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첨단 산업 한정 금산분리 규제 일부 완화키로
증손회사 지분 보유 요건, 현행 100%→50%로 축소
지주사의 금융 리스업 회사 소유도 한시적으로 허용
SK,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투자 재원 확보 기대감

정부가 반도체 등 첨단 산업에 한정해 지주회사의 증손회사 지분 보유 요건을 현행 100%에서 50%로 낮춘다. 아울러 금융 리스업도 한시적으로 허용한다.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금산분리(산업 자본과 금융 자본이 서로 지배하는 것을 금지) 완화 움직임이 속도를 내면서, SK가 가장 큰 수혜를 누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SK㈜의 손자회사인 SK하이닉스는 현재 대규모 반도체 생산 시설을 구축 중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금산분리 완화로 금융 리스업 자회사를 설립하게 되면 SK는 수백조원에 달하는 투자 재원을 금융·자본시장에서 안정적으로 조달받게 된다. ‘글로벌 톱티어 AI(인공지능) 메모리 선도 기업’으로의 도약을 꿈꾸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미래 비전이 더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대통령실과 기획재정부, 산업통상부, 금융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지주회사 및 금산분리 규제를 일부 완화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우리 기업들이 AI·반도체 등 대규모 투자가 수반되는 첨단 산업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제도적 걸림돌을 제거하겠다는 취지다.
1982년 은행법 개정을 통해 도입된 금산분리 원칙은 대기업이 계열 금융사를 자금줄로 활용하는 것을 막고, 산업 부실이 금융 시스템에 전이되는 것을 차단하는 장치다. 이에 지난 수십 년간 대기업 지배구조를 감시하고 금융 시장의 안정성을 지키는 핵심 규제로 작용해 왔다.
그러나 최근 금산분리 원칙이 AI·반도체 등 첨단 산업에 필요한 대규모 투자를 차단하고, 국내 산업 경쟁력을 빠르게 약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여기에 이재명 대통령이 올 10월 샘 올트먼 오픈AI CEO(최고경영자)를 만난 자리에서 “독점 폐해를 방지할 안전 장치가 마련되는 범위에서 금산분리 완화를 검토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논의에 급물살을 탔다.
이어 지난 5일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첨단 산업에 한정해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하는 것과 관련해 “정부 내에서 상당히 많은 의견 접근이 있었다”고 전하며 시장의 기대감을 높였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이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AI 시대 반도체 산업 육성 전략 보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에 금산분리 완화를 요청하는 산업계의 목소리가 재차 나오기도 했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은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AI 시대 반도체 산업 육성 전략 보고회’에서 “초대형 투자를 한 기업이 단독으로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투자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이를 통해 AI 메모리 부족을 해결할 투자가 가능해지고 미래 준비도 가능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곽 사장은 “SK하이닉스가 돈이 많으니 투자금을 댈 수 있지 않느냐 생각할 수 있지만 돈을 벌어 투자하려면 장비를 가져 놓고 세팅하는 데 3년이 걸린다”며 “그러면 시기를 놓치게 된다”고 부연했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도 “일리가 있다”며 “금산분리 원칙은 독점 폐해를 막기 위한 것이지만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첨단 산업의 경우 그 문제는 이미 지나가버린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인 만큼 이미 제도적으로 준비 중이다”며 “금산분리라는 걸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실질적 대책을 마련 중으로 거의 다 된 것 같다”고 말해, 해당 방안이 기정사실화했음을 시사했다.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추진중인 금산분리 완화의 핵심 내용은 첨단 산업에 한해 지주회사 체제 내 손자회사의 자회사(증손회사) 지분 보유 요건을 현행 100%에서 50%로 낮추는 것이다.
현행 증손회사 지분 100% 보유 요건은 대기업 총수 일가 등이 적은 지분으로 ‘지주회사-자회사-손자회사-증손회사’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에서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한 장치다. 또 계열사 간 내부 거래를 통한 부당이익 이전을 방지하려는 목적도 있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해당 규정이 첨단 산업의 자금 조달을 막는다고 줄곧 지적해 왔다. 증손회사 지분 보유 요건이 100%인 탓에 외부에서 일절 투자를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 금산분리 완화로 지분 보유 요건이 50%로 낮아지면 손자회사는 신규 사업을 위한 자회사를 설립할 때 자금 마련 부담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또한 정부도 지주회사의 금융 리스업 회사 소유를 허용키로 했다.
이렇게 되면 첨단 산업에 진출한 지주회사 계열사는 특수목적법인(SPC) 등으로 설립된 증손회사를 통해 투자를 유치하거나 설비·시설을 빌려서 사용하는 방식으로 초기 투자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현장을 둘러 보고 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오른쪽). <사진=SK>
금산분리 완화가 임박한 가운데, 재계에서는 누가 가장 큰 수혜를 누릴지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SK를 주목하고 있다. 지주회사 체제에서 손자회사로 반도체 사업을 영위하는 대기업은 사실상 SK뿐이다.
SK그룹 지주사인 SK㈜는 SK스퀘어 지분 31.5%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SK스퀘어는 SK하이닉스의 최대 주주로, 20.1%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이같은 지배구조에 따라 SK하이닉스는 SK㈜의 손자회사로 등재돼 있다.
금산분리 규제가 완화되면 SK하이닉스는 금융 리스업을 담당하는 자회사를 만들 수 있다. 이어 SK㈜의 증손회사가 은행 대출, 회사채 발행, 투자 유치를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반도체공장을 짓고 장비를 매입하면, SK하이닉스는 임차료를 주고 공장과 장비를 빌려 쓰는 게 가능해진다. 첨단 반도체 생산 설비를 구축하기 위해 소요되는 막대한 투자 비용을 금융 리스업 자회사를 통해 대폭 낮출 수 있게된다.
지분 보유 요건도 현행 100%에서 50%로 낮아지는 만큼 외부에서 투자 재원을 유치할 수 있는 장점도 추가된다.
SK는 SK하이닉스의 금융 리스업 자회사를 통해 조달한 자금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 투입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SK의 첨단 AI 메모리 양산을 주도할 핵심 생산 거점이다. 이 곳에는 총 4기의 팹이 구축된다. 이 곳 팹 1기가 SK하이닉스 청주캠퍼스 M15X 6기와 맞먹는 규모임을 감안하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규모가 실로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SK하이닉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감도. <사진=SK하이닉스>
문제는 돈이다. SK는 초대형 반도체 생산 시설을 구축하는 데 천문학적 규모의 자금을 쏟아 부어야 하는 상황이다.
실제 최 회장은 지난달 이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대한 투자 규모가 최대 600조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6년 전 건설 계획을 발표할 당시 120조원이었던 투자 규모에서 5배나 불어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SK는 반도체 수요 및 업황에 따라 팹 건설 속도를 조절하며 단계적으로 투자를 확대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런 와중에 금산분리 규제가 완화되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위해 투자 재원을 확보해야 하는 SK하이닉스의 갈증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박기훈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금산분리 완화로) SK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과 HBM(고대역폭메모리) 설비 확충 등에 필요한 투자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다”며 “지주사의 금융 리스업 소유 허용 또한 고가의 장비를 직접 매입하는 것보다 재무 건전성 측면에서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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