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특별법 등 경제 관련 주요 법안 논의 사실상 중단
미·일 등 주요국, 자국 반도체 업체에 수십억 달러 투입
삼성·SK에 보조금 지원 ‘제로’…칩 경쟁력 제고 비상
정부, 국회와 손잡고 연내 경제 법안 최대한 처리해야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탄핵 정국’이 본격화했다. 갑작스런 탄핵 정국으로 정치권의 관심이 온통 탄핵 정국에 집중되면서, 정작 분초를 다퉈야 할 경제 관련 주요 법안 처리에 빨간불이 커졌다. 특히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강화 및 혁신성장을 위한 특별법안(반도체 특별법)’, ‘AI(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인공지능 기본법)’, '국가기간전력망 확충 특별법안(전력망 특별법)’ 등 주요 경제관련 법안 논의는 사실상 중단돼, 이를 우려하는 재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 일본, 중국 등 세계 주요국들이 파격적인 지원 정책을 쏟아내며 자국 반도체 경쟁력 강화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과 달리, 한국은 정쟁에 휘둘려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와 재계는 글로벌 시장을 선도해 온 K-반도체가 첨단 반도체 역량 제고를 위해서는 연내 법안 처리가 절실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탄핵 정국이 본격화함에 따라 경제 관련 주요 법안 처리가 상당 기간 늦춰질 것으로 보인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가 이달 법안 심사소위를 열고 논의할 예정이던 반도체 특별법이 대표적이다.
현재 국회에는 대통령 직속 국가반도체위원회를 설치하고, 국내 반도체 업체에 직접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내용 등을 담은 반도체 특별법이 제출된 상태다. 국민의힘은 트럼프 2기 행정부 등 글로벌 시장의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 K-반도체를 지원하기 위해 지난달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여야 모두 연내 처리 필요성을 강조한 법안이었던 만큼 국회 산자위는 이달 9일 법안을 논의하고 연내에 본회의 처리까지 마칠 계획이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갑작스런 비상 계엄 선언으로 모든 일정이 어그러졌다.
해당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한국과 미국에 대규모 공장을 짓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투자비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또 반도체 연구개발(R&D) 종사자에 대한 주 52시간 근로 규제 완화 방안도 포함돼 있어 HBM(고대역폭메모리) 등 첨단 반도체 개발 속도도 한층 빨라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탄핵 정국으로 정치권의 혼란이 가중되며 반도체 특별법 추진은 사실상 ‘올스톱’ 됐다.
해당 법안의 가결을 손꼽아 기다렸던 반도체 업계에서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첨단 반도체 경쟁력을 서둘러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직접 보조금 혜택을 받지 못할 경우, 글로벌 업체들과의 반도체 주도권 다툼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미국, 일본 등 주요국은 자국 반도체 업체에 보조금을 지급하며 첨단 칩 역량 제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의 ‘주요국 첨단 산업별 대표 기업 지원 정책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정부는 자국 반도체 업체인 인텔에 85억달러(약 12조2069억원)를 지급했다. 이에 질세라 일본 정부도 라피더스에 63억4000만달러(약 9조1061억원)의 보조금을 투입했다.
그러나 같은해 우리 정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보조금을 일절 지급하지 않았다. 간접 지원만을 고수하는 정책 기조로 인해 K-반도체가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주요국의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 기조는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미국은 메모리 반도체 업체 마이크론에 61억6500만달러(약 8조8548억원)를 보조금으로 지급했다. 일본은 지난달 말 일 반도체 산업에 10조엔(약 93조4860억원)을 지원하는 종합 경제 대책을 새로 발표했다. 중국도 역대 최대 규모인 64조원의 반도체 투자 기금 ‘빅펀드’를 조성한 상태다.
위기를 의식한 정치권은 최근 삼성, SK 등 국내 반도체 업계를 직접 지원할 수 있는 법안을 발의하고, K-반도체의 첨단 칩 역량을 강화시키는 조력자가 되겠다고 자처했다. 그러나 갑작스런 탄핵 정국으로 이마저도 유명무실해졌다.
반도체 특별법뿐만 아니다. 인공지능 기본법 역시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인공지능 기본법은 AI와 AI 사업자, 이용자를 정의하고, 산업 진흥을 담당하는 전담 부서 설치,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의 AI 기본 계획 수립, AI를 도입·활용하고자 하는 기업에 대한 컨설팅 지원, 중소기업에 대한 AI 관련 자금 지원 등 AI 산업을 육성·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해당 법안은 지난 11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전체회의를 통과했으나 국회 본회의에 끝내 상정되지 못했다.
첨단 산업 전력 수요를 뒷받침할 전력망 특별법도 제자리 걸음이다. 전력망 특별법은 전력망 건설 과정에서 예산·기금 등을 건설비와 지역 주민 보상 등에 활용할 수 있게 하고, 정부 차원의 개입으로 각종 인허가 절차에 속도를 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대규모 전력을 필요로 하는 AI와 반도체 분야 등을 뒷받침하려면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다. 이에 여야 간에도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전력망 특별법은 지난달 26일 열린 국회 산자위에서 아예 논의조차 안 됐다. 이후 이달 10일 법안 처리가 예상됐으나 탄핵 정국과 맞물리며 언제 논의가 재개될지 불투명해졌다.
당장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반도체 클러스터에는 10GW 이상의 대규모 전력이 필요한데 해당 법안의 통과가 늦어지면 조성 시기가 그만큼 지연될 수밖에 없다.
2027년 가동이 목표인 첫 번째 공장의 전력 공급 공사는 진행 중이지만, 향후 세워질 공장들의 중장기 전력 공급 대책은 사실상 부재한 상황이어서 삼성·SK의 근심은 빠르게 깊어지는 모습이다.
재계에서는 정부와 국회가 힘을 모아 K-반도체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머리를 맞대줄 것을 당부하고 나섰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은 이날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에서 열린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기재부) 장관과 경제6단체 대표 간 간담회에서 “국정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며 “기업이 투자와 경영에 매진할 수 있도록 경제 안정 대책을 적극 추진해 달라”고 전했다.
박일준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경기 시나리오별 적극적인 정책 대응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며 “지연되고 있는 반도체 특별법 등 주요 경제 법안의 연내 입법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최 부총리는 “경제팀은 해야 할 일들을 흔들림 없이 신속히 해 나가겠다”며 “대외 신인도를 최우선으로 철저히 관리하고, 통상 환경 불확실성에도 적극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최 부총리는 연내 반도체 특별법 등을 처리할 수 있도록 힘쓰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지난 1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긴급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우리 경제가 다시 한번 시험대 위에 섰다”며 “국회와 적극 소통하면서 경제의 안정적 관리 방안을 함께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최 부총리는 반도체 특별법, AI(인공지능) 기본법, 전력망 특별법 등과 관련해 “산업의 향후 운명을 결정지을 법안들이 연내 최대한 처리되도록 산업계의 목소리를 정성껏 국회에 설명드리겠다”고 약속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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