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반도체 장비 독자개발 ‘반신반의’…삼성·SK, 중국 생산 차질 현실화 하나

시간 입력 2023-05-02 07:00:01 시간 수정 2023-04-28 17:5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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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MTC, 자국산 장비 활용해 첨단 3D 낸드 생산 추진
“美 대중 압박 불구 中 반도체 굴기 본격화할 수도”
ASML “中, 첨단 반도체 장비 기술 복제 어려울 것”
“中 의존 높은 삼성·SK, 제조 장비 확보해야” 지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 웨이퍼를 들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국의 대 중국 제재로 첨단 반도체 장비수급이 어려워진 중국이 독자적으로 반도체 장비 개발에 착수했다. 여기에 최근 중국 반도체 업체들이 자국산 장비를 활용해 첨단 반도체 생산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중국의 반도체 독자노선은 더 속도를 낼 전ㅁ망이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고민은 날로 깊어지고 있다. 중국 생산 의존도가 높은 삼성·SK로서는 미국의 대중 수출 규제로 반도체 핵심 장비의 중국 유입이 어렵게 되면서 첨단 반도체 양산에 적신호가 켜졌기 때문이다.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향후 중국산 반도체 장비를 사용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2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외신에 따르면 중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업체 YMTC(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는 미국의 대중 제재에 맞서 자국산 장비를 활용해 첨단 반도체 생산을 추진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SCMP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YMTC가 중국산 반도체 제조 장비로 첨단 3D 낸드플래시 생산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SCMP에 따르면 YMTC는 ‘우당산’이라는 일급 비밀 프로젝트를 통해 ‘엑스태킹(Xtacking 3.0)’ 낸드 양산을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YMTC는 자국 반도체 장비 업체들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SCMP는 한 소식통을 인용해 “YMTC는 식각(에칭) 장비를 만드는 자국 반도체 장비 업체 베이팡화창(나우라테크놀로지) 등에 대규모 발주를 했다”고 밝혔다.

SCMP는 “YMTC의 계획이 성공한다면 미국의 대중 압박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다시 본격화할 것이다”고 평가했다.

중국 YMTC 반도체공장. <사진=YMTC>

일각에서는 중국이 반도체 장비 독자 개발에 성과를 올리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앞서 지난해 11월 캐나다 반도체 컨설팅 업체인 테크인사이트는 YMTC가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 주요 반도체 업체들을 제치고 세계 최초로 200단 이상의 3D 낸드를 양산했다고 주장했다.

낸드는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저장되는 메모리 반도체로, 고차원의 적층 기술이 요구된다. 적층 기술은 셀(cell)을 수직으로 쌓아 올려 데이터 용량을 늘리는 것으로, 낸드의 핵심 기술로 꼽힌다. 다만 YMTC는 해당 보도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대규모 투자 유치 소식도 중국이 성과를 내고 있다는 분석에 힘을 보태고 있다. YMTC는 최근 ‘대기금(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펀드)’ 등 국영 투자자들로부터 70억 달러(약 9조3821억원)에 달하는 투자를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첨단 반도체를 제조하기 위한 설비 투자로 이어졌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결국 자국산 반도체 제조 장비를 확보하기 위한 기술 개발에 대규모 자금이 투입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다수의 업계 관계자들은 중국이 첨단 반도체 장비 기술을 개발하는 데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현지시간으로 지난달  26일 블룸버그 통신은 ASML의 주요 임원진을 인용해 “중국의 반도체 장비 기술 복제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피터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는 미국이 중국에 압박을 가할수록 중국 정부가 자국 반도체 업계에 더 많은 자금을 지원하고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내다 봤다. 베닝크 CEO는 “미국의 대중 제재로 중국이 반도체 제조 장비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시간은 걸려도 결국 만들어내긴 할 것이다”고 말했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다만 중국이 고도화된 기술력을 요구하는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를  직접 생산하는 것은 아직 멀었다는 게 ASML의 판단이다.

로저 다센 ASML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누군가가 현재 ASML의 기술 수준을 따라잡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10년 이내에 ASML은 앞선 패러다임에서 사업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 ASML이 있는 곳을 따라잡을 순 있겠지만 그때 우리는 다른 곳에 가 있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ASML이 이처럼 중국의 독자개발 노선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은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등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 제작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180톤에 달하는 EUV 장비는 10만개 이상의 부품을 결합해 제작된다. 3000개의 케이블과 4만개 이상의 나사, 2km 이상의 호스 등 필요로 하는 부품만도 어마어마하다.

더구나 해당 장비를 양산하기까지 ASML은 인텔, TSMC, 삼성전자 등으로부터 투자를 받아 20년 간 기술 개발에 매진해 왔다. 오랜 기간 구축해 온 ASML의 기술력을 중국이 단기간에 따라잡기는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자국산 장비를 활용해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겠다는 중국의 목표는 뜬구름에 지나지 않는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도 중국 반도체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대책 마련에 신경 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앞서 지난해 10월 미국은 주요 반도체 장비 업체들이 중국에 첨단 장비를 수출하지 못하도록 통제에 나선 바 있다. 당시 미 정부는 중국이 미국의 첨단 장비를 통해 반도체를 제조하고, 이를 군사적 목적으로 활용한다는 이유를 들어 강도 높은 대중 수출 규제를 단행했다.

해당 조치는 △18nm(1nm는 10억분의 1m)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 플래시 △핀펫(FinFET) 기술을 사용한 로직 칩(16nm 내지 14nm) 등 첨단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장비·기술을 중국에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화성캠퍼스. <사진=삼성전자>

당장, 중국 반도체 업체 뿐만 아니라 중국에 생산 공장을 두고 반도체를 양산해 온 주요 반도체 업체들까지 반도체 생산에 비상이 걸렸다. 미 제재로 인해 사실상 중국 반도체공장 내 장비 업그레이드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당장 타격이 우려된다. 현재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서 낸드플래시공장을, 쑤저우에서 반도체 후공정(패키지)공장을 각각 운영 중이다. SK하이닉스도 중국 우시에서 D램 메모리 반도체 생산 시설을 가동 중이고, 다롄에 있는 인텔의 낸드공장을 인수해 제품을 양산하고 있다.

이들 업체들은 중국 생산 의존도도 상당하다. 삼성전자는 낸드의 40%를, SK하이닉스는 D램의 40%와 낸드의 20%를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다.

다행히 미 정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해 한시적으로 반도체 장비 공급을 1년 간 유예한 바 있다. 그러나 유예가 끝나는 올 10월 이후로는 첨단 제조 장비를 조달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삼성과 SK가 중국산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라도 확보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기술력이 뒤떨어지는 중국산 장비를 사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평가다. 무디스의 루천이 분석가는 “중국은 첨단 반도체 생산을 위한 제조 장비와 기술 확보에 힘쓰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중국은 글로벌 리더들을 따라잡는 데 최소 5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는 관측을 내놨다.

일각에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 반도체 지원법에 따른 보조금을 수령하기 위해서라도 미국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반도체 패권을 둘러싸고 미국의 대중 제재가 날로 강화되고 있는 만큼 국내 반도체 업체들도 이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다.

SK하이닉스 이천공장. <사진=SK하이닉스>

SK하이닉스는 1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장기적인 지정학적 리스크, 시장 수요, 팹(생산 설비) 운영에 대한 효율성 등 종합적인 부분을 고려해 향후 중국 현지 공장 운영 계획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현재 상황에서는 특별하게 중국공장 운영에 대한 변화는 없는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 정부의 대중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 수출 통제와 관련한 유예 조치는 연장될 것으로 긍정적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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