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450억달러·SK 38억7000만달러 규모 대규모 투자
보조금 확정지었지만 아직 미지급…트럼프 2기 때 집행
트럼프, 반도체 지원법에 ‘부정적’…보조금 공수표 위기
차세대 칩 기술, ‘생존 기술’로 활용…“네트워킹 총 동원해야”

오는 20일(현지시간)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당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강력한 ‘관세 정책’을 펼치겠다고 엄포를 놓으면서, 전 세계적으로 파란을 예고하고 있다. 여기에 노골적으로 ‘반도체 지원법(CSA)’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는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CEO스코어데일리는 미 트럼프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가중되고 있는 글로벌 경제의 불활실성과 함께 국내 기업들이 당면한 리스크 등을 진단하고, 위기를 타개할 돌파구는 무엇인지 조명하는 기획 시리즈를 진행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② K-반도체, 미 반도체 투자 제동 걸리나
‘트럼프 2.0 시대’가 도래하면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근심이 깊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노골적으로 ‘반도체 지원법(CSA)’에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면서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불활실성이 배가된 때문이다. AI(인공지능) 메모리 활황으로 실적 반등의 초석을 닦은 K-반도체로서는 트럼프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에 따라, 세계 반도체 시장이 또 한번 크게 출렁거릴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업계는 물론 범 정부 차원에서 트럼프 행정부와의 협력강화 등을 위해 더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 2.0 시대 출범을 앞두고 전 세계 주요국가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영국 매체 가디언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의 외교 싱크탱크인 유럽외교협회(ECFR)가 조사 대상 24개국 국민들에게 “트럼프 당선인이 당신 나라에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라고 물은 결과, 트럼프 2기 출범이 한국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한 한국인은 전체의 67%로 나타났다. 반면 응답자의 11%는 ‘좋다’고 답했다.
한국인의 이같은 부정적 응답 비율은 조사 대상 국가중 가장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에 이어 영국(긍정 15%, 부정 54%), EU 11개국(긍정 22%, 부정 38%), 스위스(긍정 23%, 부정 34%) 등이 트럼프 2기 행정부에 비관적이었다. ECFR은 보고서에서 “한국 등 미국의 오랜 동맹국들은 트럼프의 복귀를 한탄하고 있다”고 짚었다.

삼성전자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반도체공장. <사진=삼성전자>
또한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연구개발(R&D) 조직을 보유한 국내 기업 900개사를 대상으로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산업계 긴급 인식 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 기업의 77%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이 우리 경제와 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 봤다. 반면, 트럼프 리스크에 따른 영향이 별로 없을 것이라는 기업은 16%에 불과했다.
특히 응답 기업의 대다수인 10곳 중 7곳이 트럼프 2.0 시대가 본격화하면 글로벌 경제 환경이 크게 악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우리나라가 지대한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비중이 높았다. 미·중 갈등의 중심에 있는 반도체 분야에 대한 한국의 의존도가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당장,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설 경우 K-반도체가 극심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한 것이다. 이는 트럼프 당선인이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에게 지급하는 보조금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는 점만 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트럼프는 앞서 지난 7월 미국의 반도체 산업과 관련해 “대만 등이 우리 반도체 사업을 전부 가져갔다”며 “대만은 엄청나게 부유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만이 미국에 새 반도체공장을 짓도록 (미국은) 수십억달러를 주고 있다”며 “그들은 (미국에 지은 반도체공장을) 이후 다시 자국으로 가져갈 것이다”고 덧붙였다.
팟캐스트 진행자 조 로건과의 인터뷰에서도 반도체 지원법에 대해 “정말 나쁜 거래”라며 정면 비판했다. 트럼프의 이같은 발언은 AI 특수를 타고 회복 국면으로 접어든 국내 반도체 업계에도 찬물을 끼얹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CSA를 아예 폐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삼정KPMG경제연구원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과 국내 산업 영향’ 보고서에서 “트럼프 당선인은 반도체 지원법에 비판적 입장을 보여 왔다”며 “반도체 지원법 일부 수정 또는 축소 가능성이 있는 만큼 K-반도체의 대외 불확실성이 커질 전망이다”고 진단했다.
한국기업평가(한기평) 역시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산업별 영향’ 보고서를 통해 “자국 투자 유치를 위한 지원정책과 대중 제재 변화 가능성 등에서 트럼프 2기 출범 시 국내 반도체 산업에 부정적 영향이 보다 우세할 것이다”고 예상했다. 한기평은 “트럼프 행정부는 자국 반도체 업체에 대한 지원 비중을 높이거나 동맹국 업체에 대한 요구 사항을 크게 늘릴 수 있다”며 “이는 곧 K-반도체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SK하이닉스 이천사업장. <사진=SK하이닉스>
이미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K-반도체로서는 보조금 지급 근거인 CSA가 폐기되는 상황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K-반도체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파격적인 지원 정책에 힘입어 미 현지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해 생산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21년 미 텍사스에 170억달러(약 24조7418억원) 규모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현재 건설 공사를 진행 중이다. 또한 2030년까지 누적으로 약 450억달러(약 65조4930억원)를 투자해 미 텍사스주 테일러에 건설 중인 반도체 생산 공장에 추가로 신규 공장을 건설하고, 패키징 시설과 첨단 R&D 시설을 신축키로 했다.
SK하이닉스도 지난해 4월 미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약 38억7000만달러(약 5조6332억원)를 투자해 반도체 생산 시설을 짓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에 AI용 AVP(어드밴스드패키징) 생산 기지를 구축하는 것은 SK하이닉스가 최초다.
K-반도체의 공격적인 대미 투자에 바이든 행정부도 화답했다. 미 상무부는 지난해 12월 CSA에 근거해 삼성전자에 47억4500만달러(약 6조9158억원)의 보조금을 지급키로 했다. SK하이닉스는 4억5800만달러(약 6675억원)의 보조금과 5억달러(약 7288억원)의 대출 지원을 확정 받았다.
그러나 이번에 결정된 보조금은 실제 트럼프 2기 행정부 임기 중에 집행될 예정이다. 삼성·SK에 대한 지원금이 아직 지급되지 않은 것이다.
더구나 트럼프 당선인이 CSA를 폐기할 경우 삼성·SK의 미 현지 반도체 생산 거점 구축은 제동이 걸릴 수 밖에 없다. 바이든 행정부때 천문학적인 규모의 자금을 투입해 미국에 반도체공장을 짓고 있지만, 정권 교체라는 과도기에서 정작 보조금을 못 받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K-반도체의 글로벌 투자행보에 큰 치명타가 될 전망이다.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건설 중인 삼성전자 파운드리공장. <사진=경계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 인스타그램 캡처>
결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트럼프 리스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첨단 반도체 기술을 ‘생존 기술’로 활용하는 등 실리 추구 전략을 앞세워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은 미 대선 결과에 따라 한국이 마주하게 될 위기와 기회를 조망한 보고서에서 “K-반도체는 CSA에 의해 올해 들어설 국립반도체기술센터(NSTC)에 적극 참여해 미국 주도의 기술 개발 협력 체계에 편입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조원선 STEPI 부연구위원은 “돌아온 트럼프 당선인은 철저한 거래의 달인으로,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는지에 주안점을 둘 것이다”며 “미·중 경쟁의 심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실리 추구에 기반을 둔 생존 기술 확보 전략이 최우선이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함께 글로벌 네트워킹을 총동원해야 한다는 분석도 힘을 얻고 있다. CSA로 혜택을 본 미 텍사스주 등은 트럼프 당선인과 한 배를 탄 공화당의 텃밭이다. 지역 일자리와 경제가 걸려 있는 만큼 해당 주의 공화당 의원들은 CSA 폐지에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CSA는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공화당이 추진한 것을 바이든 행정부에서 법제화한 것이어서 미 정계와의 네트워킹을 통해 충분히 보조금 지급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제현정 한국무역협회(무협) 워싱턴지부장은 “최근 수년 간 한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 폭증으로, 미국 산업 정책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됐다”며 “특히 공화당 텃밭에 투자가 집중된 만큼, 이들 지역의 공화당 네트워크를 십분 활용하는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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