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불 충전금 100% 이상, 예치·신탁 등 방식으로 별도 관리 ‘필수’
머지포인트發 소비자 보호 명분 개정안 , 소비자 피해로 번질까 ‘촉각’
‘선불전자지급수단 발행 및 관리업무’(이하 선불전자금융)에 대한 감독 범위를 확대하고 고객의 선불 충전금을 별도 관리하도록 하는 등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를 골자로 한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이 공포 후 1년간의 유예기간을 갖고 오는 9월 15일부터 시행된다.
그간 선불전자금융 사업자들은 고객이 선불 충전한 금액의 50%는 은행 등지에 신탁·예치하고, 나머지 금액은 서비스 개선·신사업 투자 용도로 이용해 왔다. 하지만 이번 법 개정으로 선불 충전금액의 100%를 신탁·예치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게 됐다.
이 때문에 그간 선불 충전금액을 이용해 양질의 대국민 서비스를 제공해 온 교통카드, 페이(Pay) 서비스의 자체 경쟁력이 크게 약화돼 결국 소비자 피해로 돌아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규제 강화가 서비스 향상에 투자할 여력을 앗아간다는 점은, 소위 신용도 낮은 불량사업자 격인 ‘벼룩’을 잡고자 ‘초가삼간을 태우는’ 결과를 낳아 전체 선불전자금융업 발전을 저해 할 것으로 염려된다.
선불전자금융업이란 이용자가 구매행위를 목적으로 미리 현금이나 신용카드 등으로 충전한 것을 선불 머니(포인트)를 발행하고 정산하는 업무를 뜻한다. 일부 사업자는 충전금 양도나 환불(환급) 등 개념을 활용해 간편 송금(계정 및 계좌) 서비스까지 수행하고 있다.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페이코 등지에서 선불충전을 통한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이나 티머니, 이동의즐거움(구 로카모빌리티) 등 선불 교통카드 사업자가 대표적이다. 또 에스엠하이플러스 등 고속도로 선불 하이패스 사업자, 코나아이 등 지역화폐 사업자 역시 선불전자금융사로 분류된다. 지난 7월 19일 기준 금융당국에 등록된 선불전자금융 사업자는 총 82곳에 이른다.
◆ ‘머지포인트 사태’가 촉발한 선불전자금융업 규제…선불 충전금 100% 전액 규제로 묶어
세상을 떠들썩 하게 했던 ‘머지포인트 사태’의 핵심은 상식 밖의 할인율을 적용해 선불충전금액 확보에 열을 올린 업체의 경영방식이 ‘폰지사기’ 형태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선불전자금융업 규제 사각지대를 없애 고객의 선불 충전금을 안전하게 보호할 명분으로 규제를 강화하고 나섰다.
지난해 5월 11일 국회 정무위원회를 시작으로 같은 해 8월 23일 법제사법위원회, 8월 24일 본회의까지 통과한 데 따라 9월 14일 최종 공포된 개정 전자금융거래법은 크게 △선불전자금융업 감독 범위 확대 △선불전자금융업자 영업행위 규칙 신설 △선불 충전금 별도 관리 의무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개정 안 중 선불전자금융업계에서 가장 우려하고 있는 부분은 선불 충전금 보호 의무 신설에 따른 선불 충전금 별도 관리 항목이다.
개정 전자금융거래법에서는 선불전자금융업자가 선불 충전금 규모의 50% 이상에 해당하는 금액을 신탁·예치 또는 지급보증보험의 방식으로 별도 관리하도록 했으나 세부 내용을 규정하는 개정 시행령에서는 이를 좀 더 엄격하게 규정해 그 비중을 100% 이상으로 명시했다.
금융위원회 측은 개정 시행령과 관련해 “선불 충전금의 50%에 대해서만 별도 관리를 두는 방식으로 보호 의무를 규정하면 선불 충전금 환급 절차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면서 “이는 제2의 머지포인트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법 개정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만큼 전액을 별도 관리하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업계는 기업 유동성과 관련 최소한의 경영 편의나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100% 전액 이상을 별도 관리 대상으로 규정하면서 선불충전 금융업이 존폐 위기에 놓였다는 위기감을 드러내고 있다. 앞서 금융위원회가 선불충전금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은 기업의 유동성 등을 염두한 준비금으로 예외적으로 인정하겠다는 방침을 정한 것에서도 한참 후퇴한 결과다.
◆ “소비자 보호 명목의 법 개정…실상은 소비자 혜택 축소로 이어져”
전문가들은 이번 법 개정이 표방하는 ‘소비자 피해 최소화’ 명분은 타당하나 개별 사업자의 사업 범위나 성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괄적인 규제의 잣대를 들이밀고 있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수십 년 간 사업을 영위한 교통카드 사업자나 기업신용도가 확보된 페이 사업자들까지도 동일하게 규제한 점은 그들이 구축한 선불사업 생태계 내 사업 순환구조나 경영지속성을 훼손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소비자를 보호할 목적의 법안이 오히려 디지털금융 산업발전 저해는 물론 사용자 서비스 축소 등 역효과를 부른다는 지적도 있다. 국민생활의 일부분으로 자리한 페이나 교통카드 등 선불전자금융사업자는 그간 선불 충전 금액의 일정 부분을 여타 사업에 투자하고, 그에 따른 이윤을 바탕으로 재투자를 진행해 왔다.
한 예로 공공성을 지닌 교통카드업계의 경우 그간 자금 운용을 통해 창출한 이윤을 케펙스(CAPAX) 비용으로 재지출해 왔다. 자본적 지출 혹은 설비 투자로 지칭하는 케펙스는 미래를 위한 투자 방식으로 대표적으로 △단말기 설비 교체 △정류장 쉘터 구축 △전자 노선도 설치 △환승 시스템 개발 △외국인 관광객 대중교통 시스템 개발 △소외계층 및 낙후 지역 인프라 설치 △복지기금 출연 등 공공 인프라 확장 등이 있다.
실제 교통카드업계는 2004년 ‘스마트 교통카드’ 시대를 열며, 대중교통 간 환승으로 요금 할인을 받을 수 있는 통합환승요금제 도입을 빠르게 안착시켜 소비자 편익을 크게 늘렸다. 또 교통카드 이용자를 크게 늘린 결과, 현금사용과 발행·정산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크게 절감시켜 이른바 ‘현금 없는 버스’ 시대를 열고 시민 편의를 도모했다. 2023년 기준 서울시 시내버스에서 현금 이용자의 비율은 전체 이용자의 0.3%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개정 법안이 시행된 이후부터는 유동성 확보가 어려워져 신사업 추진 등 투자 행위가 극도로 위축될 것으로 우려된다. 그간 관행적 금융에서 벗어나 ‘혁신금융’을 강조해 온 당국이 스스로 발목을 잡는 행위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투자금융 자문업계 관계자는 “티머니나 이즐 등 교통카드업계는 그간 50% 이하 선의 선불 충전된 금액을 활용해 도서 지방이나 오지 서비스 전개, 최신 단말기 도입이나 서비스 제공, 애플리케이션 고도화 등을 진행해 왔으나 법 개정에 따라 선불 충전금을 활용한 투자 사업이 원천 차단되면서 산업 발전을 위한 재투자가 어려워진 측면이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또 “각종 페이 사업자의 입장에서도 선불충전 이용자에 대한 우대나 이벤트, 각종 할인 혜택을 대폭 줄이거나 삭제할 수 밖에 없을 만큼 이는 곧 소비자 권익 저해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전자금융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은 규제심사 및 차관회의, 국무회의 의결 등의 절차가 전자금융감독규정 개정안은 법제처 심사, 금융위원회 의결 등의 절차가 남은 상태다.
[CEO스코어데일리 / 유수정 기자 / crysta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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