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제 예외’ 제외 반도체법, 결국 국회 강행 처리 임박
삼성·SK 등 반도체 업계 기대 저버려…첨단 칩 경쟁력 확보 비상
韓, 엄격한 주 52시간제 고수…R&D 핵심 인력 운용 난항
중국, 사실상 AI 반도체 자립 성공…“996 근무제가 기폭제”
“AI 반도체 호황에 정치권이 찬물…골든타임 놓치나” 비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반도체 생산라인. <사진=삼성전자>
‘주 52시간제 예외’ 규정이 생략된 이른바 반도체 특별법(반도체산업의경쟁력강화및혁신성장을위한특별법안)이 국회 본회의 처리만을 남겨두면서, 반도체 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메모리칩 강국인 우리나라가 첨단 칩 기술력 강화를 저해하는 주 52시간제를 계속 고수하고 있는 것과 달리 주요 경쟁국들은 반도체 주도권 확보를 위해 각종 규제를 철폐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근로 시간의 제약을 두지 않고 반도체 굴기에 전력투구 하면서, K-반도체를 매섭게 추격하고 있다.
국내 반도체 업계가 줄기차게 요구해 온 ‘주 52시간제 예외’ 규정을 뺀 반도체 특별법의 국회 통과가 임박하면서, 정치권에 대한 볼멘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18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 GPU(그래픽처리장치) 업체 메타X 주가는 중국 상하이 커촹판 증시 상장 첫날인 17일 공모가(104.66위안) 대비 693% 상승한 829.9위안(약 17만432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장중 한때 무려 755%라는 상승률을 기록한 메타X가 상하이 증시에 성공적으로 데뷔하면서 시가 총액(시총)은 단숨에 3320억 위안(약 69조7499억원)으로 치솟았다.
메타X는 미국 AMD 엔지니어 출신인 천웨이량이 동료들과 2020년 창업한 반도체 업체다. 메타X의 AI(인공지능) 반도체 ‘C588’은 엔비디아의 중국 수출용 칩인 ‘H100’과 견줘도 크게 뒤처지지 않는 성능을 자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중국판 엔비디아’로 불리는 무어스레드도 상하이 증시에 입성했다. 무어스레드 주가는 상장 첫날인 5일 공모가(114.28위안) 대비 5배 이상 급등한 584.98위안(약 12만2922원)을 기록했다.
무어스레드는 엔비디아 출신 장젠중이 2020년 창업한 중국 GPU 업체다. 그는 2018년 엔비디아 퇴사 이후 한달 만에 AMD와 인텔 개발자들을 불러 모아 팀을 꾸린 것으로 알려졌다.

메타X ‘C588’. <사진=메타X>
메타X, 무어스레드 등 중국 AI 반도체 업체들이 주식시장에서 대박을 터뜨리고 있는 것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이끌 기대주로 주목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SCMP는 “메타X 등 중국 AI 칩 업체들의 주가는 AI 서비스를 위한 GPU를 자국산으로 대체하려는 추세에 힘입어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고 풀이했다.
사실상 중국이 첨단 AI 칩 자립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가운데, 중국 GPU 업체들이 AI 반도체 경쟁력을 빠르게 끌어올릴 수 있었던 배경으로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파격적인 규체 철폐 등이 지목된다. 이 중에서도 근로 시간의 제약을 없앤 ‘996 근무제(오전 9시~오후 9시, 주 6일 근무)’가 중국 반도체 자립의 기폭제가 됐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중국은 글로벌 AI 패권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996 근무제를 강조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는 과거 “알리바바와 일하려면 하루에 12시간 일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며 996 근무제를 옹호하기도 했다.
중국이 근로 시간에 제약이 없는 근무 제도를 기반으로 반도체 굴기에 박차를 가하는 사이, 우리나라는 주 52시간제라는 족쇄로 첨단 칩 경쟁력 제고에 온전히 집중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왔다.
업계에서도 반도체 연구개발(R&D) 인력에 대한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을 담은 반도체 특별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정치권도 주 52시간제 규제 철폐에 반응하는 듯 보였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추미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12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반도체 업계의 요구는 결국 수포로 돌아가는 분위기다.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 조항이 제외된 반도체 특별법이 지난 1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의 문턱을 넘어 최종 관문인 본회의 처리만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 조항이 법안에서 빠진 것은 여야가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한 탓이다. 대신 여야는 ‘주 52시간 근로 시간 예외 적용’ 문제와 관련해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과 특성을 고려해 연구개발(R&D) 인력의 근로 시간 특례 등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소관 상임위에서 그 대안에 대해 계속 논의한다”는 부대 의견을 달고,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와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기후환노위)에서 관련 논의를 이어가기로 한 상태다.
주 52시간제 예외 규정이 생략된 반도체 특별법은 국회 본회의만을 남겨 두게 됐다. 사실상 법안 통과가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반도체업계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특히 반도체 R&D 종사자에 대한 주 52시간제 예외가 적용되지 않은 데 따른 후폭풍이 매우 거셀 것이란 목소리가 높다. K-반도체의 첨단 기술 개발 경쟁력을 담보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통상 2년이 소요되는 반도체 신제품 개발 과정 중 시제품 검증에만 6개월에서 1년이라는 기간이 소요된다. 이 기간 중 R&D 핵심 인력은 시제품 집중 검증을 위해 3~4일 밤샘 근로가 불가피 한 실정이다.
미국·일본·대만 등 주요 경쟁국도 이같은 이유를 근거로 반도체 R&D 인력의 무제한 근무를 허용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엄격한 주 52시간제로 인해 R&D 핵심 인력 운용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여야 정쟁으로 반도체 특별법 처리가 진척없이 상당기간 지연되는 동안, 삼성·SK가 첨단 반도체 경쟁력 제고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반도체 특별법에 따른 반도체 직접 보조금 혜택을 받지 못하면서 글로벌 업체들과의 주도권 다툼에서도 상대적으로 홀대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 일본 등 주요국은 자국 반도체 업체에 보조금을 지급하며 첨단 칩 역량 제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의 ‘주요국 첨단 산업별 대표 기업 지원 정책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미국 정부는 자국 반도체 업체인 인텔에 85억달러를 지급했다. 일본 정부도 라피더스에 63억4000만달러의 보조금을 투입했다.
그러나 같은해 우리 정부는 마땅한 법안이 없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보조금을 일절 제공하지 못했다. 간접 지원만을 고수하는 정책 기조로 인해 K-반도체가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주요국의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 기조는 지난해에도 이어졌다. 미국은 메모리 반도체 업체 마이크론테크놀로지에 61억6500만달러를 보조금으로 지급했다. 일본도 지난해 11월 일 반도체 업계에 10조엔을 지원하는 종합 경제 대책을 새로 발표했다. 중국도 역대 최대 규모인 64조원의 반도체 투자 기금 ‘빅펀드’를 조성한 상태다.
반면, 국내 반도체 관련 인센티브 규모는 세액 공제를 포함해도 1조2000억원에 그친다.

SK하이닉스 HBM4. <사진=SK하이닉스>
주 52시간제 고수, 보조급 지급 지연 등으로 차세대 반도체 기술 개발에 상당한 제약이 뒤따르면서 K-반도체가 중국에 역전을 허용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발간한 ‘3대 게임 체인저 분야 기술 수준 심층 분석’ 브리프에 따르면 국내 전문가 3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 지난해 기준 한국의 반도체 분야 기술 기초 역량은 모든 분야에서 중국에 뒤처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고 기술 선도국을 100%로 봤을 때, 고집적·저항기반 메모리 기술 분야는 한국이 90.9%로, 중국의 94.1%보다 낮았다. 한국의 고성능·저전력 AI 반도체 기술 분야는 84.1%인 반면 중국은 88.3%로 더 높았다.
전력 반도체 분야의 경우도 한국 67.5%, 중국 79.8%로, 중국이 우위에 있고, 차세대 고성능 센싱 기술 분야도 중국(83.9%)이 한국(81.3%)에 앞섰다. 반도체 첨단 패키징 기술은 한국과 중국이 74.2%로 같게 평가됐다.
우리나라가 국가 차원의 전폭적 지원은 커녕 각종 규제로 발목을 잡으면서, 삼성·SK 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알아서 미래 경쟁력을 제고해야 하는 ‘각자도생’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실제 업계에서는 K-반도체의 첨단 칩 역량 강화를 위한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호소하고 있지만, 정치권의 무관심으로 공허한 메아리로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AI 관련 칩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HBM, 그래픽용 D램, 저전력 D램 등 메모리 판매가 호조를 보이고 있고, 이로 인해 내리막을 걷던 반도체 칩 가격도 다시 고공행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삼성, SK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주 52시간제 규제로 차세대 칩 개발에 온전히 몰두하기 어렵고, 이로 인해 AI 반도체 경쟁에 선제적으로 나서기 어렵다는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반도체 업계에 정통한 관계자는 “K-반도체가 독보적인 칩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반도체 R&D 인력에 대한 주 52시간 근로 시간 예외 적용, 정부 정책 지원의 근거가 될 반도체 특별법이 조속히 통과돼야 한다”며 “경쟁력 확보를 위한 골든타임을 놓칠 수도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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