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6일 대만서 웨이저자 TSMC 회장과 회동
“인류에 도움 되는 AI 시대 초석 함께 열자” 제안
AI 리더십 확보 위해 양사 반도체 협력 강화 전망
개인사로 인한 근심 불구 의연하게 그룹 경영 매진
SK “최, AI 반도체 산업·SK 경쟁력 강화 우선”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이 6일 대만에서 TSMC 이사회 의장인 웨이저자 회장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사진=SK>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이혼 소송 항소심에서 재산분할 판결로 위기에 몰린 가운데에도 반도체 생태계 확장을 위해 해외 출장길에 올랐다. 1조4000억원에 달하는 재산분할 판결로 그룹내 지배력까지 위협받게 된 상황에도 SK의 주력인 반도체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공식 일정에 나선 것이다.
최 회장은 이번 해외출장에서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시장 1위인 대만 TSMC 경영진들과 만나 ‘AI(인공지능) 리더십’을 확보하기 위한 상호 협력 방안을 모색할 방침이다.
7일 SK에 따르면 최 회장은 지난 6일 대만에서 TSMC 이사회 의장인 웨이저자 회장과 임원들을 만났다. 이날 회동에는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도 동석했다.
양사 수장 간 이번 만남은 웨이저자 회장이 회장직에 오른 이후 처음으로 만나는 것이어서 의미가 더욱 컸다. 그동안 TSMC는 2018년 장중머우 창업자가 퇴진한 이후 류더인 회장이 이끌어 왔다. 그러다 지난해 12월 이사회에서 당시 웨이저자 CEO(최고경영자)를 차기 회장으로 추천했다. 그리고 이달 4일 열린 주주총회(주총)에서 이사회 의장으로 공식 선임되며 웨이저자 회장 시대가 막을 열었다.
이날 최 회장은 “인류에 도움이 되는 AI 시대 초석을 함께 열어 가자”고 제안했다.그러면서 HBM(고대역폭메모리) 분야에서 SK하이닉스와 TSMC의 협력을 강화하자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 4월 SK하이닉스는 6세대 HBM인 ‘HBM4’ 개발 및 어드밴스드 패키징 기술 역량 강화를 위해 TSMC와 기술 협력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바 있다. 양사는 MOU를 통해 HBM 패키지 내 최하단에 탑재되는 베이스 다이(base die) 성능 개선에 나서기로 했다.
HBM은 베이스 다이 위에 D램 단품 칩인 코어 다이(core die)를 쌓아 올린 뒤, 이를 TSV(실리콘관통전극) 기술로 수직 연결해 제조한다. 베이스 다이는 GPU(그래픽처리장치)와 연결돼 HBM을 통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이 SK하이닉스 경영진들로부터 차세대 반도체와 관련해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SK>
SK하이닉스는 5세대 HBM인 ‘HBM3E’까지 자체 D램 공정으로 베이스 다이를 만들어 왔다. 그러나 HBM4부터는 TSMC가 보유한 로직 초미세 선단 공정을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HBM 제조 과정에 초미세 공정을 적용하면 보다 다양한 기능을 추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SK는 성능과 전력 효율 등 고객사의 폭넓은 요구에 부합하는 맞춤형 HBM을 양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HBM4의 본격 생산 시점은 2025년으로 예고된다.
아울러 양사는 SK하이닉스의 HBM과 TSMC의 첨단 패키징 공정 ‘칩 온 웨이퍼 온 서브스트레이트(CoWoS)’ 기술 결합을 최적화하기 위해 협력할 예정이다. 또 HBM 관련 고객사 요청에 공동 대응키로 했다.
이뿐만 아니다. 최 회장은 TSMC 외에 대만 IT 업계 주요 인사들과도 회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최 회장은 AI와 반도체 분야 협업 방안 등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는 후문이다.
최 회장이 이번 해외 일정을 통해 AI 메모리 경쟁력 확보에 나선 것은 개인사로 인한 우려 속에서도 그룹 경영에 흔들림 없이 매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앞서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열린 임시 SK수펙스추구협의회(SK수펙스)에 참석한 최 회장은 “개인적인 일로 SK 구성원과 이해관계자 모두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SK와 국가 경제 모두에 부정적인 영향이 없도록 묵묵하게 소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항소심 판결에 유감을 표하고, 대법원 상고 의지를 재차 내비쳤다. 최 회장은 “이번 판결로 지난 71년 간 쌓아 온 SK그룹의 가치와 그 가치를 만들어 온 구성원의 명예 및 자부심에 큰 상처를 입어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법부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지만 SK가 성장해 온 역사를 부정한 이번 판결에는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며 “SK와 구성원 모두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진실을 바로잡겠다”고 강조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사진=연합뉴스>
최 회장은 이번 항소심 판결과 별개로 당면한 글로벌 경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SK그룹 경영에 전념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최 회장은 “이번 판결에 슬기롭게 대처하는 것 외에 엄혹한 글로벌 환경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사업 경쟁력을 제고하는 등 그룹 경영에 한층 매진하고자 한다”면서 “그린·바이오 등 사업은 ‘양적 성장’보다 내실 경영에 기반한 ‘질적 성장’을 추구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반도체 등 디지털 사업 확장을 통해 AI 리더십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그룹 DNA인 ‘SKMS(SK경영관리시스템)’ 경영 철학을 바탕으로 고객에게 사랑 받고 대한민국 사회에 기여하는 모습을 보여주자”고 당부했다.
최 회장은 스스로가 내뱉은 말을 지키고자 해당 발언을 한지 불과 사흘 만에 대만 출장길에 올랐다.
최 회장의 광폭 행보는 지난해 연말부터 본격화했다. 지난해 12월 최 회장은 반도체 업계의 ‘슈퍼 을(乙)’로 일컬어지는 네덜란드 ASML 본사를 찾아 SK하이닉스와 EUV(극자외선)용 수소 가스 재활용 기술 및 차세대 EUV 개발 기술 협력 방안을 모색했다.
올 4월에는 AI 반도체 공룡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를 만나 양사 파트너십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당시 최 회장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황 CEO와 찍은 사진과 함께 황 CEO가 ‘AI와 인류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가는 파트너십을 위해’라고 적은 메시지를 공개한 바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오른쪽)이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만나 양사 파트너십 강화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사진=최태원 SK그룹 회장 인스타그램 캡처>
양사 간 협력 관계는 상당히 두텁다. 글로벌 HBM 시장에서 선도적 지위를 확보한 SK하이닉스는 이미 AI 반도체 시장의 최대 고객사인 엔비디아의 핵심 파트너로 자리매김한 상태다. 특히 올 3월엔 세계 최초로 ‘HBM3E’ 8단 제품을 엔비디아에 납품하며 경쟁사들을 크게 앞질렀다.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칩에도 SK의 첨단 HBM이 탑재될 것이란 기대가 크다. 황 CEO는 ‘컴퓨텍스 2024’ 개막 전날 국립대만대학교에서 열린 연설에서 “2026년 첨단 GPU인 루빈을 양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루빈에는 6세대 HBM인 HBM4가 채택될 것이다”고 덧붙였다.
엔비디아의 루빈 출시 소식에 SK하이닉스도 큰 기대를 걸고 있다. SK가 HBM4를 내년에 본격 양산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기 때문이다. 양사의 제품 생산 시기를 고려했을 때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반도체에 장착되는 HBM4도 SK하이닉스 공급이 유력하다는 분석이다.
SK그룹 관계자는 “최 회장의 최근 행보는 한국 AI 반도체 산업과 SK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글로벌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고 강조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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