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간 넘는 마라톤 회의 불구 합의점 못 찾아
전삼노, 사측에 29일까지 진전된 안건 제시 요구
“29~31일 사흘 간 집중 교섭 통해 끝장 보자”
“사측 태도 변화 없을 시 교섭 결렬·총파업 지속”
창립 55년 만에 사상 첫 총파업 사태를 겪고 있는 삼성전자 노사가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았지만, 끝내 합의도출에 실패했다. 노조가 지난 9일 총파업에 돌입한지 16일만에 다시 사측과 협상에 나섰지만, 8시간이 넘도록 합의점을 찾는 데 실패한 것이다. 노조측은 오는 29일까지 사측이 진전된 안건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교섭 결렬은 물론 강도 높은 총파업을 이어 가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어렵게 재개된 교섭이 다시 난항을 거듭하면서 삼성의 ‘파업 리스크’가 더 심화할 것이란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특히 노조가 총파업의 목적을 ‘생산 차질’로 못박고 있어, 자칫 24시간 가동 체제를 갖춰야 하는 반도체 생산라인이 멈춰서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 노사는 23일 오전 9시 경기 용인시 삼성전자 기흥캠퍼스 나노파크에서 임금 협상 교섭에 돌입했다.
이날 교섭에는 노조에서 5명, 사측에서 3명이 참석했다. 당초 노조측 5명, 사측 5명이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이날 사측은 3명만 자리했다.
총파업을 시작한 이후 약 2주 만에 재개된 임금 협상 교섭은 극심한 난항을 겪었다. 삼성 노사가 서로의 입장 차이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면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결국 8시간이 넘는 마라톤 회의에도 불구하고 노사는 이날 오후 5시 30분께 교섭을 종료했다.
이날 협상 테이블에선 핵심 쟁점인 임금 인상률을 비롯해 노조측이 요구해 온 노조 창립 휴가 1일 보장, 성과급 제도 개선, 파업에 따른 경제적 손실 보상 등이 다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노사 양측은 임금 인상률을 놓고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전삼노는 기본 인상률 3.5%에 성과 인상률 2.1%를 더한 평균 임금 인상률 5.6%를 제시한 상태다.
그러나 사측은 지난달 말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 3차 사후 조정 회의에서 밝힌 ‘평균 임금 인상률 5.1%(기본 인상률 3.0%+성과 인상률 2.1%)’는 건드릴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손우목 전삼노 위원장은 이날 임금 협상 교섭 종료 후 유튜브를 통해 “이번 교섭에서 노사 간 입장 차가 너무 커 결과를 도출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특히 사측은 이번 교섭에 어떠한 안건도 없이, 앞서 밝힌 평균 임금 인상률 5.1%만을 고집했다”며 “교섭은 정회와 휴회를 반복했다”고 말했다.
전삼노는 사측에 이달 29일까지 제시안을 내놓지 않을 시 다시 교섭 결렬을 선언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이현국 전삼노 부위원장은 “사측에 이달 29일까지 교섭안을 가져 올 것을 요구했다”며 “29일부터 31일까지 사흘 간 집중 교섭을 통해 끝장을 보자는 뜻을 전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만약 이 때 사측이 안을 가져오지 않거나 협상을 마무리 짓지 못하면 교섭 결렬은 물론 승리를 위해 총파업을 지속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반도체 생산라인의 파업 효과는 3주가량 지나야 본격화하기 때문에 이달 말 임금 협상 교섭 전까지 조합원 여러분께선 현 파업에 더욱 적극적으로 동참해 달라”고 촉구했다.
삼성전자 노사가 이날 교섭 타결에 실패하면서 삼성을 둘러싼 반도체 생산 차질 우려는 점점 더 증폭되고 있다.
그간 업계에서는 전삼노의 총파업으로 인해 삼성전자가 반도체공장 가동에 어려움을 겪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했다.
반도체 생산라인은 24시간, 3교대로 돌아간다. 따라서 파업이 진행되더라도 단기적으로는 근무조를 조정하는 등의 임시방편을 통해 생산라인을 일시 가동할 수 있다. 그러나 파업이 장기화하면 대체 인력을 확보하는데 무리가 따른다. 결국 삼성 반도체 양산에 비상등이 켜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조의 파업 리스크로 최근 AI(인공지능) 열풍을 타고 메모리 반도체를 중심으로 실적이 개선되고 있는 삼성전자의 성장동력이 꺾일 수 있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이달 5일 삼성전자는 연결 재무제표 기준 올 2분기 영업이익이 10조4000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6700억원 대비 무려 15배나 폭증한 수치다. 삼성전자의 분기 영업이익이 10조원을 넘긴 것은 2022년 3분기(10조8520억원) 이후 7개 분기 만이다.
이렇듯 어렵게 실적 반등의 기회를 잡은 삼성이 예기치 못한 파업 사태로 실적 반등 기회를 잃게 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마저 나오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다. 삼성전자는 최근 큰 경영 위기에 직면한 상태다. 세계 1위를 놓친 적 없던 삼성이 AI 시대 속 급부상하고 있는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에서 선두 자리를 경쟁사에 내줬기 때문이다.
삼성은 이미 글로벌 HBM 시장에서의 패착을 스스로 시인한 바 있다. 앞서 지난 3월 삼성전자 정기 주주 총회(주총)에서는 ‘HBM 시장에서 삼성이 한발 밀린 것 아니냐’는 주주들의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경계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은 “HBM 시장에서 경쟁사에 역전을 허용했다”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더욱 잘 준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에 HBM 패권을 빼앗기면서 ‘글로벌 톱 메모리 업체’로서의 위상에 흠집이 생긴 것이다.
이에 삼성은 HBM 주도권 확보에 사활을 걸고, 최근 HBM 개발팀을 신설하는 등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AI 반도체 공룡 엔비디아에 HBM을 납품하기 위한 품질 테스트도 진행 중이다.
그러나 노조가 교섭 타결 전까지 총파업을 지속키로 하면서 AI 메모리 역량 확보가 시급한 삼성이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력을 제고하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이같은 우려에 사측은 전삼노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삼노가 예고한 시점까지 사측이 제시안을 내놓고, 집중 교섭에서 합의점을 도출한다면 삼성의 파업 사태가 이달 중 일단락될 수도 있다.
한편 전삼노도 교섭 타결이 시급한 상황은 마찬가지다. 지난해 8월 대표 교섭 노조 지위를 확보한 전삼노가 1년이 되는 다음달이면 대표 교섭권이 만료되기 때문이다. 대표 교섭 노조 지위가 사라지면 합법적으로 획득한 쟁의권도 자연스레 없어지게 된다.
이런 와중에 삼성전자 내 타 노조가 이의를 제기할 경우 전삼노는 다시 대표 교섭권을 확보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대표 교섭 노조 지위가 다시 부여되는 올 10월경에나 교섭을 재개할 수 있다.
결국 대표 교섭권 만료 전까지 임금 협상을 매듭짓지 못하면 임금 협상 자체가 내년으로 미뤄질 수 있는 최악의 상황에 처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상 노조 입장에서도 이달 중 임금 협상 교섭을 타결시키는 것이 유리한 상황이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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