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최종현 회장 음성 녹취 오디오 테이프 3530개 등 13만여 점 복원
과거 경제 상황·사업보국 의지·선대 경영인 혜안 등 경영 메시지 담겨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왼쪽)이 1996년 1월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조지 H.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만나 환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SK>
“상당수 사람이 ‘최근 정치 불안이 커서 경제 큰일 나는 거 아니에요?’라고 입에 올리고 내린다지?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우리가 ‘정치가 불안할수록 경제까지 망가지면 안 된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경제가 나빠지지 않는다는 거야.”(고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
1970~1990년대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기를 이끈 고 최종현 회장의 경영 철학과 활동 등을 담은 이른바 ‘선경실록’이 유고 27년 만에 세상 빛을 보게 됐다.
SK는 그룹 수장고 등에 장기간 보관해 온 고 최종현 회장 관련 자료를 발굴해 디지털로 변환, 영구 보존·활용하는 ‘디지털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지난달 말 완료했다고 2일 밝혔다.
2023년 ‘창사 70주년 어록집’을 제작·발간하는 과정에서 옛 자료의 역사적 가치를 확인하고 프로젝트를 추진한 지 2년 만이다.
이번에 복원한 자료는 오디오·비디오 약 5300건, 문서 3500여 건, 사진 4800여 건 등 총 1만7620건, 13만1647점이다.
이 중 고 최종현 회장의 음성 녹취만 오디오 테이프로 3530개에 달한다. 이는 하루 8시간을 연속으로 들어도 1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는 어마어마한 분량이다.
고 최종현 회장은 생전에 사업 실적·계획 보고, 구성원과의 간담회, 각종 회의와 행사 등을 녹음해 원본으로 남겼다. SK그룹의 경영 철학과 기법을 발전시키고, 궁극적으로 우리나라 기업 경영의 수준을 높이려는 고 최 회장의 강한 의지 때문이다. 이는 훗날 SK 고유의 기록 문화로 계승됐다.
이와 관련해 SK 관계자는 “SK 고유의 경영 관리 체계인 ‘SKMS(SK경영관리시스템)’를 정립하고 전파하는 과정, 그룹의 중요한 의사결정 순간에서 임직원과 토론하는 장면, 국내외 저명 인사와의 대담 내용 등이 상세하게 보존돼 있다”고 설명했다.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좌석 기준 왼쪽에서 네 번째)이 1998년 1월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에서 발표를 경청하고 있다. <사진=SK>
고 최종현 회장의 생생한 육성 녹음에는 당시 경제 상황과 우리 기업인들의 사업보국에 대한 의지, 크고 작은 위기를 돌파해 온 선대 경영인의 혜안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례로 1980년대 중반 선경 임원·부장 신년 간담회에서 고 최종현 회장은 “별안간 예측도 못 했던 중대한 정치 사안이 생겨도 우리나라는 수습이 빨라. 우리는 가장 리얼리티를 걷는 기업가들이니까 불안 요소 때문에 괜히 우리(기업인)까지 들뜰 필요는 없다라고 난 그렇게 생각해”라며 대외 불확실성에 흔들리지 말고 뚝심 있게 경영 활동에 매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놨다.
1982년 신입 구성원과의 대화에서는 “땅덩어리가 넓은 미국에서도 인재라면 외국 사람도 쓰는 마당에 한국이라는 좁은 땅덩어리에 지연, 학연, 파벌을 형성하면 안 된다”며 우리나라의 관계 지상주의를 깨자고 임기 내내 여러 차례 강조했다.
연구개발(R&D)의 중요성도 줄기차게 피력했다. 1992년 임원들과 간담회에서 고 최종현 회장은 “R&D를 하는 직원도 시장 관리부터 마케팅까지 해보며 돈이 모이는 곳, 고객이 찾는 기술을 알아야 R&D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며 오늘날 HBM(고대역폭메모리)의 성공 과정을 미리 예견한 듯 실질적인 연구를 주문했다.
같은해 SKC 임원들과 회의에서는 “플로피 디스크(필름 소재의 데이터 저장장치)를 팔면 1달러지만, 그 안에 소프트웨어를 담으면 가치가 20배가 된다”며 우리나라 산업이 하드웨어 제조에 머물러선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SK의 성장 과정도 엿볼 수 있다. 세계 경제 위기를 몰고 온 1970년대 1·2차 석유 파동 당시 정부의 요청에 따라 중동의 고위 관계자를 만나 석유 공급에 대한 담판을 짓는 내용, 1992년 획득한 이동통신사업권을 반납할 때 좌절하는 구성원을 격려하는 상황 등 그룹의 역사를 고 최종현 회장의 목소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SK 관계자는 “고 최종현 회장의 경영 기록은 한국 역동기를 이끈 기업가들의 고민과 철학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보물과 같은 자료다”며 “양이 매우 많고 오래돼 복원이 쉽지 않았지만 첨단 기술 등을 통해 품질을 크게 높일 수 있었다”고 밝혔다.
향후 SK는 디지털 아카이브의 자료를 그룹 고유의 철학인 SKMS와 수펙스 추구 문화 확산 등을 위해 활용할 방침이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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