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건설비에 자재난 까지”…삼성·LG·SK, 미 공장 건설 ‘빨간불’

시간 입력 2024-03-06 07:00:00 시간 수정 2024-03-05 17:4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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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엔솔, 네 번째 배터리공장 건설 계획 백지화
SK온 켄터키 2공장 가동 시기, 기약 없이 연기
삼성 텍사스 반도체공장 건설비, 80억달러 폭등
자재 수급 대란·건설비 상승 탓…“겹악재 닥쳤다”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건설 중인 삼성전자 파운드리공장. <사진=경계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 인스타그램 캡처>

미국의 적극적인 보조금 정책에 매료돼 미 현지 생산 설비 구축에 나섰던 K-반도체, K-배터리 업체들이 최근 속앓이를 하고 있다. 건설 비용이 급격히 상승하고, 자재 수급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당초 예정대로 공장을 짓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완공 일정을 늦추거나 신규 공사 일정을 연기하는 것은 물론 아예 건설 계획을 취소하는 사태까지 빚어지고 있다.

특히 미 정부의 보조금 수혜가 자국내 기업에 집중되면서,  삼성·SK·LG 등 국내 기업들로서는 이미 미국 현지 생산라인 구축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붓고도 실익을 챙기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마저 커지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4일(현지시간) LG에너지솔루션(LG엔솔)이 미국 제네럴모터스(GM)와 함께 미 인디애나주에 짓기로 한 네 번째 배터리공장을 건설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WSJ은 소식통을 인용해 “LG엔솔은 현재 미국에서 건립 중인 세 곳의 배터리공장 건설 비용이 너무 불어나자 네 번째 공장 설립 계획을 취소했다”고 말했다.

비단 LG엔솔 뿐만이 아니다. 최근 SK온도 포드와 손잡고 건설키로 했던 미 켄터키 2공장의 가동 시기를 당초 목표인 2026년에서 연기했다. 배터리공장 설립에 대한 부담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지 공장건설이 언제쯤 재 가동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다. 김경훈 SK온 CFO(최고재무책임자)는 지난해 4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현재 가동 연기 중인 켄터키 2공장의 경우 협력사인 포드와 양산 시점을 협의 중이다”고만 설명했다.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입되는 반도체 공장의 경우 쉽사리 건설 계획을 연기하거나 취소하지 못한다. 이에 반도체 업체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비싼 돈을 들여가며 공장을 짓고 있는 실정이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미 텍사스주에 짓고 있는 반도체공장의 총 건설비는 예상보다 80억달러 이상 늘어난 약 250억달러(약 33조3625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앞서 2021년 11월 공장 설립 계획 발표 당시 삼성은 170억달러(약 22조6865억원)가 투입될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LG에너지솔루션 북미 생산공장 현황. <사진=LG에너지솔루션>

글로벌 반도체·배터리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삼성·SK·LG 등 국내 대기업들이 미 현지 공장 구축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은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인  자재 수급난 때문이다.

K-반도체 및 K-배터리 업체들이 바이든 행정부의 막대한 보조금을 받기 위해선 반드시 미국산 부품을 조달해야 한다. 현재 삼성전자는 ‘반도체 지원법(Chips and Science Act)’, LG엔솔과 SK온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보조금을 지급받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문제는 세계 각국의 기업들이 모두 미 정부의 지원금을 받아 내기 위해 반도체·배터리 공장 건설에 나서면서 미국 내 부품·자재 조달에 큰 애를 먹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미국 현지의 핵심  건설자재 및 부품난이 심각한 수준으로 전해지고 있다. WSJ에 따르면 공장에서 전기를 통제하고 조절하는데 사용되는 필수품인 스위치 기어와 변압기 부품을 납품 받기까지 100주 이상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상가상, 미국산 부품 가격도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미국 종합건설업협회의 케네스 사이먼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에서 새로운 산업을 개발하려는 시도가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공급망을 뒤흔들었다”며 “목재, 합판, 트럭 운송 등 공장에서 필요로 하는 많은 상품과 서비스 비용이 치솟고 있다”고 지적했다.

날로 치솟는 공장 건설 비용도 골칫거리다.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지난해 말 신규 산업 건물 건설에 드는 비용은 2020년 대비 3분의 1가량 증가했다. 지난해 말 미국 내 철강 가격은 2020년 이후 무려 70% 이상 올랐다.

미국내 건설비가 수년 간 큰 폭으로 상승하면서, ‘건설 붐’이 일기 전 반도체·배터리 공장을 계획했던 업체들로서는 당시 책정했던 예산이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건설비 폭등, 자재 수급난 등 겹악재로 인해 삼성·SK·LG 등 국내 대기업의 미국 현지 공장 건설에 비상등이 켜졌다”고 말했다.

여기에 미국 정부가 약속한 보조금 지급 여부가 불투명해지면서 K-반도체, K-배터리 업체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미 정부는 미국 및 서방 기업에게만 보조금 지급을 약속하고 있다. 지난달 19일 미 상무부는 미국 글로벌파운드리에 15억달러(약 2조33억원) 규모의 보조금을 지원하는 예비 협약을 체결했다.

글로벌파운드리는 대만 TSMC, 삼성전자에 이어 전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시장 3위 업체다. 무선 통신, 영상 처리, 전력 관리 등 다양한 목적의 애플리케이션 구동을 위한 반도체를 주로 생산한다.

올 1월엔 미국 마이크로칩테크놀로지(마이크로칩)에 1억6200만달러(약 2164억원)의 보조금을 제공키로 했다. 마이크로칩은 전기차를 비롯한 자동차, 비행기, 항공우주, 가전, 국방 분야 등에 주로 사용되는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 머추어 노드(40nm 이상) 등 레거시 반도체를 생산하는 업체다.

또한 미국은 지난해 12월 영국 방산 업체 BAE시스템스 뉴햄프셔공장에 최초로 보조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사실상 미 정부가 자국 및 서방 기업에만 반도체 지원금을 몰아주면서 여타 반도체 업체들은 들러리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까지 반도체 지원법을 겨냥해 미 당국에 지원을 요청한 업체들은 수백 곳에 달하고 있다. 이들이 제출한 투자 의향서만도 460개가 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이 자국 및 서방 기업 위주로 보조금을 몰아줄 경우 삼성전자 등 다수의 반도체 업체들은 자칫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이행하고도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몇몇 반도체 기업들이 아예 지원금 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내놓고 있다.

이에 천문학적인 규모의 재원을 들여 미국에 공장을 구축하고도, 정작 미 기업만 실속을 챙길 가능성이 커 보이는 상황이다.

실제로 지나 러먼도 미 상무부 장관은 “미 정부의 보조금을 받기 위해 기업들이 제출한 투자의향서가 600건이 넘는다”며 “기업들이 실제로 받는 보조금이 기대하는 규모에 못 미칠 것이다”고 밝힌 바 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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