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제 예외’ 제외 반도체법, 국회 본회의 통과
K-반도체 아쉬움 토로…첨단 칩 경쟁력 확보 초비상
韓, 엄격한 주 52시간제 고수…R&D 인력 운용 난항
“삼성·SK, 차세대 칩 개발 온전히 몰두 어려운 환경”
美·中 등 주요 경쟁국, 근로 시간 등 각종 규제 철폐
여야 합의한 근로 시간 특례 대안 서둘러 모색해야

29일 국회에서 열린 제431회 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이 가결되고 있다. 연합뉴스
세계 주요국 간 반도체 패권 다툼이 날로 치열해지는 가운데, K-반도체의 첨단 기술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드디어 마련됐다.
여야 갈등으로 처리에 난항을 겪었던 ‘반도체산업의경쟁력강화및혁신성장을 위한 특별법안(반도체특별법)’이 마침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AI(인공지능)·데이터센터·로봇 등 미래 산업 육성에 필수인 반도체 분야를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됨에 따라 K-반도체의 초격차 경쟁력 확보에도 한층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다만 국내 반도체 업계가 줄기차게 요구해 온 ‘주 52시간제 예외’ 규정이 법안에서 제외된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경쟁국들이 각종 규제를 철폐하며 반도체 굴기에 박차를 가하는 사이, 우리나라는 주 52시간제라는 족쇄로 첨단 칩 경쟁력 제고에 온전히 집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추가로 근로 시간 특례가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회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본회의를 열고, 반도체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재석 의원 206명 중 찬성 199명, 기권 7명 등으로 가결됐다.
해당 법안이 국회의 문턱을 넘으면서 메모리·시스템 반도체, 설계·제조·패키징,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등 국내 반도체 산업 인프라를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
반도체특별법에 따르면 대통령 소속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반도체특위)’를 신설하고, 그간 개별 사업·예산으로 분산돼 있던 반도체 지원 정책을 반도체특위에서 총괄한다.
또 반도체특위 운영을 위해 산업통상부(산업부) 내에 ‘반도체혁신성장지원단’을 설치하고,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특별회계’를 10년 기한으로 설치해 반도체 산업을 상시 지원한다. 5년 단위로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기본계획’을 수립해 반도체특위 심의 후 확정하고, 순차적으로 이행해 나가기로 했다.
아울러 지역 균형 발전을 고려해 반도체 클러스터를 지정하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지자체)가 클러스터 운영에 필요한 전력, 용수, 폐수, 도로 등 기반 시설 설치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우선 지원하는 내용도 법안에 담겼다.
반도체 기술개발 및 실증센터 구축, 소부장·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시스템 반도체 생태계 육성, 인력 양성 및 해외 인재 유치 지원 등 다양한 기업 지원 방안에 대한 근거도 담았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반도체 생산라인. <사진=삼성전자>
반도체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정부는 환영을 뜻을 내비쳤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반도체는 우리나라 최대 수출 산업이면서 AI 시대에 국가 경제·안보를 좌우하는 전략 자산이다”며 “반도체특별법 제정을 계기로 K-반도체의 초격차를 유지·강화하고, AI 반도체를 둘러싼 글로벌 경쟁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도록 하위 법령을 신속히 마련해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경제계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는 입장문을 통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단순한 기술 경쟁을 넘어 국가 간 경제 안보의 핵심 전장이 되는 가운데, 반도체특별법은 우리 반도체 산업이 AI 시대 진입,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주도권을 확보할 제도적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이어 “전력·용수 등 핵심 인프라에 대한 국가 차원의 우선 지원, 규제 개선의 제도화, 인력 양성 체계 강화는 기업의 투자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데 실질적인 마중물이 될 것이다”며 “반도체 생태계 전반의 체질을 개선하고, 질적 성장을 이루는 토대가 될 것이다”고 밝혔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도 “반도체특별법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환영하며, 이번 법안은 국내 반도체 산업의 성장동력을 한 단계 도약시킬 수 있는 중요한 제도적 기반이 될 것이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재정 및 인프라 지원의 근거 마련은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을 실질적으로 강화하고, 대규모 투자를 촉진하는 핵심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글로벌 첨단 기술 주도권 다툼 속에서 생존을 위한 우리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 계획이 차질 없이 이행될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가 정책 일관성 유지와 제도적 뒷받침을 위해 힘써 달라”고 요청했다.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 <사진=SK하이닉스>
다만 국내 반도체 업계의 염원이었던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 조항은 법안에서 제외돼 큰 아쉬움을 남겼다.
주 52시간 근로 시간 예외 적용 조항이 빠진 것은 여야가 반도체특별법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해당 쟁점과 관련해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여야는 K-반도체 지원을 위한 법안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산업계가 요구한 주 52시간제 예외와 관련해 갈등을 빚어 왔다.
대신 여야는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 문제와 관련해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과 특성을 고려해 연구개발(R&D) 인력의 근로 시간 특례 등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소관 상임위에서 그 대안에 대해 계속 논의한다”는 부대 의견을 달고,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와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기후환노위)에서 관련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사실상 반도체 R&D 종사자에 대한 주 52시간제 예외가 적용되지 않은 채로 반도체특별법이 국회 문턱을 넘은 가운데, 예상치 못한 후폭풍에 맞닥뜨릴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K-반도체가 첨단 칩 기술 경쟁력을 제고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다.
통상 2년이 소요되는 반도체 신제품 개발 과정 중 시제품 검증에만 6개월에서 1년이라는 기간이 소요된다. 이 기간 중 R&D 핵심 인력은 시제품 집중 검증을 위해 3~4일 밤샘 근로가 불가피 한 실정이다.
미국·일본·대만 등 주요 경쟁국은 이같은 이유를 근거로 반도체 R&D 인력의 무제한 근무를 허용하고 있다.
반도체 후발 주자인 중국도 반도체 굴기를 가속화하기 위해 근로 시간의 제약을 없애는 초강수를 뒀다. 실제로 중국은 글로벌 AI 패권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996 근무제(오전 9시~오후 9시, 주 6일 근무)’를 강조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는 과거 “알리바바와 일하려면 하루에 12시간 일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며 996 근무제를 옹호하기도 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엄격한 주 52시간제로 인해 R&D 핵심 인력 운용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사진=삼성전자>
주 52시간제를 고수하는 정책 등으로 차세대 반도체 기술 개발에 상당한 제약이 뒤따르면서 K-반도체가 중국에 역전을 허용했다는 참담한 분석마저 제기됐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발간한 ‘3대 게임 체인저 분야 기술 수준 심층 분석’ 브리프에 따르면 국내 전문가 3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 지난해 기준 한국의 반도체 분야 기술 기초 역량은 모든 분야에서 중국에 뒤처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고 기술 선도국을 100%로 봤을 때, 고집적·저항기반 메모리 기술 분야는 한국이 90.9%로, 중국의 94.1%보다 낮았다. 한국의 고성능·저전력 AI 반도체 기술 분야는 84.1%인 반면 중국은 88.3%로 더 높았다.
전력 반도체 분야의 경우도 한국 67.5%, 중국 79.8%로, 중국이 우위에 있고, 차세대 고성능 센싱 기술 분야도 중국(83.9%)이 한국(81.3%)에 앞섰다. 반도체 첨단 패키징 기술은 한국과 중국이 74.2%로 같게 평가됐다.
사실상 우리나라가 국가 차원의 전폭적 지원은커녕 각종 규제로 발목을 잡으면서, 삼성·SK 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알아서 미래 경쟁력을 제고해야 하는 ‘각자도생’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실제 업계에서는 K-반도체의 첨단 칩 역량 강화를 위한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호소하고 있지만, 정치권의 무관심으로 공허한 메아리로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AI 관련 칩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HBM(고대역폭메모리), 그래픽용 D램, 저전력 D램 등 메모리 판매가 호조를 보이고 있고, 이로 인해 내리막을 걷던 반도체 칩 가격도 다시 고공행진하기 시작했다. 이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거두며 ‘반도체 슈퍼 사이클’의 최대 수혜주로 부상했다.
그러나 주 52시간제 규제로 차세대 칩 개발에 온전히 몰두하기 어려운 환경이 여전한 상황이어서 K-반도체가 AI 반도체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난항을 겪고 있다는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SK하이닉스 청주캠퍼스. <사진=SK하이닉스>
이에 정치권에서도 업계의 애로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조속히 모색해야 한다는 데 크게 공감하는 모습이다.
박상웅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는 우리 경제에서 반도체 산업이 차지하는 중요성과 그 특성을 고려해 R&D 인력의 근로 시간 특례 등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반도체 산업의 성장 기반을 구축해 K-반도체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반도체 주권을 확립한다는 입법 취지를 고려해, 여야가 함께 도출한 부대 의견에 따라 국회에서 조속히 근로 시간 특례와 관련한 대안을 조속히 도출하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반도체특별법은 정부 이송 및 국무회의 의결 등을 거쳐 추후 공포된다. 정부는 하위 법령 등을 마련해 이르면 올 3분기 중 법안을 본격 시행할 계획이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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