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엔 ‘사즉생’, 올해는 ‘자만할 때 아냐’”…이재용, ‘뉴 삼성’ 시동 건다

시간 입력 2026-01-26 19:00:00 시간 수정 2026-01-26 17: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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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다움 복원 위한 가치 교육’서 경계 목소리
“숫자 개선에 자만 안 돼…경쟁력 회복 마지막 기회”
실적 개선·주가 상승에 그룹 안팎서 “삼성 부활했다”
李 “반도체 등 기술 초격차 전략 약화 지속” 판단한 듯
임원들에게 “위기 넘어 재도약…삼성 저력 보여주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초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복합 위기에 대처할 것을 주문했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올해도 “자만할 때가 아니다”며 경계의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반도체 슈퍼 사이클’에 따른 실적 호조, 주가 상승세 등으로 삼성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이 회장은 내부에서 ‘삼성이 부활했다’는 자평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회장은 반도체 경쟁력 제고 시급, 글로벌 경기침체 장기화 등 경영 불확실성 심화 속에서 ‘삼성 재도약’의 마지막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주문하며, ‘뉴 삼성’ 비전 구체화에 본격적으로 드라이브를 걸었다.

26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은 그룹 전 계열사 부사장 이하 임원 2000여 명을 대상으로 순차 진행 중인 ‘삼성다움 복원을 위한 가치 교육’에서 이 회장의 메시지를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의 메시지에는 경영진들에게 마냥 안주할 상황이 아니라며 꾸짖는 내용이 담겼다. 그는 “숫자(실적·주가 등 수치)가 좀 나아졌다고 자만할 때가 아니다”며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2007년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샌드위치 위기론’도 소환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지금도 샌드위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며 “달라진 건 경쟁구도가 바뀌었고,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는 것이다”고 경고했다.

이 회장이 쓴소리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3월 이 회장은 임원 대상 삼성다움 복원을 위한 가치 교육에서 “삼성다운 저력을 잃었다”며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중요한 것은 위기라는 상황이 아니라 위기에 대처하는 자세”라며 “당장의 이익을 희생하더라도 미래를 위해 투자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또 이 회장은 각 사업부를 일일이 질책하기도 했다. 그는 “메모리사업부는 자만에 빠져 AI 시대에 대처하지 못했다”고 했고, 파운드리사업부에 대해선 “기술력 부족으로 가동률이 저조하다”고 꼬집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가운데)이 2025년 12월 삼성전자 기흥캠퍼스 내 ‘NRD-K’ 클린룸 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이렇듯 이 회장이 2년 연속으로 강한 어조의 메시지를 경영진들에게 전한 것은 그룹 내에 확산하고 있는 낙관론에 대해 경계하고, 위기 대응을 위한 긴장감을 지속 유지하려는 의지 때문이다.

실제로 그룹 대표 계열사 삼성전자의 실적은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연결 재무제표 기준 지난해 4분기 삼성전자 영업이익은 20조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는 2024년 같은 기간 12조1661억원 대비 무려 208.2% 급증한 수치다. 당초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익 전망치를 17조원대로 추정했다. 그러나 이달 초 발표된 실제 영업익은 이보다 3조원가량 더 높은 20조원이었다.

이로써 삼성전자는 국내 기업 중 최초로 분기 영업익 20조원 달성에 성공했다. 아울러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 이어지던 지난 2018년 3분기 17조5700억원 이후 7년여 만에 역대 분기 영업익 최대 기록도 경신했다.

삼성전자가 사업 부문별 세부 실적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반도체 사업을 영위하는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의 선전이 전체 실적을 밀어올린 것으로 보고 있다.

증권 업계는 DS 부문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익 전망치가 16조원 내외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지난해 4분기 전체 영업익 20조원 중 80%를 DS 부문에서 벌어들였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삼성전자 DS 부문이 역대급의 실적을 기록한 것은 범용 메모리 가격 상승, 엔비디아 등 주요 고객사에 대한 HBM(고대역폭메모리) 판매 확대 등으로 인해 수익성이 크게 늘어난 덕분이다.

또 이 회장의 ‘아픈 손가락’으로 일컬어지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사업부의 대형 수주 소식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7월 말 삼성전자는 테슬라와 22조7648억원 규모의 파운드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와 관련해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최고경영자)는 “삼성전자의 대규모 텍사스공장에서 테슬라의 차세대 AI6 칩이 양산될 것이다”며 “이는 과장하기 어려울 정도로 전략적으로 중요한 결정이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테슬라가 생산 효율성 극대화를 돕는 데 삼성도 동의했다”며 “진전 속도를 가속하기 위해 직접 삼성전자 생산라인을 둘러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머스크 CEO의 발언을 종합하면 삼성은 2033년 말까지 테슬라의 차세대 ‘AI6’ 칩을 주력 양산할 예정이다. AI6는 테슬라가 자체 개발한 자율주행용 AI 반도체로, 완전 자율주행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필수 칩 중 가장 최첨단 제품이다. 해당 칩은 내년 가동 예정인 삼성전자 미 텍사스 테일러공장에서 생산된다.

이뿐만 아니다. 삼성전자는 애플의 차세대 칩도 미 텍사스주 오스틴공장에서 생산하기로 했다. 지난해 8월 팀 쿡 애플 CEO는 “우리는 향후 4년 간 미국 전역에 6000억달러를 투자하고, 새로운 미국 제조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돼 자랑스럽다”며 “이번 계획에는 미 전역의 10개 기업과의 신규 및 확대 협업이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쿡 CEO가 언급한 10개 기업 파트너사에는 삼성도 포함됐다.

애플 관계자는 “삼성의 텍사스공장에서 새로운 혁신 기술을 도입해 차세대 칩을 제조할 계획이다”며 “이는 아이폰을 비롯한 애플 제품의 전력 효율과 성능을 최적화하는 데 사용된다”고 강조했다.

메모리·파운드리 사업이 순풍에 돛 단 듯 나아가면서 삼성전자의 실적은 큰 폭으로 개선되는 모습이다.

주가도 나날이 치솟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 회장 ‘취임 3주년’이었던 지난해 10월 27일 삼성전자 주가는 종가 기준 10만2000원이었다. 이후 약 3개월이 지난 이날 주가는 종가 기준 15만2100원을 기록했다. 석달 만에 49.1%(5만100원)나 폭등한 것이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사진=연합뉴스>

이렇듯 삼성전자의 실적과 주가가 고공행진하면서 “삼성이 부활했다”는 목소리가 그룹 안팎에 빠른 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그러나 이 회장은 “자만해선 안 된다”며 엄중히 경계했다.

이와 관련해 업계에선 반도체를 중심으로 실적·주가 등 수치가 개선되고 있지만 시황 영향이 적지 않은 만큼 숫자에 연연해선 안 된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여기에 이 회장 또한 삼성의 기술 초격차 전략이 여전히 크게 약화한 상태라고 보고, 이를 서둘러 강화해야 한다고 진단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임원들에게 “삼성의 미래 경쟁력을 제고할 마지막 기회”라고 언급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이에 이 회장은 경영진들에게 안주하지 말고 삼성의 재도약을 위해 함께 힘쓰자고 주문하고 나섰다.

실제로 삼성다움 복원을 위한 가치 교육에 참석한 임원들에게 나눠준 크리스털 패에는 ‘위기를 넘어 재도약으로’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면한 복합 위기를 극복해 삼성의 저력을 다시 보여주자는 게 이 회장의 의중이다.

2025년 10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SEDEX 2025’에서 공개된 삼성전자 HBM4 실물 제품. <사진=오창영 기자>

삼성을 초일류 기업으로 재도약시키겠다는 이 회장의 ‘뉴 삼성’ 비전은 이미 시동을 걸고, 본격적으로 속도를 올리고 있다.

먼저 지난해 삼성전자는 2017년 11월 출범한 사업지원TF를 사업지원실로 격상하고, M&A(인수합병)팀을 신설하는 등 조직 정비에 나섰다.

HBM 등 반도체 경쟁력 강화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엔 6세대 HBM ‘HBM4’와 관련해 큰 호평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엔비디아 관계자는 지난해 말 삼성전자를 방문해 HBM4에 대한 SIP(시스템인패키지) 테스트 진행 상황을 공유했다. 이 자리에서 엔비디아는 삼성 HBM4가 구동 속도와 전력 효율 측면에서 메모리 업체 가운데 가장 우수한 성과를 냈다는 결과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SiP는 여러 개의 칩, 컴포넌트 등을 하나의 시스템 반도체로 집적하는 첨단 기술이다. 이에 SIP 테스트는 속도, 전력 효율, 발열, 신호, 안정성 등 반도체 성능을 종합적으로 검증하는 최종 단계로 평가된다.

AI 반도체 공룡 엔비디아로부터 삼성 HBM4의 성능이 경쟁사 제품보다 매우 우수하다고 호평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차별화된 혁신 기술 덕분이다.

삼성전자는 업계 최초로 HBM4에 1c(10나노급 6세대) D램을 도입했다. 가장 미세화된 1c 기술은 메모리 성능을 높이고 전력 소비를 줄이는 첨단 선행 기술로, HPC와 AI 반도체의 진보에 있어 필수 기술로 여겨진다.

핵심 기술이 적용된 HBM4 샘플은 이미 고객사에 전달됐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HBM4는 고객사 일정에 맞춰 기존 계획대로 개발 중이다”며 “1c 기반 HBM4 개발을 완료해 주요 고객사에 샘플을 이미 출하했다”고 밝혔다.

전영현 삼성전자 DS 부문장 부회장은 올 초 신년사에서 “HBM4가 고객사에게 ‘삼성이 돌아 왔다’는 평가를 받으며 차별화된 성능 경쟁력을 보여줬다”며 “근원적인 기술 경쟁력을 반드시 되찾자”고 강조한 바 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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