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WEF서 “미국 와서 제품 만들어라”
“그렇지 않으면 다양한 금액의 관세 낼 것”
미, 모든 수입품에 10~20% 보편 관세 부과
캐나다·멕시코, 2월 1일부터 관세 25% 적용
K-가전, 트럼프발 관세 리스크에 ‘비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에 기반을 둔 ‘트럼프 2.0 시대’의 포문을 열었다. 경제·안보 측면에서 미국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국내 산업계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방향에 맞춰 사업 및 투자 전략을 전면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취임과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 각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전포고 나서면서,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모습이다. 특히 반도체, 배터리 등 타 업계와 달리 미 현지에 생산 거점을 갖추지 못한 삼성전자, LG전자 등 K-가전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고강도 관세 부과가 초읽기에 들어간 만큼, K-가전을 둘러싼 ‘관세 폭탄’ 우려도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3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경제포럼(WEF) 화상 연설에서 “전 세계 기업들에 대한 내 메시지는 매우 간단하다”며 “미국에 와서 제품을 만들어라”고 압박했다. 그는 “만약 미국에서 제품을 만들지 않는다면 그건 여러분의 권리이지만, 여러분은 매우 간단하게 다양한 금액의 관세를 내야 할 것이다”며 “반대로 미국에서 제품을 만들면 우리는 지구상 어느 나라보다 낮은 세금을 적용하겠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업들에 대한 유인책으로 현재 21%인 법인세율을 15%로 낮춘다는 입장이다. 사실상 미국에서 제품을 만드는 기업들은 15%의 세율을 적용 받게 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는 우리의 경제를 강화하고 채무를 갚는 데 필요한 수천억달러, 심지어 수조달러를 우리 재정에 보탤 것이다”며 “일자리를 만들고, 공장을 세우고, 기업을 키우기에 미국보다 더 좋은 장소는 없을 것이다”고 단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대로 미국에서 제품을 생산하지 않는다면 기업들은 어마어마한 관세에 직면하게 될 공산이 크다. 그는 20일(현지시간) 취임 직후부터 공개적으로 캐나다, 멕시코, 중국에 대해 관세폭탄을 부과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앞서 “멕시코와 캐나다에 25%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다”며 “2월 1일에 (부과)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중국에 10%의 관세를 추가로 부과하는 것에 대해서도 논의하고 있다”며 “(부과 시점은) 아마도 2월 1일이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캐나다, 멕시코, 중국을 시작으로 미국의 관세 정책이 현실화할 전망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수입품에 10~20%의 보편 관세를 부과하고, 특히 중국에 대해서는 6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했다.
최근엔 공약을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도 내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4일 “우리의 관세와 수입세, 외국의 원천에서 들어오는 모든 수입을 징수할 대외수입청(External Revenue Service)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국세청(Internal Revenue Service)이 미국 납세자의 세금을 걷는 것처럼 관세를 걷을 별도 기관을 설립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우리의 위대한 국민에 세금을 부과하기 위해 국세청에 의존해 왔다”며 “미국 경제는 무르고 한심할 정도로 약한 무역 협정을 통해 우리 자신을 과세하면서 세계에 성장과 번영을 안겼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제는 그것을 바꿀 시기다”며 “우리는 우리와 교역에서 돈을 벌어가는 이들에게 청구하기 시작할 것이고, 그들은 드디어 공정한 몫을 내기 시작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LG전자 미국 테네시주 가전공장. <사진=LG전자>
트럼프 발(發) 관세 폭탄은 수출 주도형 경제체제인 한국경제에도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생산한 제품이 미국으로 수입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공언한 대로 보편 관세 10~20%를 적용 받게 되기 때문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보편 관세와 관련해 아직 구체적인 내용을 발표하지는 않은 상태다. 그러나 북미 시장 진출을 위해 캐나다와 멕시코에 진출한 기업의 경우 얘기가 달라진다. 미국이 이들 국가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만큼 캐나다, 멕시코에서 생산된 제품 또한 높은 수준의 관세 부담을 떠안게 될 수 밖에 없다.
당장, 멕시코에 생산 시설을 구축한 삼성·LG 등 K-가전이 관세 리스크에 적나라하게 노출돼 난처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멕시코는 인건비가 저렴하고, 미국·멕시코·캐나다 자유무역협정(USMCA)의 혜택을 받을 수 있어 북미 수출 거점으로 최적의 입지로 꼽혔다. 이에 삼성전자는 멕시코 티후아나와 케레타로, LG전자는 몬테레이, 레이노사 등에 가전공장을 구축하고, 대미 수출 전진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의 캐나다, 멕시코에 대한 관세 부과가 확실시되면서, 당장 K-가전의 북미 사업 전략에도 대대적인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트럼프 리스크를 우려한 LG전자는 다양한 시나리오 중 하나로 생산지 이전을 고려하고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김창태 LG전자 CFO(최고재무책임자) 부사장은 지난 23일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아직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구체화된 것은 아니지만 잠재적인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나리오별 대응 방안을 수립 중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고율 관세가 부과되는 제품은 한 제품을 여러 생산지에서 대응할 수 있는 ‘스윙 생산’ 체제를 확대하고, 원가 경쟁력을 기반으로 최적 생산지를 운영할 예정”이라며 “필요 시에는 선행 생산으로 물량을 분산시키고, 유통 업체들과 협업해서 리스크를 최소화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그는 “만일 관세 인상 수준이 본질적인 공급망 변화를 필요로 하는 경우, 생산 시설 이전 및 생산 능력 조절 등 적극적인 생산지 변화도 고려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업계 안팎에선 LG가 세탁기와 건조기를 생산하는 미국 테네시공장에서 냉장고와 TV 등도 함께 만드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 광주사업장. <사진=삼성전자>
LG와 함께 K-가전의 양대 축인 삼성은 트럼프발 관세 폭탄과 관련해 별다른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다.
다만, 삼성전자의 경우 미 현지에 가동 중인 가전공장이 없어 LG처럼 생산지 이전을 검토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삼성이 LG보다 관세 리스크에 훨씬 취약한 상태에 직면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조치가 시행되더라도 미국 제조 공급망에 대한 한국 기업의 기여도를 적극 알리고, 이를 통해 면제를 이끌어내는 등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최근 한국무역협회(무협)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대미 수출 기업은 미국 내 수입자와의 협력을 통해 관세 조치가 미국 내 생산에 미칠 부정적 영향 등을 적극 소명하고, 미국에 기 투자한 기업은 고용 창출, 세수 등 미국 경제 기여도를 적극 내세울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한편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으로부터 우리 기업을 지키기 위한 정부의 움직임도 분주한 상황이다.
통상 당국자는 2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취재진들과 만나 한국이 보편 관세 부과 대상이 될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미국) 선거 운동 과정에서 얘기 나온 것으로, (트럼프 행정부가) 올 4월 1일까지 검토하는 것으로 돼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그 얘기를 해 온 만큼 긴장감을 갖고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에 정부는 업계와 손잡고 현지 아웃리치 활동을 강화키로 했다. 미국 각 지역 주지사, 상·하원 의원 등 주요 인사들에 한국 기업의 현지 일자리 창출, 경제 활성화, 기술·공급망 협력 등 긍정적 활동·효과를 소개하고, 협력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신원규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 초빙연구위원은 최근 세미나에서 “개별 기업 차원에서 사후 관세 예외를 받으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면서도 “이에 앞서, 정부 차원에서 ‘패키지 딜’을 통해 전략 산업군에 대해 사전 관세를 면제받는 것이 최선이다”고 설명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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