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특별법’, 주 52시간제 논란 또 ‘갈팡질팡’…삼성·SK, ‘AI 칩 개발’ 골든타임 놓치나

시간 입력 2025-02-10 07:00:00 시간 수정 2025-02-09 18:5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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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주 52시간 근무 예외 조항 빼고 K-칩스법 추진
국힘 강하게 반발…“핵심 뺀 반도체법, 무슨 의미 있나”
반도체 특별법 처리 ‘올스톱’ 우려…삼성·SK, 경쟁력 잃을 판
최상목 대행 “첨단 칩 역량 제고, 법안 처리 필수불가결”

미국, 일본, 중국 등 세계 주요국들이 반도체 경쟁력 강화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과 달리, 국내에서는 이른바 ‘반도체 특별법(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강화 및 혁신 성장을 위한 특별법안)’ 처리를 두고 여야 대치가 장기화 되고 있다. 특히 반도체 업종의 ‘주 52시간 근로제’ 예외 적용을 놓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글로벌 시장을 선도해 온 K-반도체가 경쟁력을 잃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0일 정치권과 업계 등에 따르면, 거대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반도체 특별법에 주 52시간 근로제 예외 조항을 포함하지 않고, 정부의 세제 혜택·재정 지원 등 여야 합의 내용만으로 법안을 우선 통과시키는 단계적 처리 방침을 사실상 확정했다.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앞서 지난 7일 “반도체 특별법에 대한 당의 입장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면서도 “우선 모두가 동의하는 국가 지원 관련 사안부터 처리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이고 있다”고 밝혔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도 주 52시간 근무 예외 조항은 추후 논의하고, 합의된 부분부터 처리하자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진 정책위의장은 “여야 이견이 없는 국가적 지원 부분을 먼저 처리하고, 여야 뿐만 아니라 노사 간 이견이 있는 근로 시간 적용 제외 문제는 별도로 논의를 지속해서 합의되는 대로 처리하자”고 주장했다.

반도체 산업 연구개발(R&D) 분야 인력에 한해 주 52시간제 예외를 적용하는 특례 조항은 따로 떼어내 별도로 논의하자는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월 3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당내 및 노동계의 반발이 예상보다 거세지자, 한발 물러서는 모습이다. 앞서 지난 3일 이 대표는 정책 토론회에서 “1억3000만원 이상의 고소득 R&D 인력에 한해 유연성을 부여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의견에 많이 공감한다”며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 가능성을 내비친 바 있다.

그러나 같은달 5일 본인이 직접 주재한 수출 기업 간담회에서는 노사 간 합리적인 논의를 요청하며 “반도체 산업 육성에 주 52시간 근무 예외가 꼭 필요하느냐”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표측은 “근로 시간 문제는 단기간 노사 간 접점을 찾기 쉽지 않아 보인다”며 “반도체 지원이 시급하고 중요하기 때문에 합의된 세제·재정 지원부터 먼저 처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민주당이 당초 입장을 바꿔 주 52시간제 예외 특례 조항을 제외한 채 특별법을 처리하겠다고 선회함에 따라, 여당인 국민의힘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그간 국민의힘은 R&D 핵심 인력의 근로 시간 제약으로 인해 반도체 산업 경쟁력이 약화될 위기에 처한 만큼 주 52시간 근로제 예외를 반도체 특별법에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7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이 주 52시간제 예외를 보류하자고 한 것과 관련해 “국민들을 혼란케 하는 민주당 이재명 세력의 갈지(之)자 행보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며 “미래를 위한 씨앗을 쏙 빼놓은 ‘씨 없는 수박’이 바로 이재명 우클릭의 실체다”고 공격했다.

권 원내대표는 “산업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핵심이 주 52시간 근로제 예외 조항인데, 핵심을 뺀 반도체 특별법이 무슨 의미가 있나”라고 반문했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역시 “노동계 반발이 심해지자 이 대표가 기존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며 “‘기업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이라고 했던 이 대표의 발언도 결국 거짓이었음이 증명됐다”고 비판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오른쪽)와 김상훈 정책위의장이 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반도체 특별법 주 52시간제 특례 도입을 위한 당정협의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처럼, 여야가 주 52시간제 예외 특례 조항을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이면서, 반도체 특별법 국회 통과는 다시금 미뤄지는 분위기다.

해당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한국과 미국에 대규모 공장을 짓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투자비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또한 반도체 R&D 종사자에 대한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으로 HBM(고대역폭메모리) 등 첨단 반도체 개발 속도도 한층 빨라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탄핵 정국과 여야 갈등으로 반도체 특별법 추진은 다시 ‘올스톱’ 될 위기를 맞고 있다.

반도체 특별법 제정을 손꼽아 기다렸던 삼성, SK 등 K-반도체 업계로서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먼저 첨단 반도체 경쟁력을 서둘러 끌어올려야 하는 삼성·SK가 K-칩스법에 따른 반도체 직접 보조금 혜택을 받지 못할 경우, 글로벌 업체들과의 반도체 주도권 다툼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 미국, 일본 등 주요국은 자국 반도체 업체에 보조금을 지급하며 첨단 칩 역량 제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의 ‘주요국 첨단 산업별 대표 기업 지원 정책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미국 정부는 자국 반도체 업체인 인텔에 85억 달러를 지급했다. 일본 정부도 라피더스에 63억4000만달러의 보조금을 투입했다.

그러나 같은해 우리 정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보조금을 일절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 간접 지원만을 고수하는 정책 기조로 인해 K-반도체가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주요국의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 기조는 지난해에도 이어졌다. 미국은 메모리 반도체 업체 마이크론에 61억6500만달러를 보조금으로 지급했다. 일본은 지난해 11월 일 반도체 산업에 10조엔을 지원하는 종합 경제 대책을 새로 발표했다. 중국도 역대 최대 규모인 64조원의 반도체 투자 기금 ‘빅펀드’를 조성한 상태다.

이와 달리, 현재 우리나라의 반도체 관련 인센티브 규모는 세액 공제를 포함해도 1조2000억원 수준에 그친다.

또한 쟁점이 되고 있는 반도체 R&D 종사자에 대한 주 52시간제 예외가 적용되지 못할 경우, K-반도체의 첨단 기술개발 경쟁력도 담보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통상 2년이 소요되는 반도체 신제품 개발 과정 중 시제품 검증에만 6개월에서 1년이라는 기간이 소요된다. 이 기간 중 R&D 핵심 인력은 시제품 집중 검증을 위해 3~4일 밤샘 근로가 불가피 하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실제 미국·일본·대만 등 주요 경쟁국도 이런 이유 때문에 반도체 R&D 인력의 무제한 근무를 허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엄격한 주 52시간제로 인해 R&D 핵심 인력 운용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재계도 국부산업인 반도체 경쟁력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반도체 특별법 처리가 지지부진한 것에 큰 우려를 표명하고, 여야의 초당적 협력을 촉구하고 나섰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지난해 12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의장 초청 경제단체 비상 간담회에서 “여야 모두 민생 안정에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며 “초당적 협력을 통해 반도체 특별법 등 비쟁점 법안만이라도 서둘러 통과시켜주신다면 대한민국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긍정적 시그널이 될 것이다”고 밝혔다.

정부도 반도체 특별법의 조속한 처리를 요구하고 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세계 각국의 첨단 반도체 분야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K-반도체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도체 특별법 처리가 필수불가결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최 권한대행은 “반도체 특별법은 AI 발전의 기초가 되는 법안”이라며 “특히 우리와 경쟁하는 주요국에 비해 손발이 묶여 있는 첨단 반도체 R&D 인력들에 대해서는 마음껏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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