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리더십 회복, 한시가 급한데”…이재용, HBM 위기 속 ‘사법 리스크’에 또 ‘족쇄’

시간 입력 2024-05-27 17:43:09 시간 수정 2024-05-27 17:4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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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 27일 공판준비기일 열어…이재용, 법정 출석 안 해
검찰 “1심, 대법원 판례와 배치”…항소 이유서 분량만 1300쪽
갈 길 바쁜 삼성, 법정 다툼 불가피…HBM 주도권 경쟁 밀리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또 다시 ‘사법 리스크’에 직면하게 됐다. 지난 2월 1심에서 이 회장이 ‘부당합병·회계부정’의혹과 관련해 무죄판정을 받았지만, 검찰이 이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한 이후 110일 만에 항소심이 본격 시작됐다.

당초 이 회장은 1심에서 사법 리스크를 모두 해소하고 ‘삼성의 초일류 기업 재도약’을 꾀했다. 그러나 검찰의 항소로 이 회장의 ‘뉴 삼성’ 비전 구체화는 후일로 미뤄지게 됐다. 특히 최근에는 AI(인공지능) 핵심 메모리인 HBM(고대역폭메모리) 주도권 경쟁에서 2위로 내몰리며 경영 위기가 심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법 리스크까지 재점화하면서 상당한 부담을 떠안게 됐다.

서울고법 형사13부(백강진, 김선희, 이인수 부장판사)는 27일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의 항소심 공판준비기일을 가졌다.

공판준비는 본격적인 재판을 앞두고 검찰과 피고인 측의 입장 확인을 통해 쟁점을 정리하고, 증거 조사를 계획하는 절차다.

정식 재판과 달리 피고인의 출석 의무는 없다. 이날 이 회장은 법정에 직접 출석하지는 않았다.

앞서 2020년 9월 이 회장 등 피고인들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자본시장법 위반과 업무상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지난 2015년 5월 이사회를 거쳐 제일모직 주식 1주와 삼성물산 약 3주를 바꾸는 조건으로 합병을 결의했다. 제일모직 지분 23.2%를 보유했던 당시 이 부회장은 합병 이후 지주사 격인 통합 삼성물산 지분을 안정적으로 확보해 그룹 지배력을 강화했다.

당시 검찰은 제일모직 주가는 띄우고 삼성물산 주가는 낮추기 위해 그룹 콘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미전실) 주도로 거짓 정보 유포, 중요 정보 은폐, 허위 호재 공표, 주요 주주 매수, 국민연금 의결권 확보를 위한 불법 로비, 자사주 집중 매입을 통한 시세 조종 등 각종 부정 거래가 이뤄졌다고 봤다. 이 과정에서 기업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삼성물산의 주요 투자자들이 손해를 입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은 삼성물산 이사들을 배임 행위의 주체로, 이 회장을 지시 또는 공모자로 지목했다.

또한 이 회장 등 피고인들은 제일모직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분식회계 혐의도 받고있다. 검찰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지난 2015년 합병 이후 회계 처리 과정에서 자산 4조5000억원 상당을 과다 계상했다고 봤다. 이같은 이유를 들어 검찰은 지난해 11월 17일 1심 결심 공판에서 이 회장에게 징역 5년에 벌금 5억원을 구형했다.

2월 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부당합병·회계부정’ 1심 선고 공판에 출석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박대한 기자>

그러나 지난 2월 1심 재판부는 이 회장을 비롯해 모든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이 회장의 승계나 지배력 강화가 유일한 목적이 아니기에 전체적으로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며 “비율이 불공정해 주주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제일모직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관련한 거짓 공시, 분식회계를 한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성공 여부가 불확실했던 상황 등을 고려하면 바이오젠이 보유한 콜옵션에 대한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분식회계 혐의도 회계사들과 올바른 회계 처리를 한 것으로 보여 피고인들에게 분식회계의 의도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의 이같은 판결에 검찰은 항소했다. 당시 검찰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의한 그룹 지배권 승계 목적과 경위, 회계부정과 부정 거래 행위에 대한 증거 판단, 사실 인정 및 법리 판단에 관해 1심 판결과 견해 차가 크다”며 “그룹 지배권 승계 작업을 인정한 법원 판결과도 배치되는 점이 다수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이날 열린 항소심 공판준비기일에서도 삼성의 그룹 지배권 승계 작업을 인정한 앞선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1심이 배치되는 판단을 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검찰이 준비한 항소 이유서 분량만 1300쪽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1심에서 대부분의 의혹과 관련해 무죄가 선고됐지만, 항소심이 본격화하면서 이 회장은 또 다시 길고 긴 법정 다툼에 휘둘리게 됐다. 1심 판결까지 3년 5개월이 걸렸던 점을 감안할 때 항소심 역시 2~3년은 족히 소요될 것이란 분석이다.

지난 2022년 10월 삼성전자 회장직에 오르며 이재용 호(號)가 본격 출항했지만, 사법 리스크와 다시 맞닥뜨리면서 혼선이 다시 재연되는 분위기다.

삼성전자 HBM3E 12H. <사진=삼성전자>

삼성은 최근 경영 상에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세계 1위를 놓친 적 없던 삼성은 최근 AI 시대 속 급부상하고 있는 HBM 시장에서 선두 자리를 경쟁사에 내주면서 예기치 못한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실제로 삼성은 글로벌 HBM 시장에서의 패착을 스스로 시인한 바 있다. 앞서 올 3월 20일 삼성전자 정기 주주 총회(주총)에서는 ‘HBM 시장에서 삼성이 한발 밀린 것 아니냐’는 주주들의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경계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은 “HBM 시장에서 경쟁사에 역전을 허용했다”고 인정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더욱 잘 준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삼성전자가 경쟁사인 SK하이닉스에 HBM 패권을 빼앗기면서 ‘글로벌 톱 메모리 업체’로서의 위상에 흠집이 생긴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AI 메모리 시장에서 위기에 몰린 삼성은 HBM 경쟁력 제고에 사활을 건 상태다. 삼성전자는 지난달부터 D램을 8단으로 적층한 HBM3E 8단 제품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HBM3E 12단 제품은 올 2분기 내 생산한다는 포부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HBM 경쟁력 강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SK하이닉스를 따라잡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다. 이같은 위기 상황에서 삼성 수장인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본격화할 경우, 삼성의 반도체 경쟁력 회복이 지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당장, HBM 등 반도체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선 선제적이고 지속적인 투자가 절실한데, 항소심 절차가 본격화하면 이 회장이 정작 의사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최악의 경우, 삼성 반도체가 글로벌 주도권 다툼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지적까지 제기되고 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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