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미 텍사스주에 2030년까지 총 450억달러 투자
SK는 미국 인디애나주에 38억7000만달러 투입키로
K-반도체, 미 정부로부터 아직 보조금 지급 못 받아
트럼프, 반도체 지원법에 ‘부정적’…삼성·SK ‘비상’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으로 귀환하면서, 국내 산업계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방향에 맞춰 투자전략을 전면 재검토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특히 AI(인공지능) 메모리 활황으로 부활하고 있는 K-반도체에 타격이 우려된다. 그간 트럼프 전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반도체 지원법(Chips and Science Act)’에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 온 만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한 반도체 보조금이 축소되거나 사라질 수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국내 반도체 업계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으로 향후 반도체 보조금 정책이 어떻게 변화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삼성과 SK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파격적인 지원 정책에 힘입어 미 현지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상태다.
앞서 2021년 삼성전자는 미 텍사스주에 170억달러(약 23조7422억원) 규모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현재 건설 공사를 진행 중이다.
또한 2030년까지 누적으로 약 450억달러(약 62조8650억원)를 투자해 미 텍사스주 테일러에 건설 중인 반도체 생산 공장에 추가로 신규 공장을 건설하고, 패키징 시설과 첨단 연구개발(R&D) 시설을 신축키로 했다.
SK하이닉스도 올해 4월 미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약 38억7000만달러(약 5조4056억원)를 투자해 반도체 생산 시설을 짓겠다고 선언했다. 미 현지에 AI용 어드밴스드패키징 생산 기지를 구축하는 것은 SK하이닉스가 최초다.
완공된 인디애나공장에서는 2028년 하반기부터 차세대 HBM 등 AI 메모리 제품을 양산할 예정이다. 또한 퍼듀대 등 현지 연구기관과 반도체 R&D에 적극 협력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이들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공격적인 대미 투자에 바이든 행정부도 화답했다. 미 상무부는 올 4월 삼성전자에 보조금 64억달러(약 8조9382억원)를 지급키로 결정했다. 당시 지나 러몬도 미 상무부 장관은 브리핑을 통해 “삼성전자의 미 텍사스주 첨단 반도체공장 투자를 위해 반도체 지원법에 의거, 64억달러의 보조금을 제공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지난 8월에는 SK하이닉스와 HBM(고대역폭메모리) 고급 패키징 제조 및 R&D 시설 설립을 위해 최대 4억5000만달러(약 6284억원)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예비 거래 각서(PMT)도 체결했다. 또한 미 상무부는 SK에 5억달러(약 6984억원)의 대출 지원도 제공키로 했다. 총 9억5000만달러(약 1조3269억원)의 지원금을 받게 된 셈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마이크로칩테크놀로지, 글로벌파운드리 등 미국 반도체 기업보다도 더 많은 보조금을 지원받게 됐다. 그러나 이들 국내 업체들은 바이든 행정부로부터 아직 보조금을 지급 받지 못한 상태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백악관 입성이 확정되면서, 자칫 삼성·SK가 약속된 보조금을 수령받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 리스크’ 때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만 TSMC 등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에게 지급하는 보조금을 지속적으로 문제 삼아 왔다. 올 7월 트럼프 전 대통령은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반도체 산업과 관련해 “대만 등이 우리 반도체 사업을 전부 가져갔다”며 “대만은 엄청나게 부유하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대만이 미국에 새 반도체공장을 짓도록 (미국은) 수십억달러를 주고 있다”며 “그들은 (미국에 지은 반도체공장을) 이후 다시 자국으로 가져갈 것이다”고 덧붙였다.
최근 팟캐스트 진행자 조 로건과의 인터뷰에서도 반도체 지원법에 대해 “정말 나쁜 거래다”며 정면 비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AI(인공지능) 특수를 타고 회복 국면으로 접어든 국내 반도체 업계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반도체 지원법에 따른 보조금을 축소하거나 아예 없앨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와 관련, 삼정KPMG경제연구원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과 국내 산업 영향’ 보고서에서 “트럼프 당선인은 반도체 지원법에 비판적 입장을 보여 왔다”며 “반도체 지원법 일부 수정 또는 축소 가능성이 있는 만큼 K-반도체의 대외 불확실성이 커질 전망이다”고 진단했다.
이미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보조금을 지원 받지 못한다면 미 현지 반도체공장 건설에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 자명하다. 이미 현지에서 원자재비 및 인건비가 급등해 건설작업에 차질이 빚어지는 상황에서, 미 행정부의 보조금 지원마저 사라진다면 K-반도체의 미국 공장 건립 계획은 큰 차질을 빚게 될 전망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미 반도체 지원법이 폐기될 경우 현지 투자를 조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올 7월 제주에서 열린 대한상공회의소 출입 기자단 간담회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시 미국 정부의 반도체 보조금이 줄어들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 “SK의 대미 투자는 규모가 크지 않은 첨단 패키징공장 건립이고, 아직 완전히 결정된 것도 아니다”면서도 “만약 미국이 지원금을 안 준다면 (그 때) 다시 (투자를)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고 밝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정책 기조로 볼 때, 반도체 지원법이 폐기되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다만 지원 규모가 대대적으로 축소되거나 지원 조건이 상향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트럼프 재집권 시 반도체 지원법이 지속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다만 기존 보조금 대비 투자 확대 요구와 자국 기업에 유리한 조항의 추가 등을 통해 해외 생산 업체에 불리한 방향으로 수정될 우려가 있다”고 내다 봤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 기조는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도 계속 유지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앞서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중국 화웨이 등 일부 기업을 ‘블랙 리스트’에 올리며 수출 통제를 시작했다. 이같은 기조는 바이든 행정부 들어 중국에 대한 전반적인 수출 통제와 투자 제한 등으로 확대됐다.
다만 대중 제재가 강화될수록 중국 의존도가 높은 K-반도체는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서 낸드플래시공장을, 쑤저우에서 반도체 후공정(패키지) 공장을 각각 운영 중이다. SK하이닉스도 중국 우시에서 D램 메모리 반도체 생산 시설을 가동 중이고, 다롄에 있는 인텔의 낸드공장을 인수해 제품을 양산하고 있다.
중국 내 반도체 생산량은 상당하다. 삼성전자는 낸드의 28%를, SK하이닉스는 D램의 41%와 낸드의 31%를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대중 반도체 제조 장비 수출 통제를 강화한다면 삼성·SK의 중국 내 반도체공장 운영은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K-반도체에 부여한 중국 공장 내 첨단 장비 반입에 대한 수출 통제 유예 조치를 번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대중 통제가 강화되면 오히려 K-반도체가 메모리 등의 분야에서 중국 기업의 추격을 따돌리는 시간을 버는 등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삼정KPMG경제연구원은 “한국은 미국이 메모리 반도체를 수입하는 3대 국가 중 하나로,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전·후방 산업 전반에 대한 규제가 심화함에 따라 일부 반사이익을 기대해 볼 수 있다”며 “특히 고성능 반도체 분야에 있어서 핵심 파트너 위치 선점을 위한 움직임이 중요해질 것이다”고 분석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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