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최태원, 트럼프 만났지만 ‘빈손 귀국’…“반도체 폭탄 현실화 하나”

시간 입력 2025-10-20 17:30:00 시간 수정 2025-10-20 17: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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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재계 총수, 미 플로리다주서 트럼프 대통령과 골프 회동
행사 후 트럼프 대통령 직접 만나 미 현지 투자 대해 공유
반도체 관세는 논의 못 해…“이번 회동은 신뢰 구축 차원”
美, 반도체 관세 100% 부과 조짐…삼성·SK, 근심 커진다

국내 재계 총수들과 이들을 트럼프 대통령과의 골프 회동에 초청한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이 묵은 것으로 추정되는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 섬의 5성급 호텔.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K-반도체의 수장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골프 회동을 마치고 귀국했다. 이 회장과 최 회장은 비록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같은 조로 골프 라운딩을 하지는 못했지만, 행사 후 직접 만나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최대 현안인 반도체 관세부과와 관련해 별다른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면서, 아쉬움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머지않아 반도체에 대한 품목별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상황에서, 이번 골프 회동은 반도체 관세 리스크를 해소할 방안을 모색할 수 절호의 기회였다. 반도체 관세폭탄에 직면해 있는 K-반도체의 근심만 더 깊어지는 모습이다.

20일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 최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은 지난 18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 소유인 미국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 트럼프 인터내셔널 골프 클럽’에서 열린 골프 행사에 참여했다.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이 주최한 이번 행사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한국·일본·대만 등의 기업 대표들이 대거 초청됐다. 이들은 한조당 4인씩, 총 12개조로 구성돼 함께 골프 라운딩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선 국내 재계 총수들이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골프를 칠 가능성을 점치기도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주최자인 손 회장, 프로 골퍼 게리 플레이어, 브라이슨 디샘보와 골프 경기를 즐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연합뉴스>

대신 골프 조는 미국 정부 인사 1명, 프로 골퍼 1명, 기업인 2명으로 꾸려졌다. 이에 국내 재계 총수들은 모두 미 정부 고위 관계자들과 함께 골프 라운딩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국내 총수들이 미국 정계 주요 인사와 골프를 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는 “총수들은 출국 전부터 누구와 함께 골프 라운딩 할지 통보받았다”며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치지 않더라도 경기 후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는 얘기를 듣고, 바로 미국으로 향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실제 국내 재계 총수들은 골프 회동 후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미 현지 투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총수들은 국내 기업의 미국 내 투자 현황을 공유했고,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업 협력을 특히 강조하며 협조를 부탁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러나 트럼프발 관세 폭탄과 관련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골프 회동에서 관세에 대한 대화는 없었던 것으로 안다”며 “총수들은 무엇을 요청하기보다는 국익을 위해 트럼프 대통령과 신뢰를 쌓기 위해 방미한 것 같다”고 말했다.

K-반도체 수장인 이 회장, 최 회장과 트럼프 대통령 간 대화 자리가 마련됐는데도 불구하고, 관세와 관련한 구체적인 얘기가 오가지 않았다는 소식에 업계 안팎에선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에 품목별 관세 부과가 임박했다는 불안감이 커지는 상황에서, 국내 대기업 총수들과 트럼프 간에 구체적인 협의가 가능할 것이란 기대가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현재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트럼프발 관세 리스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8월 트럼프 대통령은 미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열린 애플의 대(對)미국 시설 투자 계획 발표 행사에서 “우리는 반도체에 약 100%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다”며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집적 회로와 반도체에 부과할 예정이다”고 압박한 바 있다.

최근엔 반도체 관세의 구체적인 부과 조건도 공개됐다. 지난달 30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행정부가 주요 반도체 업체의 미국 내 생산 물량과 해외에서 수입한 물량을 1 대 1로 맞추도록 의무화하고, 이를 충족하지 못한 기업에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울러 로이터 통신은 트럼프 행정부가 수입되는 모든 전자 기기 내 반도체 칩 수를 기준으로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반도체에 대한 품목별 관세부과 가능성이 커지는 가운데, 삼성·SK의 셈법만 복잡해지는 모습이다.

물론 트럼프발 관세 폭탄의 영향을 최소화할 비장의 카드가 있다. 올 7월 30일 타결된 한·미 관세 협상에서 미 정부가 우리 정부에 반도체 관세의 최혜국 대우를 약속했기 때문이다. 최혜국 대우는 특정 국가에 부여한 가장 유리한 통상 조건을 다른 국가에도 똑같이 적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미 간 최종 관세 협상이 수개월째 지지부진하면서 K-반도체에 대한 최혜국 대우 시점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처했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과 관세 협상을 타결한 EU(유럽연합), 일본은 15%의 관세를 적용 받는다. 이에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미국 시장에서 불공정한 경쟁을 치를 판이다.

결국 트럼프발 관세 폭탄에서 자유롭지 못한 K-반도체만 집중 포화를 맞게 될 공산이 커진 것이다. 관세 리스크가 현실화하면 주요 빅테크를 고객사로 두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

이는 실제로 트럼프발 관세 폭탄을 때려 맞은 K-자동차의 사례에서 쉽게 엿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부터 수입산 자동차에 25%의 관세를 부과했다. 이어 5월부터는 자동차 부품으로 관세 대상을 확대했다.

자동차에 대한 품목별 관세로 인해 현대차·기아의 실적은 추락했다. 올 2분기 양사 영업이익 합산은 6조3664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무려 19.6% 감소한 수치다.

결국 현대차·기아는 트럼프 관세 리스크로 인해 1조6142억원에 달하는 영업익을 손해 봤다.

반도체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특히 AI 핵심 메모리인 HBM(고대역폭메모리)가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경고가 많다. 한국무역협회(무협)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미 반도체 수출액은 106억8000만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2017년 33억7000만달러 대비 3배 넘게 급증한 수치다.

한국산 반도체의 인기가 고공행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에 높은 관세를 부과할 경우, K-반도체의 경쟁력은 순식간에 저하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산업연구원은 지난해 12월 ‘트럼프 보편 관세의 효과 분석’ 보고서에서 미국이 관세를 부과할 경우, 대미 반도체 수출이 지금보다 4.7~8.3%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기준 106억8000만달러에 달했던 대미 반도체 수출 규모가 최대 8.3% 줄어든 97억9356만달러로 축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트럼프발 관세 폭탄으로 약 10억달러의 수익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SK하이닉스 HBM4 12단 샘플. <사진=SK하이닉스>

K-반도체가 반도체 관세를 회피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선 삼성·SK가 미 현지에 반도체 생산 시설을 서둘러 구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대부분의 반도체를 양산하고 있다. 미국 현지에서 반도체가 생산되지 않기에 트럼프발 관세 폭탄이 현실화하면 K-반도체 제품 가격은 급격히 치솟게 된다.

특히 삼성·SK의 든든한 효자 품목인 HBM은 그렇잖아도 비싼데 더 비싸질 것으로 염려된다. 이는 한국산 HBM의 가격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글로벌 시장 내 입지를 위축시키는 악재가 될 공산이 크다.

물론 K-반도체도 미국에 반도체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전임 바이든 행정부의 파격적인 지원 정책에 힘입어 미 현지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해 생산라인을 구축 중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021년 미 텍사스에 170억달러 규모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현재 건설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2030년까지 약 370억달러 이상을 투자해 미 텍사스주 테일러에 건설 중인 반도체 생산 공장에 추가로 신규 공장을 건설하고, 패키징 시설과 첨단 연구개발(R&D) 시설을 신축키로 했다.

SK하이닉스도 지난해 4월 미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38억7000만달러를 투자해 차세대 HBM 등 반도체 생산 시설을 짓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에 AI용 AVP(어드밴스드패키징) 생산 기지를 구축하는 것은 SK하이닉스가 최초다. SK는 인허가 등 공장 설립을 위한 사전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2024년 3월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린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 'GTC 2024'에 마련된 삼성전자 부스를 찾아 삼성 HBM3E에 남긴 친필 사인.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삼성과 SK의 주력인 메모리 생산 공장은 전무한 상태다. 결국 트럼프 관세 리스크를 피할 길이 없는 셈이다.

반도체 업계에 정통한 관계자는 “관세 부과로 K-반도체 제품 가격이 올라가면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마이크론) 등 경쟁사와의 가격 경쟁력에서 밀릴 수 있다”며 “아직 불확실성이 큰 상태지만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공장 하나당 30조원에 달하는 메모리 생산 시설을 미국에 지을지, 아니면 관세를 내는 것이 좋을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과 마주했다”고 말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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