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0 시대] K-배터리, IRA 축소·폐지 ‘기로’…“미국 투자 전면 재검토 해야”

시간 입력 2025-01-20 17:50:26 시간 수정 2025-01-21 08:5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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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재정 적자 해소·중국 견제 위해 IRA 축소·폐지 검토
IRA 조항별 변경 유력…FEOC 활용해 수혜 기업 축소 골자
미국 대규모 투자한 K-배터리 투자 속도 조절·재검토 추진
배터리 업계, 정부·국회에 탈중국 공급망 투자 지원책 촉구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기후변화 대책이자, 수천억 달러에 달하는 보조금·세액공제 등을 아우르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트럼프 2.0 시대가 도래하면서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재정 적자를 줄이고 중국 공급망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는 IRA 지원을 축소하거나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20일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함께 K-배터리 진영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미 바이든 행정부의 IRA 혜택을 고려해 미국에 대규모 투자 계획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IRA 혜택이 사라지게 될 위기에 처하면서 자칫, 투자 비용을 고스란히 직접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전기차 전환 속도가 더뎌지고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K-배터리 기업들은 부담을 줄이기 위해 투자 속도 조절 뿐만 아니라 전면 재검토까지 열어두고 검토 중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20일(현지시간) 공식 출범하면, 중국 견제를 기반으로 한 대규모 정책 변화에 나설 전망이다. 이 중 IRA 수정은 트럼프 행정부가 목표로 하는 국경 강화 및 감세 재원 마련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선거 기간만 해도,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 IRA가 완전 폐지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트럼프는 유세 기간 바이든 정부의 친환경 정책 기조를 비판하면서 “IRA를 통해 미국 세금으로 중국산 전기차 배터리 회사에 보조금이 흘러 들어가는 것을 중단시킬 것이다”고 언급한 바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앞서 주요 인사에서 IRA에 강경한 입장을 내세웠던 인물을 선발했다. 재무장관으로 내정된 스콧 베센트는 IRA에 대해 “재정 적자를 부르는 파멸 기계이며 왜곡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고 지적했다. 더그 버검 내무부 장관 후보자도 IRA에 대해 “중국이 (전기차 생산에 활용되는) 전 세계 주요 광물 자원의 85%를 장악한 시기에 우리는 전기차에 대한 모든 종류의 인센티브를 통과시켰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 현지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IRA 완전 폐지보다는 일부 축소할 것이라는 평가에 힘이 실리고 있다. IRA가 미국 경제 전반에 미친 영향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례로 실제 IRA 투자를 가장 많이 받은 상위 10개 의회 지역구 중 8개 지역구가 공화당 소속의 지역구로 나타났다. 해당 지역에서는 IRA 혜택을 받은 기업들이 진출하면서 일자리 창출, 지역 경제 활성화 등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었다.

이를 종합했을 때,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IRA 완전 폐지하기보다는 조항별로 수정하는 방향으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전기차 구매 세액공제(30D)로 신규 전기차를 구매한 소비자에게 최대 7500달러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조항이다. 이 조항은 직접 규정에 손을 대지 않더라도 중국 등 해외우려법인(FEOC)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보조금 축소 혜택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상업용 친환경차 세액공제(45W)는 30D보다는 축소될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반 소비자보다 기업 등에서 리스 등 비즈니스 용도로 사용할 때 세액공제를 지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혜택이 축소된다면 FEOC 요건을 적용해 수혜 기업을 줄이는 방안이 유력하다.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45X)와 투자세액공제(48C)는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45X는 배터리 셀에 킬로와트시(kWh)당 35달러, 모듈에 kWh당 10달러 등 총 45달러 규모의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한다. 48C는 청정에너지 기술제품 관련한 설비투자금에 대해 최대 30%의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하는 제도다.

45X는 K-배터리 기업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조항 중 하나로 국내 배터리 3사는 45X에 따라 세액공제를 지난 2023년부터 실적에 반영해 오고 있다. 지난 2023년 LG엔솔과 SK온은 총 1조2939억원을, 지난 2024년 LG엔솔, SK온, 삼성SDI는 1~3분기까지 총 1조3787억원을 수령하기도 했다.

45X, 48C에 대해서도 일부 축소가 진행된다면 중국 견제 기조에 따라 FEOC 요건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을 전망이다. 다만 FEOC 요건이 강화되면 중국 배터리 공급망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 기업에게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 IRA 자문팀인 구자민 커빙턴 앤 벌링 변호사는 “조항 변경 등으로 전기차의 수요가 줄면 전기차와 배터리 기업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미국 정부와 끊임없이 접촉해 국내 기업에 유리한 방향으로 정책이 변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K-배터리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전부터 대책 마련에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K-배터리 3사가 북미에 보유한 단독·합작 공장만 총 17개다. 이 공장 중에서 지난 2022년 IRA 발효 이후 건설하겠다고 발표한 공장만 15개에 달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오하이오, 미시간, 테네시, 애리조나 등에 생산설비 투자를 진행 중이고 모두 완공되면 북미에서만 300GWh가 넘는 배터리 생산능력을 확보하게 된다. SK온은 조지아, 켄터키, 테네시 등에 투자해 180GWh 이상의 배터리 생산능력을 구축하고 삼성SDI도 인디애나에서만 100GWh가 넘는 생산능력을 갖추기 위한 투자를 진행 중이다.

다만 최근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한 전방 시장의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실적에 영향을 주고 있는 모습이다. LG엔솔은 지난해 4분기 영업손실 2255억원을 기록하면서 지난 2021년 3분기 이후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삼성SDI와 SK온도 4분기 적자 전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투자 속도 조절, 재검토 등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익명의 소식통들을 인용해 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전기차 수요 감소와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일어날 일들을 우려해 현재 진행 중인 공장 일부에 대해 건설을 늦추거나 일시 중단했다고 전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 김광주 대표는 기업들이 아직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전기차에 대한 정부 인센티브를 어느 정도까지 삭감할 것인지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LG엔솔은 애리조나에 짓고 있는 ESS 전용 배터리 공장 건설을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SK온은 에코프로와 함께 짓기로 한 캐나다 양극재 공장 건설을 중단했다. 포스코퓨처엠은 GM과 함께 캐나다에 건설 중인 배터리 양극재 합작 공장의 완공 일정을 현지 여건으로 조정 중이다.

전기차를 충전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전기차를 충전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K-배터리 업계의 이같은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 정부도 지원책 마련에 한창이다. 산업부는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관계부처와 함께 ‘친환경차·이차전지 경쟁력 강화 방안’을 공개한 바 있다. 

또 산업부는 한국배터리산업협회, 배터리·배터리 소재기업들과 ‘이차전지 비상대책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TF에는 LG엔솔, 삼성SDI, SK온 등 배터리 기업과 에코프로, LG화학,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등 배터리 소재 기업이 참여했다. 이들은 산업 경쟁력 제고 전략과 리튬, 니켈 등 광물 자원의 수급 동향 등이 논의하고 친환경차·이차전지 경쟁력 강화 방안 등 정부의 지원책에 대해서도 의견을 공유할 것으로 기대된다.

박태성 배터리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트럼프 정부와 협력할 카드가 많아야 한다”며 “미국 현지와 전략 강화 기술 초격차, 원가 절감. 대중국 공급망 의존 축소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공급망 투자를 늘렸는데 지원이 부족해 무너지게 되면 다시 중국에 의존해야 한다”며 “한시적인 생산 보조금을 지원하는 제도를 검토하기 위해 국회와 정부가 정책금융확충, 세액공제 직접 환급 제도 등 배터리 입법 지원에 도움을 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CEO스코어데일리 / 박대한 기자 / dayhan@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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