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다음주 반도체 관세 발표”…구체적 수치 언급 안 해
미 정부, ‘최혜국 대우’ 약속했지만 최소 15% 관세 적용할 듯
‘HBM 투톱’ SK·삼성, 관세 타격 불가피…“상황 예의주시 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조만간 반도체에 대한 품목별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관세율이 얼마인지는 아직 미정이다. 다만 반도체와 함께 거론했던 의약품의 경우 최대 250%의 관세를 매기겠다고 밝힌 만큼, 곧 발표될 반도체 관세 수준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한·미 관세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될 당시, 우리 정부는 미국 정부로부터 반도체 관세의 ‘최혜국 대우’를 약속 받았다, 그러나 손바닥 뒤집듯 마음을 바꾸는 트럼프 대통령을 두고 볼 때 관세율이 어떻게 책정될지 오리무중이어서 마냥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등 K-반도체가 관세 리스크의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당장 고강도 관세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삼성·SK의 셈법만 복잡해지는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CNBC와의 인터뷰에서 반도체에 대한 품목별 관세와 관련해 “다음주 정도 안에 구체적인 관세율을 밝힐 계획이다”고 말했다. 그는 “반도체에 대한 (품목별 관세) 발표를 할 예정인데, 이는 (기존 관세와) 별도의 카테고리다”며 “왜냐하면 우리는 그것들이 미국에서 생산되길 원하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반도체 관세와 관련해 구체적인 수치나 범위 등은 언급하지 않았다.
비록 반도체 관세율이 어느 정도일지 공개되진 않았지만, 함께 발표할 것으로 보이는 의약품 관세를 살펴보면 관세 폭탄에 맞먹는 수준일지 모른다는 우려가 많다.
트럼프 대통령은 의약품에 대한 품목별 관세와 관련해 “처음에는 소액을 부과할 계획이다”면서도 “그러나 1년에서 1년 반 후에는 150%, 그 다음에는 250%까지 인상할 것이다”고 으름장을 놨다.
의약품 관세율은 당초 언급했던 수준을 크게 상회하는 것이다. 앞서 지난달 초 트럼프 대통령은 의약품에 최대 20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말했으나 이번에 최대 250%로 더 올려 잡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반도체에도 적지 않은 고율 관세가 매겨지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반도체 생산라인. <사진=삼성전자>
물론 트럼프발 관세 폭탄의 영향을 최소화할 비장의 카드가 있다. 지난달 30일 타결된 한·미 관세 협상에서 미 정부가 우리 정부에 반도체 관세의 최혜국 대우를 약속했기 때문이다. 최혜국 대우는 특정 국가에 부여한 가장 유리한 통상 조건을 다른 국가에도 똑같이 적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최혜국 대우가 현재와 같은 무관세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상무부는 EU(유럽연합)와의 관세 협상 당시 반도체 품목에 최대 15%의 관세율을 적용키로 했다. 이를 고려할 때 한국에도 같은 세율이 매겨질 가능성이 크다.
사실상 반도체 관세 부과가 기정사실화하며 당장 K-반도체가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관세 리스크가 현실화하면 주요 빅테크를 고객사로 두고 있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실제로 트럼프발 관세 폭탄을 때려 맞은 K-자동차의 사례에서 쉽게 엿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부터 수입산 자동차에 25%의 관세를 부과했다. 이어 5월부터는 자동차 부품으로 관세 대상을 확대했다.
자동차에 대한 품목별 관세로 인해 현대자동차·기아의 실적은 가파르게 추락했다. 올 2분기 양사 영업이익 합산은 6조3664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무려 19.6% 감소한 수치다.
결국 현대차·기아는 트럼프 관세 리스크로 인해 1조6142억원에 달하는 영업익을 손해 봤다.

SK하이닉스 HBM4 12단 샘플. <사진=SK하이닉스>
반도체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특히 AI 핵심 메모리인 HBM(고대역폭메모리)가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경고가 많다. 한국무역협회(무협)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미 반도체 수출액은 106억8000만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2017년 33억7000만달러 대비 3배 넘게 급증한 수치다.
K-반도체의 대미 수출이 크게 늘어난 것은 AI 핵심 메모리인 HBM 열풍 덕분이다. 챗GPT 등 생성형 AI가 날로 고도화되면서 이를 구현하기 위한 첨단 AI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같은 흐름에 수혜주로 부상한 제품이 바로 HBM이다.
HBM의 인기는 삼성·SK에 큰 호재로 작용했다. K-반도체는 글로벌 HBM 시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한 상태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SK하이닉스의 전 세계 HBM 시장 점유율은 52.5%로, 이미 절반을 넘겼다. 삼성전자도 42.4%의 점유율을 확보하면서 SK하이닉스의 뒤를 바짝 추격 중이다. 삼성·SK의 점유율 합산은 94.9%로, 사실상 K-반도체가 전 세계 HBM 공급을 전담하는 상황이다.
미 정부의 대(對)중국 관세에 따른 반사 효과도 한몫했다. 앞서 지난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중국산 반도체에 25% 관세를 적용했다. 지난해 5월엔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산 반도체 관세율을 50%로 끌어올렸다.
여기에 중국 전자 제품의 보안 문제도 한국산 반도체의 수출 확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실제 미국 내 주요 대학, 기업들은 데이터센터 서버 구축에 탑재되는 메모리 반도체를 중국산에서 한국산으로 대거 교체한 바 있다.
한국산 반도체의 인기가 고공행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에 높은 관세를 부과할 경우, K-반도체의 경쟁력은 순식간에 저하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산업연구원은 지난해 12월 ‘트럼프 보편 관세의 효과 분석’ 보고서에서 미국이 관세를 부과할 경우, 대미 반도체 수출이 지금보다 4.7~8.3%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기준 106억8000만달러에 달했던 대미 반도체 수출 규모가 최대 8.3% 줄어든 97억9356만달러로 축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트럼프발 관세 폭탄으로 약 10억달러(약 1조4590억원)의 수익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K-반도체가 고율 관세를 회피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선 삼성·SK가 미 현지에 반도체 생산 시설을 서둘러 구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대부분의 반도체를 양산하고 있다. 미국 현지에서 반도체가 생산되지 않기에 트럼프발 관세 폭탄이 현실화하면 K-반도체 제품 가격은 급격히 치솟게 된다.
특히 삼성·SK의 든든한 효자 품목인 HBM은 그렇잖아도 비싼데 더 비싸질 것으로 염려된다. 이는 한국산 HBM의 가격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글로벌 시장 내 입지를 위축시키는 악재가 될 공산이 크다.
물론 K-반도체도 미국에 반도체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전임 바이든 행정부의 파격적인 지원 정책에 힘입어 미 현지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해 생산라인을 구축 중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021년 미 텍사스에 170억달러 규모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현재 건설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2030년까지 약 370억달러 이상을 투자해 미 텍사스주 테일러에 건설 중인 반도체 생산 공장에 추가로 신규 공장을 건설하고, 패키징 시설과 첨단 연구개발(R&D) 시설을 신축키로 했다.
SK하이닉스도 지난해 4월 미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38억7000만달러를 투자해 차세대 HBM 등 반도체 생산 시설을 짓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에 AI용 AVP(어드밴스드패키징) 생산 기지를 구축하는 것은 SK하이닉스가 최초다. SK는 인허가 등 공장 설립을 위한 사전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건설 중인 삼성전자 파운드리공장. <사진=경계현 삼성전자 고문 인스타그램 캡처>
그러나 삼성과 SK의 주력인 메모리 생산 공장은 전무한 상태다. 결국 트럼프 관세 리스크를 피할 길이 없는 셈이다.
반도체 업계에 정통한 관계자는 “관세 부과로 K-반도체 제품 가격이 올라가면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마이크론) 등 경쟁사와의 가격 경쟁력에서 밀릴 수 있다”며 “아직 불확실성이 큰 상태지만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공장 하나당 30조원에 달하는 메모리 생산 시설을 미국에 지을지, 관세를 내는 것이 나을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과 마주했다”고 말했다.
트럼프발 관세 폭탄 부과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K-반도체는 미 정부 발표를 예의주시하며 대응 방안을 고심 중이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31일 올 2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미국 상무부가 조사 중인) 반도체에 대한 품목별 관세 대상에 반도체 뿐 아니라 스마트폰 등 완제품이 포함돼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조사 결과 발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반도체 관련 한·미 양국 간 협의 결과 등에 따른 기회와 리스크를 다각도로 면밀히 분석해 사업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대응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도 지난달 24일 올 2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향후 관세 정책에 따라 수요가 영향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수요가 명확한 제품을 중심으로 안정적으로 사업을 운영하겠다”고 전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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