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부 금융의 사회적책임]③ 은행 과점 체계 판 흔들기 본격화…‘챌린저뱅크’ 최선일까

시간 입력 2023-04-21 17:16:09 시간 수정 2023-04-21 17: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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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은행 ‘이자장사’ 비판…독과점 체제 개편 도마 위
SVB 파산에 경쟁 촉진 묘수 ‘챌린저뱅크’ 실효성 갑론을박
‘신규 플레이어 진입’ 금융 안정 저해 가능성 커
사회적 책임 강화할 제도·규제 정비 ‘선결과제’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금융권에 불어닥친 표제는 ‘개혁’과 ‘경쟁촉진’이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高)에 처한 위기를 금융권 혁신이라는 처방으로 풀어보겠다는 정부 의지로 볼 수 있다. 현재 정부와 민간이 참여한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를 열고 국가 경제 활력을 불어넣을 다양한 방안을 논의 중이다. 이 과정 중 당국은 수출경기 하락과 가계부채 최고치라는 당면한 현실을 풀어낼 우선 과제로 지주차원의 체질 개선을 주문하고 있다. 본지는 민간기업이라는 특성과 공공재라는 이질적인 조합이 충돌하는 과정 속에서 숙의해야 할 논점을 전문가 의견과 함께 3회에 걸쳐 점검한다. <편집자 주>

금융당국이 작년 고금리·고물가로 상환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은행 과점 체제 손질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이 과정 중 대형은행의 이자이익 독식 체제를 해소할 대안으로 특정 분야 전문 은행인 ‘챌린저뱅크’를 내세웠다. 신규 플레이어 진입을 유도해 은행 간 경쟁을 촉진하고 과점 체재를 해소하겠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해외 은행 파산이라는 예기치 못한 사태가 벌어지면서 챌린저뱅크 실효성을 두고 갑론을박이 거세다. 경쟁 활성화 목적으로 도입한 챌린저뱅크가 자칫 금융 안정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작정 경쟁을 촉진하기보다 은행이 자체적으로 사회적 책임을 강화할 수 있도록 제도부터 정비하는 일이 선결과제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특화은행 SVB의 몰락…챌린저뱅크 ‘신중론’ 부상

논란이 일파만파로 커지자 금융당국은 과점을 해소 방안으로 ‘챌린저뱅크’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공언했다. 금융 진입 장벽을 낮춰 챌린저뱅크가 금융시장에서 영업을 영위하도록 유도해 경쟁을 촉진하겠다는 복안이다.

챌린저뱅크는 영국에서 등장한 소규모 신생 특화은행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영국 6개 은행이 과점을 이루자 이를 해결할 대안으로 도입된 방식이다. 영국은 챌린저뱅크가 빠르게 진입할 수 있도록 시장 진출 방식을 개편했고 금융당국 역시 챌린저뱅크 성장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심수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유럽 챌린저뱅크는 기업 대출을 포함해 주식, 가상자산 등 금융상품 판매 기능을 확대하며 기존 은행 영역에 대한 시장 확대를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챌린저뱅크 도입 논의는 주요국 금융리스크가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면서 동력이 줄었다. 특화은행의 대표 모델로 논의된 실리콘밸리은행(SVB)과 시그니처 은행이 줄줄이 파산하면서 챌린저뱅크의 리스크 관리 한계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SVB 파산의 표면적 원인은 유동성 부족이지만 근본 원인으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당시 추진한 규제완화 조치를 꼽는다. 실리콘밸리은행은 2018년 미국 금융규제완화법과 2019년 지역 대형은행에 대한 규제완화 조치에 따라 금융 규제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는데 이후 유동성 리스크에 직면하면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진 것이다.

때문에 신규 플레이어 진입을 유도하고 경쟁을 촉진하는 과정에서 금융 불안정성만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단순히 5대 은행을 6대 은행으로 늘린다고 해서 대출금리 인하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할 동인이 되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오히려 기존 고객을 뺏는 출혈 경쟁만 야기되면서 시장만 혼탁해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상훈 전 금융경제연구소장은 “각 분야의 특화 은행은 해당 분야에서 특화 금융이 성공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와 선결 조건이 있고 이런 전제 조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경쟁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며 “이를 무시한 채 무조건 경쟁만 밀어붙이면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자칫 금융 안정을 저해할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특화전문은행은 은행 영업 규모가 작거나 제한적이라는 이유로 규제를 상대적으로 완화하는 것인데 단순하고 거칠게 밀어붙이는 금융당국의 감독능력으로 향후 금융리스크를 제대로 감당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경쟁 촉진’보다는 기존 제도 정비·개편 우선

경쟁촉진 논리에 대한 개념 정립이 필요한 상황이다. 단순히 시중은행의 이윤을 나눠가지는 의미라면 챌린저뱅크는 또다른 특혜시비나 금산분리 시비에 휩싸일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은행을 ‘공공재’라고 정의할 경우 이 공공재가 가질 사회적 가치와 기능이다.

은행의 공공성 측정지표 중 흔히 인용되는 것이 취약차주 지원과 사회공헌지출 현황이다. 17일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과 개별 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농협·하나·신한·우리·국민 등 5대 시중은행의 지난해 사회공헌지원금액은 7821억원으로 나타났다. 은행별 규모를 살펴보면 농협은행 1685억원(14.9%), KB국민은행 1630억원(14.4%), 우리은행 1605억원(14.2%), 하나은행 1493억원(13.2%), 1399억원(12.4%) 순이었다.

반면 인터넷전문은행은 카카오뱅크가 26억원, 케이뱅크와 토스뱅크는 각각 2억7000만원, 1억원을 사회공헌에 지출하는데 그쳤다. 단순히 은행 숫자가 더해 진다고 해서 사회적공헌 수치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는 반증이다. 시중은행의 실적 파이를 나눠가진다고 할 때 챌린저뱅크의 수익이 사회공헌도로 환산될 것으로 기대하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순히 시중은행 이윤을 낮추겠다는 취지라면  챌린저뱅크의 기능에 대한 면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과점 체제 논란이 ‘땅 짚고 헤엄치기’식 이자장사에서 비롯된 만큼 은행이 수익을 다각화하고 사회적 책임을 더욱 강화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사회공헌지원금액 규모는 차치하더라도 시중은행이 저신용차주의 대출 장벽을 늘려왔더라면 지금과 같은 ‘돈잔치’ 여론이 들불처럼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은행 역시 챌린저뱅크 논의의 시발이 된 은행권에 불신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는 과감하게 대출 취약차주 껴안기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실제 지난해부터 시작된 대출 한파로 돈줄이 막힌 저신용차주의 급전 수요는 늘었지만 제1금융권에서 돈을 빌리는 일이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워졌다.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서민금융진흥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신용평점 하위 20% 저신용자 대상 정책금융 상품인 ‘햇살론15’의 지난해 4분기 신규대출액은 6521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64.3% 증가한 반면 같은 기간 5대 은행의 가계신용대출 규모는 3.9% 감소했다. 5대 은행의 저신용자 취급 비중(금리 9~10%미만 구간) 역시 지난 12월 말 기준 4.02%로 저조한 수준이다.

이민환 인하대 글로벌금융학과 교수는 “5대 은행이 담보대출 위주로 손쉬운 영업만 해서 이자이익을 올리는 게 문제”라며 “은행이 소위 말하는 저신용자 대출을 확대하는 리스크테이킹(위험감행)을 통해 형편이 어려운 사람도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 당국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은행의 예대마진 공시를 투명하게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에 주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은행연합회에서는 시중은행의 예금과 대출 금리 차이를 공시하고 있지만 예대마진율은 공개하고 있지 않다.

[CEO스코어데일리 / 안은정 기자 / bonjour@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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