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27일 이천본사서 ‘제77기 정기 주총’ 개최
곽노정 “HBM 등 고부가 메모리 수요, 더욱 확대될 것”
‘HBM4’ 올 하반기 양산…칩 생산 능력 확대·투자 지속
고객사 내년 물량 선제 확보 나서…“올 상반기 중 완판”
곽노정, 사내이사 재선임…향후 3년 간 사업 비전 속도

AI(인공지능) 열풍에 힘입어 글로벌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을 선도해 온 SK하이닉스가 ‘AI 메모리 최강자’ 굳히기에 돌입했다.
삼성 반도체보다 먼저 HBM 패권을 거머쥔 SK는 올해 안에 6세대 HBM인 ‘HBM4’ 12단 제품을 양산, 차세대 AI 메모리칩 시장도 지켜 나간다는 전략이다. 여기에 글로벌 빅테크의 AI 투자 확대 기조가 올해도 지속될 전망이어서, HBM 등 고부가 메모리 수요는 매우 견조할 것이란 점도 큰 호재다. SK하이닉스는 내년 물량까지 선점해 ‘HBM 1등’ 자리를 확고히 한다는 구상이다.
SK하이닉스는 27일 경기 이천본사에서 ‘제77기 정기 주주 총회(주총)’을 개최했다. 이날 정기 주총에서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은 창사 이래 최고치를 기록한 지난해 경영 실적을 소개했다.
실제로 지난해 SK하이닉스 매출은 66조1930억원으로, 2023년 32조7657억원 대비 102%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익은 -7조7303억원에서 23조4673억원으로, 대규모 흑자전환 했다. 영업익 증가 규모는 무려 31조1976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매출은 종전 최고였던 2022년(44조6216억원)보다 21조원 이상 높은 실적을 달성했고, 영업익도 메모리 초호황기였던 2018년(20조8437억원)의 성과를 뛰어 넘었다.
그러나 곽 사장은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대내외 불확실성 심화로 경영 환경이 녹록치 않을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HBM 등 고부가 메모리 수요는 AI 훈풍을 타고 더욱 확대될 것으로 낙관했다.
곽 사장은 “최근 보호 무역주의가 확산되고 있고, 경영 불확실성이 지속돼 올해 세계 경제의 저성장 기조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도 “그러나 AI 분야에 대한 주요 빅테크의 인프라 투자가 확대되고 있고, 데이터센터 투자도 늘고 있어 메모리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GPU(그래픽처리장치) 등 AI 반도체, ASIC(주문형 반도체) 증가로 HBM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며 “2023년 대비 올해 HBM 시장은 8.8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시장 전망 속에서 SK하이닉스의 올해 전체 D램 매출 중 HBM 비중은 50% 이상이 될 것으로 예측한다”며 “이는 SK의 올 연간 실적을 더욱 끌어올리는 기폭제가 될 것이다”고 덧붙였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이 27일 경기 이천본사에서 열린 ‘제77기 정기 주주 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곽 사장은 SK하이닉스를 ‘글로벌 톱 AI 메모리 기업’으로 도약시키기 위해 차세대 HBM 개발에 전사적 기술 역량을 쏟아 붓는다. 특히 6세대 HBM인 HBM4 12단 제품을 올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양산한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이미 SK는 HBM4 주도권 경쟁에서 가장 앞서 가고 있다. 지난 19일 SK하이닉스는 HBM4 12단 샘플을 세계 최초로 주요 고객사들에게 제공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샘플로 제공한 HBM4 12단 제품은 세계 최고 수준의 속도를 자랑한다. 무려 초당 2TB 이상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대역폭을 구현했다. 이는 5GB 용량의 FHD급 영화 400편 이상 분량의 데이터를 1초 만에 처리하는 수준으로, 이전 세대인 ‘HBM3E’ 대비 60% 이상 빨라졌다.
용량도 12단 기준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SK하이닉스는 앞선 세대를 통해 경쟁력이 입증된 어드밴스드 MR-MUF(매스리플로우-몰디드언더필) 공정을 통해 12단 기준 최고 용량인 36GB를 구현했다. 아울러 칩의 휨 현상을 제어하고, 방열 성능도 높여 제품의 안정성도 극대화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HBM 시장을 이끌어 온 기술 경쟁력과 생산 경험을 바탕으로 당초 계획보다 조기에 HBM4 12단 샘플을 출하해 고객사들과 인증 절차를 시작하게 됐다”며 “양산 준비 또한 올 하반기 내로 마무리해 차세대 AI 메모리 시장에서의 입지를 굳건히 하겠다”고 강조했다.
첨단 기술력을 앞세워 차세대 HBM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SK는 고객사의 내년 물량을 선제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곽 사장은 “HBM의 특성상 높은 투자 비용과 긴 생산 기간이 요구되는 만큼 고객사와의 사전 물량 협의를 통해 판매 가시성을 높이고 있다”며 “내년 HBM 물량은 올 상반기 내 고객과 협의를 마무리할 예정이다”며 “이를 통해 매출 안정성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곽 사장이 내년 물량 역시 ‘솔드아웃(완판)’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 아니냐는 분석을 제기하기도 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HBM 물량을 이미 완판한 상태로, 현재 주력 제품인 5세대 HBM ‘HBM3E’ 12단 제품을 엔비디아를 비롯한 주요 고객사에 공급하고 있다.
곽 사장의 이날 발언은 내년 물량 역시 올 상반기 중 완판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HBM3E 12단 제품은 물론 HBM4 12단 제품도 함께 판매될 것으로 점쳐진다.

SK하이닉스 ‘HBM4’ 12단 샘플. <사진=SK하이닉스>
곽 사장은 늘어나는 HBM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칩 생산 능력을 더 확대하고, 투자 또한 지속해 나가기로 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말 준공 예정인 청주 M15X 팹에서 1b(10나노급 5세대) 공정을 사용해 HBM을 생산한다는 방침이다. HBM을 비롯한 차세대 메모리 생산 거점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1기 팹의 경우, 2027년 2분기 오픈을 목표로 지난달 공사를 시작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SK는 미래 AI 메모리 수요에 따라 단계별로 클린룸을 확장해 나갈 예정이다.
곽 사장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1기 팹 양산과 동일한 환경에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이 신기술 및 신제품을 검증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할 예정”이라며 “대한민국 AI 반도체 생태계 강화에 앞장서고자 한다”고 전했다.
HBM을 제외한 메모리 시장에서의 경쟁력 강화 전략도 내놨다.
SK하이닉스는 새로운 AI 서버용 메모리 표준으로 주목받고 있는 SOCAMM 시장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주요 고객사와 협업 추진 및 양산을 목표로 제품 개발을 진행 중이다. SOCAMM은 저전력 D램 기반의 AI 서버 특화 메모리 모듈을 뜻한다.
또한 QLC(Quadruple Level Cell) 기반 고용량 기업용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 라인업도 확대해 데이터센터 분야에서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온디바이스(On device) AI 메모리 제품인 LPCAMM2, UFS5.0 등 뿐만 아니라 CXL(컴퓨트익스프레스링크), PIM(프로세싱인메모리)과 같은 차별화된 AI 메모리 경쟁력도 제고해 ‘풀 스택 AI 메모리 프로바이더’로서의 미래를 앞당긴다는 포부도 내비쳤다.
이날 주총 안건 심의 과정에서 이뤄진 질의응답 시간에 주주들은 중국 저가형 AI 모델 ‘딥시크’의 등장으로 HBM4 수요가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내놨다. 이에 곽 사장은 “(딥시크와 같은 모델은) 중장기적으로 AI 메모리 수요에 긍정적일 것이다”며 “또 HBM3E와 HBM4 생산 밸런스에 있어서는 (두 제품이) 같은 D램 플랫폼을 사용하고 있어 수요에 맞춰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 <사진=SK하이닉스>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3위 업체인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마이크론)의 D램 가격 인상 조짐과 관련한 질문도 나왔다. 최근 마이크론은 AI 수요 확대에 따라 D램에 적용되는 신기술에 대한 가치가 함께 반영돼야 한다는 점을 이유로, 고객사와 채널 파트너사에 D램 일부 제품군의 가격 인상 계획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상락 SK하이닉스 GSM(글로벌세일즈마케팅)담당 부사장은 “마이크론이 채널 파트너사에게 보낸 서신을 우리도 봤다”며 “저희는 따로 고객사에게 그런 서신을 보내진 않고, 항상 유동적으로 대응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지난해 하반기 고객사의 축적된 재고가 많이 소비되고 있고, 메모리 업체들의 판매 재고도 줄어든 상황이다”며 “다만 현재 시장 분위기가 단기적일지, 중장기적일지는 조금 더 모니터링해 봐야 한다”고 전했다.
한편 SK하이닉스는 이날 주총에서 재무제표 승인, 사내이사 및 기타비상무이사 선임, 이사 보수 한도 승인 등 모든 안건을 원안대로 가결했다.
특히 큰 관심을 모았던 곽 사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은 무난히 주총을 통과했다. 곽 사장이 임기 3년의 사내이사직을 또 한번 수행하게 되면서, ‘메모리 최강자’로 우뚝 서기 위한 비전은 한층 더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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