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최태원, 美 투자 ‘공염불’ 위기…삼성·SK, 반도체 ‘脫 중국’ 카드 꺼내드나

시간 입력 2025-09-01 16:41:35 시간 수정 2025-09-01 16: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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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상무부, 삼성·SK 중국공장 ‘VEU’ 명단서 제외키로
중국 내 미국산 반도체 제조 장비 수입 차질 불가피
중국 생산 의존도 높은 K-반도체, 경쟁력 약화 우려
관보 정식 게재까지 4개월 남아…대책 마련 시간 촉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AI(인공지능) 열풍에 힘입어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암초에 부딪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삼성·SK를 대상으로 중국 공장 내 미국산 반도체 제조 장비 반입을 제한하기로 결정하면서 비상이 걸린 것이다. 중국 생산 의존도가 높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서는 당장 트럼프 리스크로 인해 반도체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는 중대 위기를 맞게 됐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의 미국 순방에 경제 사절단으로 동행했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미국과의 반도체 협력 의지를 재확인했는데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가 불리한 제재 조치를 취하면서 허탈함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1일 업계에 따르면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현지시간으로 2일 미국 연방 관보 정식 게재를 앞두고 사전 공개한 관보에 중국 법인인 ‘삼성반도체유한공사’, ‘SK하이닉스반도체유한공사’, ‘인텔반도체유한공사’ 등 3곳을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명단에서 제외한다고 명시했다. VEU는 별도의 허가 절차나 기간 제한 없이 미국산 장비를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예외적 지위를 뜻한다.

이번 조치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공장에 미국산 반도체 제조 장비를 수입하는 데 큰 차질을 빚게 됐다.

게다가 VEU 명단에 제외된 인텔반도체유한공사도 SK하이닉스가 인수한 곳이어서 사실상 K-반도체만 트럼프발 제재의 타깃이 됐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미 상무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소수의 외국 기업이 중국에 반도체 제조 장비와 기술을 허가 절차 없이 반입할 수 있도록 하는 바이든 시대의 구멍을 메웠다”며 “이제 이들 (외국) 기업은 장비·기술을 수출하기 위해 허가를 얻어야 하므로 경쟁자들과 동일한 상황이 됐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반도체 생산라인. <사진=삼성전자>

이번 조치는 지난 6월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보도를 통해 예고된 바 있다. WSJ에 따르면 제프리 케슬러 미 상무부 산업·안보담당 차관은 6월 중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대만 TSMC에 중국공장으로의 미국산 장비 반출을 제한한다는 방침을 통보했다.

케슬러 차관은 특히 VEU 지위를 보장받고 있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VEU 지위를 취소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보도됐다.

당시 미 상무부는 반도체 제조 장비 반출 허가 기준과 관련해 “삼성·SK의 중국 내 공장이 현상 유지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히면서도 “생산 역량 확대나 기술 업그레이드는 할 수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VEU 명단에서 빠지게 되면서 중국 반도체공장 운영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현재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서 낸드플래시공장을, 쑤저우에서 반도체 후공정(패키지)공장을 각각 운영 중이다. SK하이닉스도 중국 우시에서 D램 메모리 반도체 생산 시설을 가동 중이고, 다롄에 있는 인텔의 낸드공장에서 제품을 양산하고 있다.

중국 내 반도체 생산량도 상당하다. 삼성전자는 낸드의 40%를, SK하이닉스는 D램의 40%와 낸드의 20%를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다. 중국에서 상당 수준의 반도체를 양산하고 있는 삼성·SK가 미국산 반도체 제조 장비를 들여오지 못하게 되면 이들 공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저사양 칩만 생산하는 비핵심 생산 기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공장은 한국공장에 비해 1~2세대 늦은 공정의 제품을 생산 중이다. 이에 주기적으로 생산 능력 확대 및 기술 업그레이드를 위한 반도체 장비를 적기 수급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트럼프발 제재로 K-반도체의 중국공장 경쟁력 강화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물론 중국으로 미국산 반도체 제조 장비를 수입하는 길이 무조건적으로 막히는 것은 아니다. 대신 미 정부의 까다로운 허가 과정을 거쳐야 한다.

관보에 따르면 미 BIS는 이번 조치가 시행되면 연간 1000건의 수출 허가 신청이 추가로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여기에 허가를 받기까지 시일이 얼마나 소요될 지도 미지수다.

결국 삼성·SK는 트럼프 행정부의 허가를 받기 위해 매년 수많은 허가를 신청해야 하고, 성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 다만 그러는 사이 K-반도체가 원하는 시점에 중국공장으로 반도체 장비를 들여오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다행스러운 점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VEU 지위 박탈 조치가 당장 시행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미 관보는 이번 조치가 관보 정식 게재일인 2일(현지시간)로부터 120일 후부터 실행된다고 밝혔다. 이에 삼성·SK의 중국공장은 내년 1월부터 미국산 반도체 제조 장비를 들여올 경우 미 정부로부터 개별 허가를 받아야 한다.

단 약 4개월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어서 삼성·SK가 대책을 마련하기엔 촉박하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일각에선 삼성·SK 등 K-반도체 업체들이 중국 생산 의존도를 낮추는 방안을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홍석준 한국신용평가 기업평가본부 실장은 지난해 7월 발표한 SK하이닉스 향후 전망 보고서에서 “미국의 대(對)중국 반도체 규제 대응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며 “SK는 중국 외 지역에서 생산 기반을 조정하기 위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재무적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중국에서 상당 수준의 반도체를 양산하고 있는 삼성·SK로서는 ‘탈중국’을 고려하기가 쉽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 반도체 사업을 당장 접을 수 없는 상황이다”며 “미국의 대중 제재에 저촉되지 않고 중국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시급한 시점이다”고 지적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맨 왼쪽)과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 SK그룹 회장(맨 오른쪽)이 지난 8월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윌라드 호텔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리셉션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장에서는 두 대표 수장이 첫 한·미 정상회담에 경제 사절단으로 동행했을 당시 미 현지 반도체 생산 거점 구축에 변함이 없음을 재확인했는데도 미 정부가 삼성·SK에 불리한 조치를 내놓은 것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자칫 한미간 반도체 협력 노력이 ‘공염불’이 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지난 2021년 미 텍사스에 170억달러 규모의 파운드리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현재 건설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2030년까지 누적 450억달러를 투자해 미 텍사스주 테일러에 건설 중인 반도체 생산 공장에 추가로 신규 공장을 건설하고, 패키징 시설과 첨단 연구개발(R&D) 시설을 신축키로 했다.

SK하이닉스도 지난해 4월 미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38억7000만달러를 투자해 차세대 HBM 등 반도체 생산 시설을 짓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에 AI용 AVP(어드밴스드패키징) 생산 기지를 구축하는 것은 SK하이닉스가 최초다. SK는 인허가 등 공장 설립을 위한 사전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안팎에선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 기업의 직접적인 대중 반도체 수출 제재는 완화하면서 K-반도체에 대해 이러한 조치를 취하는 것에 대해, 삼성·SK를 통해 중국으로 미국의 첨단 반도체 제조 기술이 유출될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포석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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