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삼노, 파업 돌입…조합원에 7일 단체 연차 사용 지침 전달
조합원 대부분, DS 부문 소속…파업 땐 반도체 생산 차질 불가피
삼성, HBM 위기 속 반도체 경쟁력 위축될까 설왕설래
창사 이래 ‘무분규 청정 기업’이라는 타이틀을 지켜 온 삼성전자가 사상 첫 ‘파업 리스크’에 직면했다. 노동조합(노조)이 예고한 파업이 이틀 앞으로 다가오면서, 당장 삼성 반도체 생산라인 가동에 차질을 빚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AI(인공지능) 핵심 메모리인 HBM(고대역폭메모리) 주도권 경쟁에서 밀려 위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역대 첫 파업까지 현실화하면서 노사 간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지는 모양새다. 삼성 내부적으로 차세대 반도체 역량 확보에 비상등이 켜졌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와중에 노조에서는 반도체 생산에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는 오는 7일 전 조합원들의 단체 연차 사용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파업에 돌입한다.
삼성전자 내 최대 노조인 전삼노는 앞서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파업 돌입을 공식화했다. 1969년 삼성전자 창립 이후 처음으로 파업이 현실화한 것이다.
전삼노는 사측의 무성의한 태도를 이유로 들어 파업 선언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강조했다.
파업 돌입을 공식화한 전삼노는 당장 총파업과 같은 강도 높은 단체 행동에 들어가지는 않겠다고 했다. 다만 노조는 조합원 연차 소진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단체 행동의 수위를 높여 나갈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에 전삼노는 7일 모든 조합원들에게 연차를 소진하는 것을 권고하는 파업 지침 1호를 전달했다.
재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전면적인 총파업은 피했지만, 단체 연차 사용을 시작으로 노조의 파업 수위가 높아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수만명이 동시에 연차를 쓰게 될 경우, 삼성전자의 생산라인 가동에 차질이 염려되기 때문이다.
당장, 반도체 공장 운영에 적신호가 켜질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전삼노 조합원 대부분은 반도체 사업을 영위하는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 소속이다.
3일 기준 전삼노 조합원 수는 2만8387명이다. 이는 지난해 말 기준 삼성전자 전체 고용 규모인 12만4804명의 22.7%에 달하는 수치다.
DS 부문으로 한정해 살펴보면 파업의 영향력은 더 커진다. 전삼노의 규모는 DS 부문 고용 규모 5만585명의 무려 56.1%와 맞먹는다.
만약 이들 조합원이 전삼노가 예고한 대로 7일 연차를 사용한다면, 삼성전자내 생산라인, 특히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 다수가 쉬게 될 전망이다.
삼성의 반도체 생산라인은 지금까지 한번도 멈춘 적이 없다. 교대 근무를 통해 휴일이나 명절 등에도 반도체 공장을 쉼 없이 가동해 왔다. 그러나 전삼노가 연차 소진을 통해 대규모 인원이 집단 연차에 나설 경우, 자칫 반도체 양산에도 큰 부담이 될 것이란 평가다.
반도체 경쟁력 제고를 위해 발걸음을 재촉해야 하는 삼성으로서는 큰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세계 1위를 놓친 적 없던 삼성은 AI 시대 속 급부상하고 있는 HBM 시장에서 선두 자리를 경쟁사에 내줬다.
삼성은 이미 글로벌 HBM 시장에서의 패착을 스스로 시인한 바 있다. 앞서 지난 3월 삼성전자 정기 주주 총회(주총)에서는 ‘HBM 시장에서 삼성이 한발 밀린 것 아니냐’는 주주들의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경계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은 “HBM 시장에서 경쟁사에 역전을 허용했다”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더욱 잘 준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에 HBM 패권을 빼앗기면서 ‘글로벌 톱 메모리 업체’로서의 위상에 흠집이 생긴 것이다.
AI 메모리 시장에서 위기에 몰린 삼성은 HBM 경쟁력 제고에 사활을 건 상태다. 삼성전자는 올 4월부터 D램을 8단으로 적층한 ‘HBM3E’ 8단 제품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HBM3E 12단 제품은 올 2분기 내 생산한다는 포부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HBM 경쟁력 강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SK하이닉스를 따라잡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다. 이런 와중에 파업 리스크까지 본격화하면서 삼성이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노조는 “삼성 HBM을 망가뜨린 건 김기남 삼성전자 상임고문이다”고 특정 인사를 지목하기도 했다.
지난달 24일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개최된 문화 행사 직후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이현국 전삼노 부위원장은 “과거 김기남 고문이 DS 부문장으로 재직할 당시 HBM 개발을 미룰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안다”며 “이로 인해 반도체 연구소 규모가 절반으로 축소됐고, 첨단 칩 개발이 더뎌지면서 HBM 주도권 다툼에서도 밀릴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고 꼬집었다.
삼성 노조는 조합원 단체 연차 사용이 반도체 양산에 큰 피해를 주지 않을 것으로 내다 봤다. 전삼노 관계자는 “우리는 삼성전자 생산라인에 파격적인 피해를 입히는 파업을 진행하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이번 연차 사용 파업을 시작으로 총파업까지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나가고자 한다”며 “동시에 24시간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농성을 진행해 투트랙 전략으로 사측을 향한 투쟁을 이어 나가는 중이다”고 덧붙였다.
전삼노는 조합원들의 연차 사용 현황을 따로 집계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이에 얼마나 많은 조합원이 파업에 동참할지 구체적인 수치를 파악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사측도 전삼노가 예고한 파업이 연휴에 낀 이른바 ‘샌드위치 데이’에 열릴 것으로 예고된 만큼 반도체 생산에는 큰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봤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샌드위치 데이에는 많은 직원들이 쉰다”며 “아직까지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고, 예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연차를 낸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노조가 파업이라고 밝혔으나 업무에는 큰 차질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업계에서도 비슷한 관측이 제기됐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삼성 노조의 첫 파업은 D램과 낸드플래시의 생산에 영향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출하량 부족 현상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고 예측했다.
트렌드포스는 이번 파업이 삼성 메모리 사업에 영향을 주지 않는 이유로 △하루 일정의 단체행동 △징검다리 연휴로 이미 일부 직원의 휴가 신청 △팹(생산 공장)의 높은 자동화 생산 의존도 등을 꼽았다.
다만 삼성전자는 첫 파업 리스크로 인한 혹시 모를 상황에 적극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삼성 반도체 생산라인은 결코 멈춘 적이 없었다”며 “노조의 파업에도 불구하고 DS 부문 생산 공장 가동에 차질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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