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클러스터 ‘지방 이전설’ 불씨 여전…1000조 투자, 삼성·SK 속 타 들어간다

시간 입력 2026-01-13 18:00:00 시간 수정 2026-01-13 17:4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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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클러스터 지방 이전 놓고 용인·새만금 신경전
“용인에 약 1000조원 투입하는데”… 삼성·SK 근심↑
K-반도체 “첨단 칩 역량 강화 위한 골든타임 놓칠라”
사법 리스크도 변수…삼성 반도체 클러스터 피해 우려

수도권에 짓기로 한 반도체 클러스터를 지방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K-반도체는 큰 혼란에 휩싸였다. ‘반도체 2대 강국’ 도약을 목표로, K-반도체 산업 육성을 약속했던 정부는 “기업이 판단할 몫”이라며 선을 긋고 나섰지만, 수면 위로 떠오른 지방 이전설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모습이다. 결국 1000조원에 육박하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투자비를 쏟아 부어야 하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근심만 깊어지고 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K-반도체의 미래 생산 거점이 될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지방 이전설이 불거지면서 큰 파장이 일고 있다.

전북 완주군, 진안군, 무주군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안호영 의원은 이날 전북특별자치도의회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리스크 점검과 함께 지방에 배치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의원은 “민주당 중앙당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안고 있는 전력·용수 문제를 점검하고, 전북과 새만금에 반도체와 첨단 산업이 유치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특별위원회(특위)를 구성하기로 결정했다”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문제가 더 이상 특정 지역의 주장이 아니라 집권 여당이 책임지고 다뤄야 할 국가적 과제임을 공식화한 것에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는 이제 반도체 클러스터의 이전 여부를 넘어, 어디로, 또 어떻게 분산 배치할 것인지가 논쟁의 핵심으로 부상했다고 봤다.

안 의원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사업은 되돌릴 수 없는 단계가 아니다”며 “SK하이닉스 팹 1기를 제외하면 90% 이상이 아직 계획 단계로, 입지 변경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용인은 전력과 용수 문제로 제때 일정이 추진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다”며 “만약 전북이 3~4년 내 반도체공장 가동이 가능한 현실적 대안을 제시한다면 삼성전자가 입지 조정을 검토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중앙당이 ‘용인 반도체의 전력·용수 수요·공급 점검과 새만금 등 첨단 산업 유치’를 지원하는 특위 설치를 결정한 데 이어 호남 지역 정치권에서 이를 옹호하는 발언까지 내놓으면서, 반도체 클러스터 지방 이전설에 대한 관심은 더 고조되고 있다.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3일 전북특별자치도의회에서 반도체 산업과 관련한 기자 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에 대해, 해당 지역 지방자치단체(지자체)와 정치권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용일 용인시장은 지난 9일 신년 언론 브리핑에서 “(지방 이전설은)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을 망치려는 정치적 목적의 주장이다”며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시장은 “SK는 이미 팹을 짓고 있고, 삼성은 지난해 12월 사업 시행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분양 계약을 맺고 토지 보상을 진행 중이다”며 “삼성전자의 첨단 시스템 반도체 국가 산업단지(산단)이나 SK하이닉스의 반도체 클러스터 일반 산단을 새만금 등 지방으로 이전하자는 것은 반도체의 생태계나 산업의 특성 및 실상을 모르는 주장으로, 국민에게 혼란만 준다”고 꼬집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역시 9일 SK하이닉스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공사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 곳(반도체 클러스터)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미래다”며 “바꿀 수도, 흔들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는 “수년에 걸쳐 기업 투자와 인프라 직접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데, 이제 와서 다 뒤집자는 건 무책임하다”며 “정책도, 경제 논리도 아닌, 그저 국가의 미래를 팔아 지방 선거에서 표를 얻겠다는 정략적·정치적 선동에 불과하다”고 성토했다.

이어 “무려 1000조원을 투자하는 첨단 전략 산업을 정치적 욕심을 앞세워 흔드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며 “이것은 대한민국 반도체 패권 포기 선언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이처럼 반도체 클러스터 지방 이전설을 두고 팽팽히 맞서게 된 것은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기후부) 장관의 발언에서 비롯됐다. 

김 장관은 지난해 12월 말 CBS 라디오에 출연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경기 용인시에 입주하면 두 기업이 사용할 전기의 총량은 원전 15기 분량이다”며 “전기를 끌어오는 방식이 아닌, 기업이 전기가 많은 곳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닌지 고민이 있다”고 언급했다.

이미 전력 수요가 높은 수도권에 많은 전기를 필요로 하는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설 필요가 있겠냐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는 앞서 이재명 대통령이 같은달 열렸던 ‘K-반도체 육성 전략 보고회’에서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남쪽 지방으로 눈길을 돌려 달라”고 언급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이에 호남 정치권은 이 대통령과 김 장관의 발언을 발판 삼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새만금으로 이전하자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논란이 커지자 청와대는 진화에 나섰다. 김남준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8일 브리핑에서 “반도체 클러스터 대상 기업의 지방 이전을 검토하지 않은 상황이다”며 “이는 기업이 판단해야 할 몫이다”고 일축했다.

청와대가 직접 사태 수습을 시도했는데도 불구하고 관련 지역 지자체와 정치권에서는 연일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그러는 사이, 반도체 클러스터를 통해 첨단 칩 경쟁력을 제고하려 했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간에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일대에 들어서는 SK하이닉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사진=연합뉴스>

특히 이미 지난 2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1기 팹 착공에 돌입한 SK하이닉스는 더 난처한 상황이다.

SK하이닉스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원삼면 일대 415만㎡(약 126만평) 규모의 부지에 구축되는 메가급 반도체 산단으로, SK의 첨단 AI 메모리 양산을 주도할 핵심 생산 거점이다. 약 600조원이 투입되는 이 곳에는 총 4기의 팹이 구축된다. 팹 1기가 SK하이닉스 청주캠퍼스 M15X 6기와 맞먹는 규모임을 감안하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규모가 실로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기 팹 공사 첫 삽을 뜬지 약 11개월이 지난 현재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특수 약품 등을 공급해주는 CUB(센트럴유틸리티빌딩), 반도체가 생산되는 핵심 생산 시설인 팹, 수자원을 재사용하는 데 필요한 WWT(워터웨이스트트리트먼트), 임직원 사무동 등 주요 시설들이 어느 정도 윤곽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 보다 한발 늦긴 했지만 삼성전자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은 지난해 12월 LH와 산단 조성을 위한 부지 매입 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LH는 산단 예정지 내 토지 소유자들과 토지 및 지장물(건물, 공작물, 수목 등)에 대한 보상 협의에 착수했다.

삼성전자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남사읍 일대 728만㎡(약 220만평) 규모의 부지에 들어서는 초대형 시스템 반도체 국가 산단이다. 투자 규모는 약 360조원에 이른다.

이렇듯 1000조원에 육박하는 대규모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이 순항하고 있는 가운데, 때아닌 지방 이전설이 확산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근심만 깊어지고 있다.

만약 용인에 구축키로 한 반도체 클러스터의 새만금 이전이 현실화할 경우, K-반도체의 역량 강화에 상당한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미 짓고 있거나 토지 보상에 착수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을 뒤엎고, 다시 새만금에 산단을 구축하는 것은 첨단 칩 경쟁력을 제고할 시간만 늦추는 꼴이라는 분석이다.

이렇다 보니 반도체 업계 안팎에선 세계 각국이 반도체 패권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현 상황에서,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을 위한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정부가 대승적인 결단을 내려줄 것을 희망하고 있다.

2024년 12월 경기 용인시 삼성전자 기흥캠퍼스에서 열린 삼성전자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국가 산업단지 지정 행사. <사진=연합뉴스>

한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둘러싼 사법 리스크도 변수로 떠올랐다. 시민 단체와 일부 주민들이 국토교통부를 상대로 ‘용인 첨단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 국가 산단 계획 승인 처분 무효 확인’ 청구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승인 과정에서 절차적·실체적 하자가 있다는 이유로 소송을 냈다.

선고는 이달 15일 나온다. 서울행정법원은 오는 15일 해당 청구 소송의 판결을 내릴 예정이다.

만약 법원이 반도체 클러스터 국가 산단 계획 승인 과정의 하자를 인정하고 원고측 손을 들어줄 경우, 삼성전자가 그 피해를 떠안게 될 공산이 크다. 해당 국가 산단은 삼성이 입주키로 한 반도체 클러스터다.

이와 관련해 업계 관계자는 “이번 선고 결과에 따라 삼성전자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이 달라질 수 있다”며 “반도체 경쟁력 제고를 위한 삼성의 구상이 순항할지 지체될지 중차대한 기로에 서 있다”고 말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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