한다는 입장을 냈다.
한정애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하루 전인 1일 국회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대미투자특별법이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재경위)에 상정된 뒤 소위원회에 회부되면 재경위 차원의 법안 논의가 가능해진다”며 “이달 말~다음달 초에 (국회 본회의 처리가) 가능하지 않을까 판단하며, 가급적 그 일정을 지킬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김 장관이 트럼프 행정부 인사와 만났으나 관세 재인상과 관련한 결론을 도출하지 못한 상황과 관련해선 “국회가 대미투자특별법과 관련한 (정해진 처리) 일정을 따라가면 (한·미 간 협상도) 정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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