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41주년, SK그룹 편입 후 글로벌 AI 메모리 리더 도약
최태원 대규모 투자로 HBM 등 기술 개발…그룹 핵심축 부상
세계 최초 HBM3E 12단 양산…HBM 1등 굳히기

회복 불능 부실기업으로 낙인 찍혔던 한 반도체 기업이 글로벌 AI(인공지능) 메모리 리더로 우뚝 섰다. 1983년 반도체 사업을 시작한 이후 오랜 기간 부실 기업 딱지를 떼지 못하다 2012년 SK그룹에 편입된 SK하이닉스가 바로 그 주인공.
SK그룹의 식구가 된 SK하이닉스는 2012년 당시만 해도 2000억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내며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속을 태웠다. 부실 덩어리와 한계기업이란 타이틀에 경영진들 상당수가 인수를 반대했지만, 결국 최 회장은 안팎의 비판을 묵묵히 감내해야 했다.
그러나 12년이 흐른 지금 SK하이닉스는 세계 3위 반도체 업체로 도약하며, AI(인공지능) 시대 SK그룹의 핵심 기업으로 부상했다. AI 반도체 시대,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은 경쟁자인 삼성전자에 이어 2위에 랭크돼 있다. SK하이닉스는 HBM(고대역폭메모리) 등 차세대 메모리를 앞세워 다가오는 40년 ‘AI 메모리 최강자’로 거듭난다는 구상이다.
SK하이닉스는 11일 SK하이닉스 뉴스룸을 통해 창립 41주년을 맞아 HBM을 중심으로 혁신 제품에 담긴 역사, 기술력, 구성원들의 노력 등을 소개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40여 년 간 끊임없는 노력과 혁신을 통해 글로벌 톱 AI 메모리 기업이 됐다고 자평했다.
SK하이닉스는 “기술력으로 일군 40년을 갈무리하고 새로운 1년을 달린 올해 ‘40+1 르네상스 원년’을 만들어가고 있다”며 “그 배경에는 HBM, PIM(지능형반도체), CXL(컴퓨트익스프레스링크) 등 첨단 공정과 패키징 기술이 집약된 AI 메모리가 자리 잡고 있다”고 강조했다.
SK하이닉스의 ‘HBM 성공 신화’는 15년 전인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SK는 TSV(실리콘관통전극)과 WLP(웨이퍼레벨패키지) 기술이 메모리 성능의 한계를 극복해 줄 것으로 판단하고, HBM 개발에 적극 매진했다.
그로부터 4년 후인 2013년 세계 최초로 TSV와 WLP 기술에 기반을 둔 1세대 HBM이 첫 선을 보였다. HBM은 출시 당시 혁신 메모리로 주목 받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예상보다 미미했다. HBM이 널리 쓰일 만큼 HPC(고성능컴퓨팅) 시장이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의 HBM 역사. <사진=SK하이닉스>
그러나 SK하이닉스는 후속 기술 개발을 이어 나갔다. SK는 열 방출과 생산성이 높은 MR-MUF(매스리플로우-몰디드언더필) 기술을 ‘HBM2E’에 적용해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이후 얇은 칩 적층, 열 방출, 생산성이 한층 업그레이드된 어드밴스드 MR-MUF 기술을 4세대 HBM ‘HBM3’와 5세대 HBM ‘HBM3E’에 적용했다. 이 기술을 바탕으로 지난해 24GB HBM3 12단 제품을, 최근에는 36GB HBM3E 12단 제품 양산에 성공하며 HBM 선두 지위를 공고히 다졌다.
SK하이닉스의 HBM 역량이 업계 최고 수준으로 강화될 수 있었던 것은 최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이다. 2012년 SK그룹에 편입된 이후 SK하이닉스는 그룹의 안정적인 투자 덕에 HBM 기술 개발에 매진할 수 있었다.
그룹사 차원의 공격적인 투자 기조는 성공적인 경영 실적으로 이어졌다. SK그룹에 인수되기 전만 해도 만년 적자 기업으로 낙인 찍혔던 기업은 SK그룹에 편입된 이후인 2012년 4분기부터 흑자를 내기 시작했다. 이후 지독한 반도체 한파였던 지난해를 제외하고 흑자 기조를 지속했다.
SK하이닉스가 내부적으로 HBM 경쟁력을 키우는 동안,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메모리 시장의 판도가 급변했다.
2022년 생성형 AI 등장 이후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가 AI 중심으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대용량 데이터를 처리하고 빠른 학습과 추론을 지원하는 고성능 메모리 수요가 가파르게 늘었다.
AI 열풍이 본격화하기 전부터 HBM 개발에 집중해 온 SK하이닉스는 이같은 시장의 변화에 맞춰 고성능 메모리 솔루션을 선제적으로 제공할 수 있었다.
SK는 3세대 HBM인 ‘HBM2E’로 AI 메모리 경쟁에서 주도권을 잡았다. 이후 AI와 HPC에 최적화된 HBM3를 엔비디아에 공급하면서 HBM 강자로 발돋움했다.
SK하이닉스는 현재 AI 시대 반도체 강자인 엔비디아의 핵심 파트너로서 자리매김한 상태다. 지난 3월 세계 최초로 HBM3E 8단 제품을 엔비디아에 납품하기 시작한데 이어 지난달 말에는 현존 HBM 최대 용량인 36GB를 구현한 HBM3E 12단 제품 양산에 돌입하며 ‘HBM 1등 굳히기’에 들어갔다.
SK하이닉스는 연내 엔비디아에 HBM3E 12단 제품을 공급한다는 방침이다. 시기적으로 볼 때 SK의 HBM 신제품은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반도체 ‘블랙웰’에 탑재될 것으로 보인다.

엔비디아발 훈풍에 힘입어 글로벌 HBM 시장에서 SK의 지배력은 더 강화될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SK하이닉스의 전 세계 HBM 시장 점유율은 53%로, 이미 절반을 넘겼다.
글로벌 HBM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SK의 위상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옴디아에 따르면 올 3분기 SK하이닉스의 매출 전망치는 128억3400만달러(약 17조3182억원)로 예상됐다.
주목할 점은 SK하이닉스가 한때 삼성전자와 글로벌 반도체 시장 1위 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인텔을 앞지를 것이라는 분석이다. 올 3분기 인텔의 매출 전망치는 121억3400만달러(약 16조3760억원)에 그칠 것으로 관측됐다. 시장 점유율도 6.9%에 불과해, 사실상 SK에 3위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SK가 인텔을 추월한 것은 옴디아가 2002년부터 주요 반도체 업체들의 매출을 집계해 이후 처음이다.
SK하이닉스는 여기서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의 40년을 준비하고 있다. ‘메모리 센트릭’을 비전으로 삼아 40여 년 간 축적해 온 기술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AI 메모리를 개발한다는 구상이다.
특히 올해는 PIM, CXL, AI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 등으로 라인업을 강화하며 르네상스의 원년을 만들어 가고 있다.
다양한 AI 메모리는 더 넓은 대역폭으로 대용량 데이터를 빠르게 전달하거나 직접 연산한 결과 값만 프로세서로 전달하고 병목 현상을 최소화해, AI 학습 및 추론 성능을 높일 전망이다. 나아가 AI 시스템의 에너지 효율까지 개선해 친환경적 AI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도 기여할 전망이다.
AI 메모리의 발전은 자율주행, 헬스 케어 등 산업 전반에 적용돼 더 빠르고 효율적인 AI 서비스를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기술적 한계도 끊임없이 극복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AI 서비스에 발맞춰 각 고객에 최적화된 맞춤형 AI 메모리를 개발하는 데 집중하고 있고, 혁신 소자 기반의 차세대 이머징 메모리도 개발 중이다. 이머징 메모리는 기존 D램이나 낸드플래시와 같은 전통적인 메모리 기술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나 원리를 기반으로 하는 메모리 기술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이 SK하이닉스 경영진들로부터 차세대 반도체와 관련해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SK>
SK하이닉스는 “창립 41주년을 맞은 SK하이닉스는 ‘HBM 1등’을 지키는 가운데, 차세대 반도체 시장에서도 주도권을 쟁취할 것이다”며 “모든 제품이 AI의 핵심 동력으로 작동하는 ‘AI 심장(The Heart of AI)’ 시대를 선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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