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삼노, 29일 삼성전자 서초사옥서 기자회견 열어
“노조·직원 무시하는 사측 태도에 파업 선언”
HBM 위기, 갈 길 바쁜 삼성 생산 차질 우려 커져
삼성전자가 창사 이래 첫 파업에 직면했다. 합법적인 쟁의권을 확보한 삼성전자 노동조합(노조)이 최근 어렵게 재개된 임금 협상 교섭에서 사측과의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고 끝내 파업을 선언했다. 반도체를 비롯해 삼성전자를 둘러싼 경영 위기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역대 처음으로 파업 리스크까지 현실화되면서 글로벌 각축전 속에 경쟁력 후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는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파업을 선언했다. 1969년 삼성전자가 창립된 이후 노조가 직접 파업에 나서는 것은 처음이다.
이날 기자회견은 하루 전인 이달 28일 열린 임금 협상 교섭이 파행된 지 하루 만에 전격적으로 개최됐다. 앞서 28일 삼성 노사는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서 올해 임금 협상을 위한 ‘제8차 본교섭’에 나섰다. 그러나 사측 인사 2명을 교섭에 참여시켜야 한다는 사측의 요구를 두고 노사 입장이 극명하게 갈리면서 정작 임금 협상은 진행되지 못했다.
당초 전삼노는 본교섭 이전에 사측 위원 2명을 교섭에서 배제할 것을 요구했지만 사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다수 조합원들의 의견에 따라 사측의 안건을 확인하기 위해 교섭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는 게 노조의 설명이다.
노사 양측은 이달 21일 실무 교섭 당시 임금 협상 타결을 위해 노력하기로 약속했으나 본교섭에서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전삼노 관계자는 “안건을 다루기 전 사측 교섭 위원 2명에 대한 입장 대립으로 인해 노사 간에 고성이 오갔다”면서 “본교섭 시작 후 얼마 되지 않아 사측이 교섭장을 이탈해 파행됐다”고 전했다. 이어 노조는 “이후 사측에 전화를 걸어 교섭 안건 유무를 재확인하였으나 이같은 분위기에선 더 이상 대화는 어렵고, 추후 통화하자는 입장을 전달받았다”며 “전삼노는 사실상 사측이 안건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인지하고, 29일 기자회견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손우목 전삼노 위원장은 “육아 휴직 관련 제도 개선, 코로나 격려금 지급 등 당시 노조의 요청에 대해 무조건 안 된다고 했으면서 이후 사측과 노사협의회는 노조의 요구안을 일방적으로 적용·발표하는 등 교섭을 무력화했다”며 “삼성이 노조 파괴를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셈이다”고 꼬집었다.
손 위원장은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임금 1~2%의 인상이 아니다. 성과급을 많이 달라는 것도 아니다”면서 “단지 우리가 피땀 흘린 노동의 대가를 공정하고 투명하게 결정해 달라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올해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에서 11조원의 영업이익을 거둘 것으로 전망되는데도 불구하고 사측은 EVA(경제적 부가가치) 기준으로 ‘성과급 0% 지급’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이미 경쟁사인 LG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영업이익 기준으로 성과급을 지급하고 있는데 왜 삼성전자만 EVA 기준으로 성과급을 지급하려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결국 직원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나눠주기 싫다는 사측의 태도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삼성전자 사업지원TF(태스크포스)를 향해 쓴소리도 냈다. 삼성전자 사업지원TF는 과거 그룹 콘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미전실)이 해체된 후 마련된 후속 조직이다. 손 위원장은 “이달 24일 열린 집회에서 삼성의 실세인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TF 부회장에게 노조와 직접 만나 현 사태를 해결하자고 촉구했다”면서 “그러나 정 부회장은 지금까지 아무런 입장조차 밝히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전삼노가 파업 돌입을 공식화하면서, 1969년 창립 이후 노사화합의 상징인 ‘무분규 청정 기업’ 타이틀도 깨지게 됐다. 다만 노조는 당장 총파업과 같은 강도 높은 단체 행동에 들어가지는 않을 전망이다.
전삼노는 우선 조합원들의 연차 소진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단체 행동의 수위를 높여 나가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따라, 노조는 다음 달 7일 모든 조합원들에게 연차를 소진하는 것을 권고하는 파업 지침 1호를 전달했다. 전삼노 관계자는 “연차 사용 파업을 시작으로 총파업까지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나가고자 한다”며 “동시에 24시간 농성을 진행해 투트랙 전략으로 사측을 향한 투쟁을 이어갈 것이다”고 말했다.
다행히 전면적인 총파업을 피하긴 했지만, 수만명이 동시에 연차를 쓰는 것은 삼성전자의 생산라인 가동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전망이다. 이달 27일 기준 전삼노 조합원 수는 2만8400명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말 기준 삼성전자 전체 고용 규모인 12만4804명의 22.8%에 달하는 수치다.
지난해 반도체 부문의 극심한 부진에서 벗어나 올해 시장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노조의 파업 선언은 큰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지난해 반도체 한파의 직격탄을 맞은 삼성전자 DS 부문은 14조8800억원의 적자를 낸 바 있다. 올해 반도체 업황이 개선되고 AI 반도체가 수혜주로 부상하는 가운데, 조합원 수만명이 파업에 동참할 경우 자칫 반도체 생산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는 AI 메모리 시장에서 경쟁사인 SK하이닉스에 밀려 HBM 패권 확보에 사활을 건 상황에서, 노조 리스크까지 더해 차세대 반도체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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