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한파’ 걷히니 바로 파업위기 닥쳤다”…삼성전자 노조 창사 이래 첫 쟁의 돌입

시간 입력 2024-04-08 18:22:50 시간 수정 2024-04-08 19:3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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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참여 조합원 2만853명 중 2만330명 찬성
전삼노, 쟁의 행위 돌입 선포…삼성, 파업 직면
반도체 시장 격화, 갈 길 바쁜 삼성 또 부담 닥쳐
노조 리스크에 이재용 뉴 삼성 비전 위기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각축전이 날로 치열해지고 가운데 삼성전자가 창사 이후 처음으로 파업 위기에 직면했다. 삼성 노동조합(노조)이 조합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쟁의 행위 찬반 투표에서 찬성표를 대거 확보했기 때문이다.

최근 반도체 한파에서 벗어나며 점차 상승세를 타고 있는 삼성전자가 갑작스런 ‘노조 리스크’에 발목이 잡히면서 자칫 기술 초격차를 유지해야 하는 반도체 경쟁에서 밀려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의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은 지난해 반도체 한파로 14조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적자를 기록하다, 올 1분기 메모리 업황 개선으로 흑자전환이 예고된 상태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은 8일 전삼노 유튜브 채널을 통해 조합원 대상 쟁의 행위 찬반 투표 결과를 발표했다.

쟁의 찬반 투표는 삼성전자 내 5개 노조를 대상으로 실시됐다. 5개 노조 조합원 2만7458명 중 2만853명이 투표에 참여해 75.9%의 참여율을 기록했다. 특히 투표에 참여한 조합원 2만853명 중 2만330명(97.5%)이 찬성표를 던지면서, 압도적인 비율로 파업이 가결됐다. 쟁의 행위에 반대한 조합원은 523명에 그쳤다.

전삼노 관계자는 “쟁의 찬반 투표에 참여한 2만여 명 중 97.5%의 조합원으로부터 압도적인 찬성을 받았다”며 “합법적인 쟁의권 확보를 위한 요건에서도 전체 조합원 2만7458명 중 74.0%의 찬성표를 획득해 올해 임금 협상 교섭 결렬에 따른 쟁의권을 따냈다”고 말했다.

쟁의 행위 돌입을 선언하는 손우목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위원장. <사진=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유튜브 캡처>
쟁의 행위 돌입을 선언하는 손우목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위원장. <사진=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유튜브 캡처>

전삼노는 투표 결과 발표와 동시에 쟁의 행위 돌입을 선포했다. 이어 삼성전자에 파업이 발생할 것을 신고하는 공문을 즉각 발송했다.

손우목 전삼노 위원장은 “전삼노는 헌법으로 보장하는 합법적인 쟁의권을 획득했다”며 “삼성전자 창립 이후 처음으로 쟁의 행위를 시작하게 됐음을 알려드린다”고 선언했다. 

손 위원장은 “이제 우리는 직원의 권리를 되찾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기 위해 스스로 일어날 때다”며 “회사를 이끌어 나가는 우리 직원들이 행동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직원이 없는 회사는 존재할 수 없는 만큼 우리는 회사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며 “진정한 노사 상생이 무엇인지 직접 보여주자”고 말했다.

이날 전삼노의 쟁의 돌입 선포로 삼성전자는 1969년 창립 이래 55년 만에 첫 파업에 직면하게 됐다. 당장 노조는 ‘1호 단체 행동’으로 열흘 뒤인 이달 17일 경기 화성시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DSR(부품연구동) 타워에서 1000명 규모의 평화적 시위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전삼노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파업과 같은 노조 투쟁 방식도 있으나 가급적 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며 “일단 쟁의 행위는 평화롭게 시작하고, 사측의 반응에 따라 향후 입장을 결정할 것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날 파업 돌입을 선언한 것은 안타깝지만 우리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조합원의 주권을 되찾을 수 있는 시작이라 생각한다”며 “사측에서 우리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강한 투쟁에 돌입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놨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사진=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 노조가 첫 단체 행동으로 평화적 시위를 택하면서 당장 반도체 생산라인 가동 중단 등 큰 타격은 없을 전망이다. 그러나 앞으로 노사 간 협의가 원만히 이뤄지지 않는다면 노조는 언제든 강경 카드를 꺼내들 수 있다.

그간 삼성 노사는 여러 차례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으나 입장 차를 좀처럼 좁히지 못했다. 현재 노조는 평균 임금 인상률 6.5%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는 지난달 29일 노사협의회와 임금 조정 협의를 통해 올해 평균 임금 인상률을 5.1%로 결정했다. 

지난해 전 세계를 덮친 반도체 한파로 인해 삼성전자 DS 부문이 ‘0(제로)’ 성과급을 받아든 것도 노사 간 합의점 도출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삼성은 지난 한해 동안 극심한 실적 부진에 시달린 DS 부문 직원들에게 초과이익성과급(OPI)을 지급하지 못했다. OPI는 사업 부문의 실적이 연초에 세운 목표를 넘었을 때, 초과 이익의 20% 한도 내에서 1년에 한번 연봉의 최대 50%까지 받을 수 있는 성과급이다. 목표달성장려금(TAI)과 함께 삼성전자의 대표적인 성과급 제도로 꼽힌다.

DS 부문은 그동안 거의 매년 연봉의 50%에 달하는 성과급을 받아 왔다. 지난해 초에도 최대치인 연봉의 50%를 OPI로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올해는 성과급 봉투가 사라졌다.

그러나 삼성 입장에선 성과급은 물론 임금 인상도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삼성그룹의 주축인 삼성전자가 반도체 한파로 인해 연일 악화일로를 걸어 왔기 때문이다.

연결 재무제표 기준 지난해 삼성전자 매출액은 258조94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도인 2022년 302조2300억원 대비 14.33% 감소한 수치다. 영업이익은 더 큰 폭으로 감소했다. 지난해 영업익은 6조5700억원으로, 2022년 43조3800억원 대비 84.86%나 급감했다. 삼성전자의 연간 영업익이 10조원을 밑돈 것은 글로벌 금융 위기가 닥친 2008년 6조319억원 이후 15년 만이다.

특히 DS 부문은 지난해 모든 분기에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삼성 반도체 부문 누적 적자는 14조8800억원으로 불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는 올해 예상 소비자 물가 인상률(2.6%)의 2배 수준인 5.1%를 평균 임금 인상률로 결정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연합뉴스>

재계에서는 삼성전자에 창립 이후 처음으로 파업 위기가 닥치면서, 자칫 이제 막 되살아나기 시작한 삼성 반도체가 경쟁력을 잃고 뒤처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실제로 최근 삼성전자를 향한 낙관론이 빠르게 확산돼 왔다. AI(인공지능) 열풍으로 메모리 업황이 빠르게 회복되면서 올 1분기 DS 부문의 실적이 흑자전환할 것이란 장밋빛 전망이 제기되고 있어서다. 증권 업계에 따르면 삼성 반도체의 1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평균 1조8730억원으로 추정된다.

앞으로 삼성전자의 실적 개선세가 더욱 가속화할 것이란 관측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삼성이 급증하는 HBM(고대역폭메모리) 수요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업계 최초로 D램 칩을 12단까지 쌓은 차세대 HBM ‘HBM3E’ 12H 실물 제품을 공개하고, 글로벌 시장 공략의 신호탄을 쐈기 때문이다.

이렇듯 삼성에 반가운 소식이 날아든 와중에 만약 노조가 파업에 나서는 극한 상황이 현실화할 경우,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은 차세대 반도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오히려 경쟁에서 뒤처질 것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사실상 삼성이 노조 리스크를 끝내 피하지 못하면서 반도체 등 주력 사업을 중심으로 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뉴 삼성 비전’은 적잖은 타격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 정통한 관계자는 “삼성의 노사 관계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이 회장의 뉴 삼성 비전 구체화도 힘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고 우려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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