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로 인한 손실↑…글로벌 금융 리스크 요소로 부각
환경 개선·금융 발전·경제 성장 동시 추구하는 ‘녹색금융’ 화두
세계 각국 은행, 탄소중립 시대 이행 위한 대체 수단 확대 본격화
기후문제가 전 지구적 과제로 부상하면서 전 세계 생산활동과 무역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글로벌 사회에 던져진 탄소중립 요구는 새로운 생산설비·발전 투자를 요구하고 있으며, 해를 거듭할 수록 더욱 강력한 이행의무를 강제하고 있다. 이 과정 중 ‘Re100’과 ‘넷제로’ 등 기업활동을 위해 설정해야 할 목표를 지원하고 장려하는 것에서 금융의 역할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기후위기는 규제와 동시에 혁신기술의 출현을 앞당기고 있다. 위기 속 새로운 발전을 도모하는 움직임 속에서 금융권의 투자 역시 빨라지고 있다. 본지는 창간 11주년을 맞아 기후위기 속 국내 금융권의 투자동향과 각사 CEO의 사회적 책임 강화 움직임에 대해 조명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기온 상승과 해수면 상승 같은 기후 문제로 인한 손실이 금융 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 준비은행)
세계 주요 금융기관과 경제학자들은 일찍이 세계 경제의 가장 큰 위험요소로 기후 재앙을 꼽았다. 기후 변화 리스크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기후위기가 임박한 위기로 전환하면서 유럽 중앙은행과 민간은행을 중심으로 환경 개선과 동시에 금융 발전을 추구하는 ‘녹색금융’에 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다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기업에 대한 투자를 제한하고 재생에너지와 신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에 자금을 투입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녹색금융은 탈탄소 경제 체제 이행을 위한 마중물로 거론된다. 이미 많은 기업이 ‘탄소중립’을 선언하며 저탄소 체제로 돌입하고 있는 만큼 그 과정에서 필요한 천문학적 규모의 재원 조달을 위해 시중자금의 흐름을 바꾸는 금융의 영향력이 중요해지고 있다.
◇기후변화는 ‘환경’에서 나아가 ‘경제’문제
기후 변화는 금융 위기를 촉발한다. 세계경제포럼(WEE)는 지난 몇 년간 발생 가능성이 높고 위협적인 리스크로 극심한 기상 이변을 꼽았다.
은행들의 은행이라고 꼽히는 국제결제은행(BIS) 역시 ‘기후변화 시대 중앙은행과 금융안정’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금융 위기가 발생하면 환경파괴로 인한 기후 변화가 원인일 것이라고 강력하게 경고했다. 기후변화가 예상치 못한 시점에 세계 경제에 큰 충격을 주고 금융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면서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 금융기관들이 이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 홍수, 폭설 등 자연재해가 농업, 관광, 에너지, 실물경제 등에 피해를 입히고 이런 피해는 보험, 대출, 투자 등 금융 부문으로 파급되면서 금융위기가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기후변화로 인한 질환이 늘어날 경우 보험금 지급 규모가 늘어난다는 연구도 나왔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미세먼지 농도가 10㎍(마이크로그램) 증가할 때 기관지 입원환자가 23%, 만성폐쇄성폐질환 외래환자는 10%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보험사의 비용이 더 커지는 셈이다. 폭우로 침수된 자동차가 많아지면 자동차 손해보험의 손해율이 높아진다.
◇녹색금융, 탈탄소 체제 전환에 필요한 ‘키플레이어’ 부상
기후 문제에서 금융의 역할 역시 이 같은 논의가 활발하게 개진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기후와 금융은 전혀 다른 영역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발전소 건설, 석유 채굴과 같은 화석 연료 사업은 은행의 ‘프로젝트 파이낸싱’이 존재하지 않으면 성사되기 힘든 분야이다.
은행을 비롯해 보험사와 증권사들은 석탄 화력 발전에 대한 보험과 투자를 시행하고 있다. 한국과 여러 개발도상국에서 개발되는 석탄 발전소 뒤에는 자금줄 역할을 하는 금융기관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환경과 성장이라는 두 가치를 동시에 고려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 바로 ‘녹색금융’이다. 자원과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환경을 개선하는 상품과 서비스 생산에 자금을 공급해 국가가 녹색 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유도하고 저탄소 경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탄소배출 산업의 가치가 급격히 떨어져 금융 안정을 저해하는 일을 대비하는 금융체계를 지칭한다.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금융은 경제 시스템 내에서 금융자원을 적절하게 배분하는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경제가 탄소중립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무리 없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금융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후공시·기후리스크 관리체계 도입…세계 주요국 ‘녹색금융’ 체계화
이미 외국의 주요 국가에서는 녹색금융 체계를 발 빠르게 도입했다. 가장 먼저 나선 건 영국이다. 영국 정부는 2015년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가 열린 이후 녹색금융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2016년 녹색금융 협의체를 만들고 런던 시공사와 영국 정부 재무부간 합작투자가 녹색금융의 시초가 됐다.
이후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공동 출자한 유럽투자은행이 2022년부터 1kWh(킬로와트시)의 에너지를 생산하는 데 250g 미만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기업들에만 투자하겠다고 나섰다. 통상 석탄화력발전은 1kWh 당 최대 900g, 석유는 300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사실상 화석연료 사업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겠다는 것이다.
세계 주요 중앙은행도 기후변화를 통화정책의 고려 대상으로 삼고 있다. 크리스틴리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2019년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화석연료 사업에 대한 대출과 투자를 줄이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또 재생에너지 분야 기업 채권을 대거 매입하는 ‘녹색 양적양화’도 추진 중이다.
대출과 투자 중단에서 나아가 기후 리스크를 재무적으로 관리하는 ‘기후변화재무공시’도 선진국을 중심으로 채택되고 있다. 프랑스는 2015년 ‘녹색성장을 위한 에너지 전환법’을 제정해 은행 건전성평가에 기후변화 이슈 반영을 의무화해야 하고 투자기관 역시 기후 관련 정책 공시를 의무적으로 게재해야 한다.
영국 정부 역시 금융권을 위한 기후변화재무공시 가이드라인을 제정했으며 2021년부터 직장연금 수탁자를 대상으로 기후변화 관련 이슈를 매년 공시하도록 의무화했다.
임대웅 BNZ파트너스 대표이사는 “기후관련 재무정보공시 관련 많은 국제기구들이 녹색금융을 제도화하고 규제화하고 있으면서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존립의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안은정 기자 / bonjour@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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