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훈 창업주, ‘신용’으로 한진그룹 기반 닦아
조양호 선대회장 ‘시스템 경영’…안전운항 선도
조원태 회장, ‘수송보국’ 정신으로 미래 전략 추진
“세계가 사랑하는 글로벌 종합 물류 그룹 성장”
국적 대형 항공사 대한항공을 보유한 국내 대표 수송·물류그룹인 한진그룹이 다음달 1일 창립 80주년을 맞는다. 조원태 회장은 조중훈 창업주와 조양호 선대회장의 정신적 유산을 이어받아 한진그룹을 수송과 물류를 통해 세상을 연결하는 혁신 기업으로 바꿔 다가올 100년을 향한 도약에 나선다.
◇한진그룹 기둥 세운 조중훈 창업주…‘신용’으로 사세 확장
27일 재계에 따르면 한진그룹은 고(故) 조중훈 창업주가 1945년 11월 1일 인천 중구 해안동에 ‘한진상사’ 간판을 내걸고 트럭 1대로 운수업을 시작하며 첫발을 내디뎠다. 한진(韓進)은 ‘한민족(韓民族)의 전진(前進)’이라는 의미로, 조 창업주는 수송을 통해 조국에 보답하고 대한민국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수송보국(輸送報國)’의 신념으로 운수업을 주업으로 선택했다.
조 창업주는 신용을 앞세워 미군과의 비즈니스를 성공시키면서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6·25전쟁으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주한 미8군과 군수물자 수송 계약을 맺으면서 회사 재건의 기틀을 마련했다. 조 창업주는 수송 중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모든 것을 책임져 줄 테니 안심하고 맡겨달라는 ‘책임 수송제’를 제안해 미군으로부터 신뢰를 얻었다. 이를 바탕으로 1966년 베트남전에서 미군과의 군수물자 수송 용역계약을 따낼 수 있었다.
미군과의 인연은 1965년 베트남전에 참전한 미군과 한국군 상대 군수물자 운송 사업으로 이어졌다. 베트남 중부에 주둔한 미군 2개 사단과 한국군 맹호부대 등 5만명이 쓸 물자를 퀴논항에서 하역해 부대 소재지로 운반하는 일이었다. 1971년 미군 철수까지 5년간 한진은 베트남 사업으로 1억500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당시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200달러 안팎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조 창업주는 그동안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수송·물류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1967년 7월 해운업 진출을 위해 대진해운을 창립했고, 그해 9월에는 베트남에 투입된 인원과 하역장비·차량·선박 등에 대한 막대한 보험료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동양화재해상보험주식회사를 인수했다. 1968년 2월에는 한국공항을, 8월에는 한일개발을 각각 설립했고 9월에는 인하학원을 인수했다.
이듬해인 1969년에는 본격적으로 항공 사업에 뛰어들었다. 만성 적자에 시달리던 국영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해 ㈜대한항공을 설립했다. 당시 대한항공공사는 그룹 내부에서 마지막까지 완강히 반대할 정도로 재무 상황이 좋지 않았고, DC-9 제트기 이외에 제대로 된 비행기가 없을 정도로 설비나 노선이 열악했다. 세 차례 거절 의사를 표명했던 조 창업주를 박정희 대통령이 불러 직접 부탁한 것이 인수를 결정한 계기가 됐다. 조 창업주는 과감한 항공기 도입과 국제선 개척 등으로 수익성 중심의 내실 강화를 이끌었다.
나아가 조 창업주의 발길은 바닷길로 향했다. 1977년 육·해·공 종합 수송 그룹의 완성을 위해 경영난을 겪고 있던 대진해운을 해체했고, 컨테이너 전용 해운사인 한진해운을 설립했다. 당시 한진해운은 정부의 수출 확대 정책 아래 늘어나는 해운 수요를 바탕으로 2년 만에 경영 정상화를 이뤄냈다.
한진해운이 정상궤도에 오르자, 조 창업주는 조선업으로 눈을 돌렸다. 당시 법정관리 절차를 밟고 있던 대한조선공사 매각 입찰에 참가해 인수 후 1989년 한진중공업을 출범시켰다. 이로써 한진그룹은 2002년 조 창업주 타계 직후 계열 분리 작업이 진행되기 전까지 육·해·공을 아우르는 종합 물류 채널을 확보하게 됐다.
조 창업주는 신사업 개척에도 적극 나섰다. 1972년 한진상사가 ㈜한진으로 이름을 바꿨고, 1973년 한일증권 설립으로 증권업에 진출한 데 이어 1974년 대한항공을 통해 제주 KAL호텔을 오픈했다. 1976년엔 대한항공 항공우주사업본부를 설립해 다양한 항공기 개발 및 제작 사업, 창정비 등을 수행했다. 1978년 학교법인 정석학원을 세운 후 이듬해 한국항공대학교를 인수했다. 1987년에는 대한선주와 대한준설공사를 인수했다. 이어 1991년 코리아타코마조선공업을 인수했고, 1992년 국내 최초로 택배 사업을 시작했다. 1995년에는 포항제철 관계사였던 거양해운도 인수했다.
◇‘수송보국 정신’ 이어받아…‘글로벌 종합 물류 그룹’ 성장
2002년 조 창업주 별세 이후 한진그룹은 조양호 선대회장 체제에서 항공, 물류, 관광, 호텔 부문을 중심으로 성장을 꾀했다. 2008년 설립한 저비용항공사(LCC)인 진에어는 조 선대회장의 대표적 성과로 꼽힌다. 특히 조 선대회장은 항공 등 수송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안전 분야에 ‘시스템 경영’을 적용했다. 장기간 축적한 데이터와 선진 글로벌 항공사 매뉴얼을 총망라한 대한항공만의 매뉴얼로 안전 운항 제도를 운영한 결과, 대한항공은 2000년 이후 현재까지 인명사고를 단 1건도 내지 않았다.
한진그룹은 2019년 조원태 회장 취임 이후 다시 한번 도약의 계기를 맞았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조 회장은 세계 각국의 하늘길이 멈추면서 주기장에 서 있는 유휴 여객기를 화물기로 활용하자는 발상의 전환을 시도했다. 그 결과 대한항공은 글로벌 항공사들이 줄줄이 적자를 기록하는 상황에서도 나홀로 흑자경영을 달성했다.
조 회장은 또 다른 국적 대형 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성공하면서 세계 10위권 항공사 도약을 바라보게 됐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12월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마무리한 데 이어 올해 3월 신규 기업 이미지(CI)를 발표하는 등 인수 후 통합(PMI)에 속도를 내고 있다. 통합 항공사 출범 예상 시기는 2027년 초다.
조 회장은 지난 23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서울에서 열린 창립 80주년 기념행사에서 “1945년 11월 한진상사 창업으로 시작된 한진그룹의 역사는 ‘한민족의 전진’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면서 “창업주 회장님의 수송보국 경영 철학의 기틀과 선대 회장님의 헌신 속에서 새로운 물류의 길을 끊임없이 개척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각 계열사가 공유하고 있는 한진그룹 헤리티지를 바탕으로 100년, 그 이상의 시간이 지나도 더욱 사랑받는 세계 최고의 종합 물류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진그룹은 장기적 미래 전략을 담은 ‘그룹 VISION(비전) 2045’를 추진하며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간다는 전략이다. 항공우주·미래 모빌리티·이커머스 분야를 아우르는 종합 모빌리티 기업으로 도약하고, AI(인공지능) 기반 초자율화 등을 통해 물류 기술 혁신을 선도하는 것이 골자다. 궁극적으로는 한진그룹을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가 사랑하는 글로벌 종합 물류 그룹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목표다.
조현민 ㈜한진 사장은 “한진그룹은 지난해 자산 58조원, 매출 31조원, 영업이익 2조5000억원이라는 성과를 달성하며 항공과 물류를 중심으로 한 42개 계열사와 전 세계 4만명 이상의 임직원이 함께하는 그룹으로 성장했다”며 “80년 전 창업주의 도전과 개척 정신으로 출발한 한진그룹은 이제 다가올 100년을 향해 다시 한번 도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김병훈 기자 / andrew45@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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