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1년 韓 반도체 부족 인력 규모 5만4000명
AI 열풍으로 AI 칩 인재 수요 폭발적 증가세
글로벌 빅테크, 자금력 앞세워 인재 영입 혈안
HBM 패권 경쟁 나선 삼성·SK, 인력 확보 절실
AI(인공지능) 열풍에 힘입어 HBM(고대역폭메모리)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가운데 HBM 주도권을 쟁취하려는 메모리 반도체 업체 간 경쟁이 날로 첨예해지고 있다. 당장 글로벌 HBM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SK하이닉스와 그 뒤를 맹추격 하고 있는 삼성전자가 차세대 HBM 패권경쟁이 본격화 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AI 시대 차세대 메모리인 HBM 시장을 리드할 반도체 전문인력 확보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반도체 전문가 수급이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K-반도체 진영의 위상도 위축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5일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2031년 국내 반도체 인력 규모는 30만4000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는 2021년 17만7000명 대비 무려 71.6% 증가한 수치다.
10년 새 13만여 명의 우수 인재가 더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그러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현재 반도체 산업에 취업하는 전문 인력의 수가 상당히 적기 때문이다. 업계의 선호도가 높은 학사 및 석·박사의 반도체 산업 취업자 수는 연간 약 5000명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흐름이 지속될 경우 2031년 국내 반도체 업계에는 무려 5만4000명의 우수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1년 부족 인력이 1752명으로 집계됐다는 점을 고려할 때 10년 만에 반도체 인력난이 30배 넘게 심화되는 것이다.
더구나 반도체 산업에서 요구되는 전문 인재 규모는 최근 들어 더욱 가파르게 증가하는 모습이다. ‘챗GPT’가 쏘아 올린 AI 열풍으로 인해 AI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확대되고 있어서다.
위기를 느낀 글로벌 빅테크는 이미 AI 인재를 선점하기 위해 소리 없는 전쟁에 뛰어들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다수의 빅테크가 AI 전문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수십억원대 연봉 패키지나 주식 보상을 약속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중국 과학 기술 매체 타이메이티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의 AI 분야 기술 기업 각 16개사의 인재 채용 비용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미국 기업은 AI 핵심 인재 영입에 7억7000만달러(약 1조503억원)를 투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중국 기업은 6000만달러(약 818억원)에 불과했다. 미국이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 AI 인력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셈이다.
메타는 인재 확보에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빅테크 중 하나다. 메타는 AI 인력에게 기본 연봉을 비롯해 스톡옵션, 성과급 등 1인당 최대 251만달러(약 34억2364만원)를 지급키로 했다. 이들은 메타의 생성형 AI인 ‘라마’는 물론 AI 학습 및 추론 전용 프로세서 ‘MTIA’ 등 AI 역량을 강화하는 임무를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챗GPT를 통해 AI 시대의 포문을 연 오픈AI도 156만달러(약 21억2815만원)를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픈AI는 최근 AI 반도체를 자체 생산하겠다는 뜻을 내비치며 삼성·SK와의 협업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앞서 올해 3월 샘 올트먼 오픈AI CEO(최고경영자)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오픈AI 본사에서 열린 ‘K-스타트업&오픈AI 매칭 데이 인 US’ 행사에서 ‘오픈AI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 AI 칩을 제조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지난 6개월 동안 한국에 두번 방문했다”며 “그렇게 하고 싶은 희망을 갖고 있다(hopefully)“고 말했다. 이어 ”그들(삼성전자·SK하이닉스)은 환상적인(fantastic) 기업이다”며 “그들과의 만남이 정말 좋았다”고 강조했다.
이렇듯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는데도 불구하고 빅테크 역시 우수 인재 영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습이다. 오죽하면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X(옛 트위터)에 “AI 인재 쟁탈전은 지금껏 본 것 중 가장 미친 전쟁이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또 그는 AI 개발 속도를 늦추는 주요 제약이 ‘인재 부족’이라고 강하게 지탄하기도 했다.
비단 AI 인력 확보는 주요 빅테크만의 고민이 아니다. AI 메모리 최강자로 부상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전문 인재를 쟁취하는 데 비상등이 켜졌다.
삼성·SK가 필요로 하는 반도체 우수 인재는 시간이 갈수록 빠르게 늘어날 전망이다. 양사 모두 글로벌 HBM 시장을 차지하기 위한 주도권 싸움에 본격 뛰어들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하루 전인 이달 2일 SK하이닉스는 경기 이천본사에서 ‘AI 시대, SK하이닉스 비전과 전략’을 주제로 기자 간담회를 개최했다.
오프닝 발표에 나선 곽노정 SK하이닉스 CEO 사장은 “HBM 시장 리더십을 확고히 하기 위해 세계 최고 성능의 ‘HBM3E’ 12단 제품의 샘플을 이달 제공하고, 올해 3분기 양산이 가능하도록 준비 중이다”며 “생산 측면에서 SK의 HBM은 올해 이미 솔드아웃(매진)이고, 내년 역시 대부분 솔드아웃됐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AI는 데이터센터 중심이지만 향후 스마트폰과 PC, 자동차 등 온디바이스(On device) AI로 빠르게 확산될 전망이다”며 “이에 따라 AI에 특화된 초고속·고용량·저전력 메모리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다”고 진단했다.
곽 사장은 “당사는 핵심 패키지 기술인 MR(매스 리플로우)-MUF(몰디드 언더필) 기반 HBM, TSV(실리콘관통전극) 기반 고용량 D램, 고성능 eSSD 등 각 제품별로 업계 최고의 기술 리더십을 갖춘 상태다”며 “지속 증가하고 있는 수요에 대응해 향후 글로벌 고객사들과 전략적으로 협업하며 세계 최고의 고객 맞춤형 메모리 솔루션을 제공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뿐만 아니다 .기존 제품을 더욱 개선, 발전시킨 차세대 제품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SK는 6세대 HBM인 ‘HBM4’, 7세대 HBM인 ‘HBM4E’, LPDDR6, 300TB SSD뿐만 아니라 CXL(컴퓨트익스프레스링크) 풀드 메모리 솔루션, PIM(Processing-In-Memory) 등 혁신적인 메모리를 준비하고 있다.
생산 능력 확대에도 속도를 올린다. SK하이닉스는 AI 메모리 수요에 대응하고자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첫 팹 가동 전에 충북 청주에 들어서는 M15X를 D램 생산 기지로 구축키로 결정했다.
약 5조3000억원의 대규모 자금이 투입되는 신규 팹은 이달 말부터 본격 착공에 돌입할 예정이다. 2025년 11월까지 준공하는 것이 목표다.
반도체 제조 장비 투자도 순차적으로 진행한다. SK는 장기적으로 M15X에 총 20조원 이상의 투자를 집행해 EUV(극자외선)를 포함한 HBM 일괄 생산 공정을 확충한다는 방침이다.
약 120조원이 투입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도 차질 없이 추진한다. 현재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부지 조성 공정률은 약 26%로, 목표 대비 3%p 빠르게 공사가 진행 중이다. SK하이닉스의 생산 시설이 들어설 부지에 대한 보상 절차와 문화재 조사는 모두 완료됐고, 전력과 용수, 도로 등 인프라 조성 역시 계획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SK는 용인 첫 번째 팹을 내년 3월 착공해 2027년 5월 준공한다는 목표다.
아울러 38억7000만달러(약 5조2744억원)를 투자해 미국 인디애나주에 짓는 AI용 어드밴스드 패키징 생산 기지 구축에도 만전을 기한다. SK는 2028년 하반기부터 인디애나공장에서 차세대 HBM 등 AI 메모리 제품을 양산할 계획이다.
SK에 전 세계 HBM 시장 1위 자리를 내준 삼성은 선두 자리 탈환을 목표로 AI 메모리 경쟁력 제고에 사활을 걸었다. 삼성전자는 생산 능력 확대와 초격차 기술력을 바탕으로 HBM3E 등 차세대 HBM 시장을 적극 공략하겠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김경륜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상품기획실 상무는 이달 2일 삼성전자 반도체 뉴스룸에 올린 ‘종합 반도체 역량으로 AI 시대에 걸맞은 최적 솔루션 선보일 것’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D램을 8단으로 적층한 HBM3E 8단 제품은 지난달부터 양산에 들어갔다”며 “업계 내 고용량 제품에 대한 고객 니즈 증가에 발맞춰 업계 최초로 개발한 12단 제품도 올 2분기 내 양산할 예정으로, 램프업(생산량 확대) 또한 가속화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고객별로 최적화된 맞춤형 HBM을 제공해 고객사 확보에도 속도를 올린다. 김 상무는 “HBM은 D램 셀을 사용해 만든 코어 다이와 SoC(시스텝온칩)과의 인터페이스를 위한 버퍼 다이로 구성된다”며 “고객사는 버퍼 다이 영역에 대해 맞춤형 IP(설계 자산) 설계를 요청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HBM 개발·공급을 위한 비즈니스 계획에서부터 D램 셀 개발, 로직 설계, 패키징·품질 검증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차별화·최적화가 주요 경쟁 요인이 될 것임을 의미한다”고 역설했다.
AI 반도체 시장의 트렌드 변화 속에서 삼성전자는 차세대 HBM 초격차를 달성하기 위해 종합 반도체 역량을 십분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김 상무는 “삼성전자는 차세대 HBM 초격차 달성을 위해 메모리뿐만 아니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시스템LSI, 어드밴스드패키징(AVP) 등 차별화된 사업부 역량과 리소스를 총 집결해 경계를 뛰어넘는 차세대 혁신을 주도해 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향후 삼성전자는 견조한 생산 능력과 AI 시대에 걸맞은 최적의 솔루션을 앞세워 올해 ‘HBM 누적 매출 100억달러(약 13조6350억원) 시대’의 포문을 연다는 구상이다.
이렇듯 K-반도체가 차세대 HBM 기술력을 키우고 생산 능력을 끌어올리는 데 힘쓰고 있는 가운데 이를 차질 없이 수행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반도체 우수 인력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그러나 삼성·SK 등 반도체 산업 현장에서는 전문 인재 영입이 쉽지 않다고 성토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9월 경계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은 서울대 강연에서 반도체 구인난의 심각성을 짚으며 “회사가 지속 가능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사람이다”고 강조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결국 인재를 활용하는 곳은 기업이다”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입맛에 맞게 전문 인력을 양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시급한 상황이다”고 전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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