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사법리스크’ 벗은 첫날 ‘노조리스크’ 닥쳤다

시간 입력 2024-02-06 17:47:44 시간 수정 2024-02-06 17:47:44
  • 페이스북
  • 트위치
  • 카카오
  • 링크복사

삼성노조연대. ‘근로 조건·노사 관계 개선 공동 요구안’ 발표
올해 임금 5.4% 인상 요구…“실적 성장, 노동자에 보상하라” 주장
‘1만 조합원’ 초기업노조 출범 초읽기…삼성 내 거대 노조 등장
‘뉴 삼성’ 꿈꾸는 이재용, ‘사법 리스크’ 해소 첫날 ‘노조 리스크’ 부상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부당합병·회계부정’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며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난지 하루만에 또다른 암초와 맞닥뜨렸다. 범 삼성그룹 연합 노조가 성장에 합당한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겠다고 나서면서, ‘노조 리스크’가 새로운 현안으로 불거진 것이다.

당장, 삼성전자 DX(디바이스경험) 노조를 비롯한 4개 계열사가 이달 중 통합노조를 출범키로 하면서,  삼성의 노사 관계 지형에도 큰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이 회장이 사법 리스크 해소와 함께 삼성을 초일류기업으로 재도약시키기 위한 ‘뉴 삼성’ 비전을 제시하는데, 다시 큰 과제를 떠안게 됐다는 평가다.

삼성의 11개 계열사 노조가 참여하는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금속노련) 삼성그룹노동조합연대(삼성노조연대)는 6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24년 근로 조건 및 노사 관계 개선을 위한 공동 요구안’을 발표했다.

연대에는 △삼성디스플레이 노조 △삼성SDI울산 노조 △전국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삼성생명 노조 △삼성생명서비스 노조 △삼성화재 노조 △삼성화재애니카손해사정 노조 △삼성카드고객서비스 노조 △삼성웰스토리 노조 △삼성에스원참여 노조 △삼성엔지니어링 노조 &U(엔유) 등 총 11개 계열사 노조가 동참하고 있다.

삼성노조연대는 올해 임금을 5.4% 인상해 달라고 주장했다. 노조가 제시한 올해 공통 인상률 5.4%는 지난해 물가 상승률 3.6%와 산업별 노동 생산성 증가분 1.8%를 합산한 것이다.

이들은 여기에 계열사별 경영 성과에 따른 성과급 인상도 요구하고 나섰다.

삼성노조연대 관계자는 “올해 임금 인상으로 공통 인상률 5.4%를 지급하고 계열사별 경영 성과에 따른 성과를 반영해 성과 인상률을 지급해 달라”며 “세계적인 삼성그룹의 실적 성장에 대한 현실적인 보상을 삼성 노동자도 함께 누려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임금 피크제 개선 및 정년 연장 △리프레시 휴가 5일 등 일과 삶의 균형 보장 △포괄 임금제 폐지 등 정당한 임금 체계로 전환 △공정한 평가 제도 도입 및 하위 고과자 임금 삭감 폐지 △모회사·자회사 동일 처우 △노사 공동 태스크포스(TF) 구성 등도 요청했다.

삼성그룹노동조합연대가 6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24년 근로 조건 및 노사 관계 개선을 위한 공동 요구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뿐만 아니다. 노조는 삼성에 노사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라고 압박했다. 이를 위해 이 회장에게 직접 교섭 상견례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또 노사 간 교섭 시 대표이사가 참석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삼성노조연대 관계자는 “‘무노조 경영 포기 선언’이라는 용단 있는 결정을 했던 이 회장이 한번쯤은 용기 내어 노조 대표와 만나 노사 상생을 위한 합리적 제안을 경청해 주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이어 “단체 교섭은 법이 정한 노사 대표자 간 공식 협상 자리로, 책임 있는 대표이사가 참석하는 것은 상식이다”며 “대표이사가 교섭에 참석하면 노사 상생의 기틀을 마련하는 초석이 될 것이다”고 덧붙였다.

김만재 한국노총 금속노련 위원장 역시 “이 회장이 직접 삼성노조연대와 소통할 것을 요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엔 삼성의 핵심 계열사를 아우르는 통합 노조 설립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지난달 31일 ‘삼성기업 초기업노동조합(초기업노조)’은 ‘제1회 조합원 총회’를 열고, 내부적으로 출범을 선언했다.

초기업노조에 참가하는 계열사 노조는 삼성전자 DX(디바이스경험) 노조, 삼성화재 리본노조, 삼성디스플레이 열린노조,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생노조 등 4곳이다.

이는 삼성노조연대와는 사뭇 형태가 다르다. 계열사를 초월해 하나의 통합 노조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에 각 계열사 노조는 지난해 말부터 조합원을 대상으로 통합 노조 설립 추진에 대해 찬반 투표를 실시하는 등 의견 수렴을 거쳤다. 투표 결과, 찬성률은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생노조 99.5%, 삼성디스플레이 열린노조 96.12%, 삼성화재 리본노조 90%, 삼성전자 DX 노조 86% 등으로. 모든 노조에서 높게 나왔다.

초기업노조는 설 명절 이후인 이달 중 기자회견을 열고, 대외적으로 공식 출범을 알릴 예정이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사진=연합뉴스>

범 삼성 연합 노조인 초기업노조가 공식 출범하면, 삼성 내에는 엄청난 규모의 거대 노조가 등장하게 된다. 초기업노조에 동참하는 각 계열사 노조의 조합원 수는 △삼성전자 DX 노조 6000여 명 △삼성화재 리본노조 3000여 명 △삼성디스플레이 열린노조 3000여 명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생노조 1600여 명 등 총 1만3000여 명에 달한다.

현재 삼성그룹 내 최대 규모의 노조는 전국삼성전자노조(전삼노)로, 조합원 수는 1만4000명 수준이다.

초기업노조가 전삼노를 뛰어 넘는 노조로 부상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창사 이래 처음으로 출범한 삼성전기 노조가 초기업 노조에 합류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또 다른 계열사 노조도 통합 노조 가입을 고려중이다.

사실상 삼성그룹 내에 1만명 이상의 조합원을 거느린 거대 노조 2개가 자리 잡게 될 경우, 삼성의 경영 환경은 극도로 악화될 것이란 관측이다. 양대 노조의 압박 수위가 전방위로 전개될 경우, 경영활동 전반에 큰 위협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거대 노조는 보다 강력해진 교섭력을 앞세워 실적과 무관하게 임금·성과급 인상, 복지 확대 등 계열사 간 동등한 수준의 처우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난지 하루만에 노조 리스크까지 새로 불거지면서, 이재용 회장의 뉴 삼성 비전에도 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삼성의 주축인 삼성전자는 전 세계를 휩쓴 ‘반도체 한파’로 연일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연결 재무제표 기준 지난해 삼성전자 매출액은 258조94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도인 2022년 302조2300억원 대비 14.33% 감소한 수치다. 영업이익은 더 큰 폭으로 감소했다. 지난해 영업익은 6조5700억원으로, 2022년 43조3800억원 대비 84.86%나 급감했다. 삼성전자의 연간 영업익이 10조원을 밑돈 것은 글로벌 금융 위기가 닥친 2008년 6조319억원 이후 15년 만이다.

특히 반도체 사업을 영위하는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은 지난해 모든 분기에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삼성 반도체 부문 누적 적자는 14조8800억원으로 불어났다.

삼성의 주력 사업이 이렇듯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 노조 리스크까지 추가되면서 이 회장의 경영 행보에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산업계 한 관계자는 “계열사 노조가 개별적으로 대응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연대하거나 초기업노조에 가입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며 “특히 삼성 내 통합 노조 규모는 더 커질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삼성의 노사 관계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이 회장의 뉴 삼성 비전 추진 동력도 힘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고 우려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