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삼성그룹 총수 승계 위해 자본 시장 근간 훼손”
“미전실, 합병 강행 위해 각종 부정 거래 행위 일삼아”
이재용, 최후 진술서 혐의 부인…내년 1월 항소심 선고
재계 “2심도 무죄 기대…유죄 선고 땐 경영 부재 우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부당합병·회계부정’ 관련 항소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검찰이 ‘부당합병·회계부정’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징역 5년·벌금 5억원을 구형했다. 지난 2월 1심에서 무죄를 받으며 ‘사법 리스크’를 털어냈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또 다시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이 회장이 다시 사법 리스크에 휘둘리면서 반도체 패권 회복, 미래 먹거리 발굴 등 ‘뉴 삼성’ 재건을 위한 ‘책임 경영’ 추진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백강진, 김선희, 이인수 부장판사)는 25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 등에 대한 항소심 결심 공판을 열었다.
이 회장은 이날 결심 공판에도 직접 출석했다. 서울고법에 모습을 드러낸 이 회장은 “소감 한 말씀 해 달라”, “최후 진술에서 어떤 말을 할 것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곧장 법정으로 향했다. 이번 결심 공판은 검찰의 구형과 변호인의 최후 변론, 이 회장 등의 최후 진술 순서로 진행됐다.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이 회장에 1심과 동일한 수준인 징역 5년에 벌금 5억원을 구형했다. 또한 함께 기소된 최지성 전 삼성전자 미래전략실(미전실) 실장과 김종중 전 전략팀장에게는 각각 징역 4년 6개월과 벌금 5억원을 구형했다. 이어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에는 징역 3년과 벌금 1억원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찰은 “피고인들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사익을 위해 권한을 남용하고, 정보 비대칭 상황을 악용했다”며 “이번 사건은 그룹 총수의 승계를 위해 자본 시장의 근간을 훼손한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부당합병·회계부정’ 관련 항소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또 검찰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주도한 미전실은 이 회장과 함께 합병 시점을 임의로 선택했다”며 “합병은 경영 승계를 목적으로 삼성물산 주주의 이익과 무관하게 추진됐고, 합병 강행을 위해 각종 부정 거래 행위가 수반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주주 반발로 합병 성사가 불투명해 지자 ‘합병 찬성이 곧 국익을 위한 것’이라며 주주들을 기망했다”며 “합병 찬성 결과는 국익이 아닌 특정 개인의 이익과 투자자 다수의 불이익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의 판결은 앞으로 재벌 기업 구조 개편과 회계 처리 방향에 대한 기준점이 될 것이다”며 “면죄부가 주어진다면 지배 주주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위법과 편법을 동원해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합병을 추진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검찰의 구형 의견에 맞서 변호인들의 최후 변론도 이어졌다. 이 회장측은 삼성물산·제일모직 간 합병에 문제가 없었으며, 1심의 무죄 판단이 유지돼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 근거로 원심에서 ‘합병 목적이 승계에만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을 들었다. 또 원심의 주된 판단은 지배구조 개선 목적뿐만 아니라 사업적 필요성도 있었다는 것인데, 검찰은 사업적 필요성이 없었다는 주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회장 등 피고인들의 최후 진술도 나왔다. 이 자리에서 이 회장은 직접 준비해 온 최후 진술을 통해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20년 9월 이 회장 등 피고인들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자본시장법 위반과 업무상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2015년 5월 이사회를 거쳐 제일모직 주식 1주와 삼성물산 약 3주를 바꾸는 조건으로 합병을 결의했다. 제일모직 지분 23.2%를 보유했던 당시 이 부회장은 합병 이후 지주회사 격인 통합 삼성물산 지분을 안정적으로 확보해 그룹 지배력을 강화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제일모직 주가는 띄우고 삼성물산 주가는 낮추기 위해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전실 주도로 거짓 정보 유포, 중요 정보 은폐, 허위 호재 공표, 주요 주주 매수, 국민연금 의결권 확보를 위한 불법 로비, 자사주 집중 매입을 통한 시세 조종 등 각종 부정 거래가 이뤄졌다고 봤다.
이 과정에서 기업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삼성물산의 투자자들이 손해를 입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은 삼성물산 이사들을 배임 행위의 주체로, 이 회장을 지시 또는 공모자로 지목했다. 이 회장 등 피고인들은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에 대한 분식회계 의혹도 받고 있다. 검찰은 삼바가 2015년 합병 이후 회계 처리 과정에서 자산 4조5000억원 상당을 과다 계상했다고 봤다.
이를 이유로 지난해 11월 검찰은 이 회장에게 징역 5년, 벌금 5억원을 구형했다. 그러나 올 2월 1심 재판부는 이 회장을 비롯해 모든 피고인에게 죄가 없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이 회장의 승계나 지배력 강화가 유일한 목적이 아니기에 전체적으로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며 “비율이 불공정해 주주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제일모직 자회사인 삼바와 관련한 거짓 공시, 분식회계를 한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로 판단했다.
이에 불복한 검찰은 즉각 항소했다. 검찰은 1300여 쪽에 이르는 항소 이유서를 내고, 항소심에서 2144개의 추가 증거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삼바의 일부 분식회계를 인정한 행정소송 1심 판결을 반영해 공소장을 변경하기도 했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사진=연합뉴스>
삼성은 이날 검찰 구형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내지는 않았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1심에서와 같이 검찰이 무겁게 구형한 데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1심과 달리 2심에서 유죄 판결이 나올 경우, 이 회장의 경영공백이 현실화 되고, 다시 논의가 진행중인 책임 경영에도 차질이 불가피해 진다.
만약 상고심까지 고려하면, 이 회장은 앞으로 2~3년 더 사법 리스크를 안고 갈 수 밖에 없다. 이는 이 회장의 경영 부재를 장기화시키는 악재로 작용하게 된다. 이로 인해 악화된 우리나라 대표 기업 삼성의 위기는 자칫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이미 이 회장은 사법 리스크로 인해 삼성의 위기를 무기력하게 목도해야 했다. 4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재판으로 인해 이 회장이 그룹 경영 전반에 매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 10월 부당합병·회계부정 1심 재판이 처음 시작된 후부터 올해 2월 최종 선고까지 약 3년 5개월 동안 무려 107차례의 심리가 열렸다. 이 중 이 회장은 총 96차례 직접 출석했다. 올 9월 이후 총 네 차례의 항소심 공판과 결심 공판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이 회장이 사실상 모든 재판에 출석하는 바람에 반도체 경쟁력 제고,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한 지속 투자 등 굵직한 현안과 관련한 의사결정을 내리기가 불가능에 가까웠다는 지적이다.
결국 사법 리스크로 인한 이 회장의 경영 부재는 삼성의 미래 성장을 방해하는 악재로 작용했다. 재계 관계자는 “지난 몇 년은 삼성에 있어 ‘잃어버린 시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는 사이 HBM(고대역폭메모리),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등 핵심 분야의 경쟁력 약화로 삼성 반도체는 극심한 위기에 직면했다. 이같은 난관 속에서 검찰의 중형 구형은 이 회장 본인 뿐만 아니라 삼성그룹 전체에 큰 암초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부당합병·회계부정 항소심 결과에 따라 삼성그룹 전체가 또 휘청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부당합병·회계부정’ 관련 항소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재계 안팎에서는 1심에서와 같이 2심에서도 무죄가 나올 가능성에 기대를 거는 모습이다. 집행유예로 양형 되는 상황도 고려하고 있다. 형법상 집행유예는 3년 이하의 징역을 선고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재계는 물론 일반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사건인 만큼 2심 재판부도 항소심 일정을 빠르게 진행해 내년 초 2심 최종 선고를 내릴 전망이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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