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1만6000명 초기업노조 공식 출범…“이재용 ‘뉴 삼성’ 비전 또 시험대 오르나”

시간 입력 2024-02-19 17:30:00 시간 수정 2024-02-19 17:2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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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삼성디스플레이 등 계열사 4사 통합 노조 출범
5월 삼성전기 노조 합류…타 관계사 노조도 가입 고려
강력한 교섭력 앞세워 그룹 차원 가이드라인 폐지 요구
‘뉴 삼성’ 꿈꾸는 이재용, 연초부터 ‘노조 리스크’ 직면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 계열사 4개사 노동조합(노조)이 통합 노조로 공식 출범했다. 삼성그룹 내에 2만여 명에 육박하는 거대 노조가 탄생하면서 삼성의 노사 관계 지형에도 큰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사법 리스크 해소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뉴 삼성’ 비전이 가시화 되고 있는 가운데, 거대 노조가 출범이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삼성의 핵심 계열사를 아우르는 통합 노조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초기업노조)’는 19일 서울 서초구 한국컨퍼런스센터에서 출범식을 열고, 공식 출범을 선언했다.

지난달 31일 ‘제1회 조합원 총회’에서 내부적으로 출범을 선언한 지 20여 일 만이다.

초기업노조에 참가하는 계열사 노조는 삼성전자 DX(디바이스경험) 노조, 삼성화재 리본노조, 삼성디스플레이 열린노조,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생노조 등 4곳이다.

이날 출범한 초기업노조는 삼성 계열사 노조 간에 연대한 것과는 사뭇 형태가 다르다. 계열사를 초월해 하나의 통합 노조로 거듭나는 것이다.

초기업노조는 출범 선언문에서 “그동안 삼성그룹 또는 사업 지원 TF(태스크포스)라는 이름으로 각 계열사의 업황, 인력 구조, 사업 이익과 별개로 획일적으로 통제받아 온 지금의 불합리한 노사 관계에서 탈피하고자 한다”며 “초기업노조는 개별 계열사 노사 관계의 자주성을 확립하고, 동등한 관계 하의 유연한 노사 교섭을 통해 각사 실정에 맞는 임금, 복지, 근로 조건 수립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혔다.

이어 “통합 노조 공식 출범은 삼성그룹 내 모든 계열사의 경제적 이윤 창출에 기여하고, 모든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 근무 환경의 물리적·정서적 개선, 근로자에 대한 인격적 존중 등이 노사 상생 원칙에 의거해 반드시 실현되도록 전진하는 첫 발걸음이다”고 강조했다.

19일 서울 서초구 한국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출범식. <사진=연합뉴스>

특히 정치색을 드러내거나 상급 단체에 가입하지 않고, 오직 삼성 근로자의 권익 향상과 건강한 노사문화 정립에 힘쓰겠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등 상급 노조에 가맹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초기업노조는 “과거의 정치적·폭력적 노동 문화에서 탈피해 합법적이고 합리적인 노동 문화 실현을 꿈꾸고, 철저히 정치색을 배제하겠다”며 “오롯이 삼성 근로자의 경제적 이익, 삶과 업의 균형, 건강한 근로 조건 수립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단숨에 삼성 내 거대 노조로 부상한 초기업노조는 강력한 교섭력을 앞세워 합당하고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초기업노조는 그룹 차원의 가이드라인이 각 계열사의 실정에 맞는 임금 협상 교섭을 방해하고 있다며 ‘가이드라인 폐지’를 요구하고 나섰다.

홍광흠 초기업노조 총위원장은 “삼성의 임금 협상은 임금 인상률에 계열사 실정이 반영되지 않고, 그룹 차원의 가이드라인 통제를 받아 왔다”며 “이에 계열사별로 교섭을 벌이더라도 사측은 가이드라인에 따라 단합된 상태에서 교섭에 참여하기 때문에 노조측은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 있는 셈이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공식적으로 공동 요구안을 만들 생각은 없지만 가이드라인에서 벗어나 차별적으로 교섭을 진행하자는 것이 통합 노조의 첫 번째 요구 사항이다”고 덧붙였다.

결국 각 계열사 노조별로 알아서 임금 협상 교섭에 임하되 교섭 체결권만 초기업노조로 일원화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교섭 체결권 일원화는 초기업노조의 교섭력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계열사 노조들이 사측과의 교섭을 통해 원만하게 합의안을 도출하더라도 최종적으로 체결되지 않으면 교섭은 수포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19일 서울 서초구 한국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출범식. <사진=연합뉴스>

초기업노조의 힘은 앞으로 더 증대될 전망이다. 창사 이래 처음으로 출범한 삼성전기 존중노조가 초기업노조에 합류하겠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삼성전기 존중노조는 아직 정식으로 가입하지 않았으나 규약 변경을 마치고 올 5월께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초기업노조는 2만여 명에 육박하는 조합원을 거느린 거대 노조로 부상하게 된다. 현재 초기업노조 조합원 수는 △삼성전자 DX 노조 6100여 명 △삼성화재 리본노조 3400여 명 △삼성디스플레이 열린노조 4100여 명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생노조 2200여 명 등 총 1만5800여 명에 달한다.

여기에 추후 합류 예정인 삼성전기 존중노조 2100여 명을 합하면 초기업노조 조합원 수는 총 1만7900여 명으로 불어날 전망이다. 이는 기존 삼성전자 내 최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 조합원 수 1만7909명에 버금가는 규모다.

특히 다른 계열사 노조도 가입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초기업노조가 전삼노를 뛰어 넘는 삼성그룹 내 최대 노조로 부상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와 관련, 홍 총위원장은 “다른 계열사에서 상급 단체에 가입하지 않은 노조와 노조가 없는 계열사의 노사협의회와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며 “노조 없는 계열사에서 뜻있는 분들이 나서면 지부 설립을 도와드리고 교섭도 지원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막강한 교섭력을 갖춘 초기업노조가 공식 출범하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 리더십도 새로운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실제 삼성전자를 비롯해 주요 계열사의 경영 환경은 극도로 위축되는 상황이지만, 최근 노조측은 실적과 무관하게 임금 및 성과급 인상, 복지 확대 등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초기업노조가 압박 수위를 높일 경우, 이 회장이 추진하게 될 뉴 삼성 비전 수립에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의 주축인 삼성전자는 전 세계를 휩쓴 ‘반도체 한파’로 연일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연결 재무제표 기준 지난해 삼성전자 매출액은 258조94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도인 2022년 302조2300억원 대비 14.33% 감소한 수치다.

영업이익은 더 큰 폭으로 감소했다. 지난해 영업익은 6조5700억원으로, 2022년 43조3800억원 대비 84.86%나 급감했다. 삼성전자의 연간 영업익이 10조원을 밑돈 것은 글로벌 금융 위기가 닥친 2008년 6조319억원 이후 15년 만이다.

특히 반도체 사업을 영위하는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은 지난해 모든 분기에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삼성 반도체 부문 누적 적자는 14조8800억원으로 불어났다.

삼성의 주력 사업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 노조 리스크까지 추가되면서 이 회장의 경영 행보에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초기업노조에 동참한 삼성디스플레이 열린노조와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생노조는 최근 사측과의 임금 협상에서 교섭 결렬을 선언하고,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 노동 쟁의 조정을 신청하기로 했다.

삼성디스플레이 열린노조 위원장인 유하람 초기업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중노위 중재가 없고 사측에서 중재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같이 단체행동을 하는 등 초기업노조 차원에서 지원이 있을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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