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속도보다 내재화”…선제적 DX로 AI 기반 다진 현대차

시간 입력 2026-08-12 17:20:04 시간 수정 2026-08-13 06:5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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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 생성형 AI 플랫폼 사용자 3만명 돌파
R&D·제조·서비스 성과 수치로 잇따라 확인
규모 아닌 수준…다음 목표는 ‘피지컬 AI’

12일 양재 본사에서 열린 ‘현대차그룹 AX 성과 발표회(Beyond AI, Transforming the Way We Work)’에서 현대차·기아 ICT담당 진은숙 사장이 발표하고 있다.<사진제공=현대자동차그룹>

현대자동차그룹이 6년 넘게 다져 온 디지털 전환(DX)을 발판으로 인공지능 전환(AX)을 전 사업 영역으로 넓히고 있다. 사내 생성형 AI 플랫폼 사용자는 이미 임직원 상당수에 이르렀고, 연구개발·제조·서비스 현장에선 정량 성과가 잡히기 시작했다. AI를 도입하는 단계를 지나 내재화하는 국면으로 들어섰다는 의미다.

현대차그룹은 12일 서울 서초구 양재 본사에서 미디어를 대상으로 ‘현대차그룹 AX 성과 발표회’를 열고 2019년부터 단계적으로 추진해 온 DX와 AX의 과정, 그리고 향후 방향을 공개했다. 이날 발표의 핵심은 AI 도입 자체가 아니라, AI가 작동할 수 있는 데이터·업무 기반 구축에 있었다.

모빌리티 산업의 경쟁 축은 제조 역량에서 데이터·소프트웨어 역량으로 옮겨가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이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AI가 본격화하기 이전인 2019년부터 DX에 착수했고, 축적한 데이터와 디지털 업무 환경을 토대로 AI를 조직 전반에 내재화하는 단계로 넘어왔다.

진은숙 현대차·기아 ICT담당 사장은 “AI는 분명 중요한 기술이지만 결국 기업이 활용해야 하는 도구”라며 “중요한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AI를 비롯한 새로운 기술을 얼마나 빠르게 이해하고 업무와 사업에 적용해 조직 경쟁력으로 내재화할 수 있는지에 달렸다”고 말했다.

최근 삼성·LG 등 국내 주요 그룹이 일제히 AX를 경영 화두로 내걸면서 관건은 도입 여부가 아니라 활용의 깊이로 옮겨가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내세우는 차별점은 속도가 아닌 내재화다.

성화창 현대차·기아 AX PMO분과 팀장은 “현대차그룹 AX 전략의 가장 큰 차별점은 일하는 방식과 조직문화라고 생각한다”며 “실질적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빠르게 파악하고, 우리만의 역량으로 내재화해 성과를 이어가는 것이 현대차그룹의 원동력이자 차별점”이라고 설명했다.

◇협업 플랫폼과 데이터 파이프라인…AX의 밑그림

현대차그룹의 AX는 앞서 놓인 DX 위에서 출발했다. 출발점은 2018년 정의선 회장이 내건 “IT 기업보다 더 IT 기업 같은 회사가 되겠다”는 목표다. 이후 그룹은 DX의 핵심을 시스템 교체가 아닌 ‘일하는 방식의 혁신’으로 규정하고, 조직 간 정보와 데이터를 자유롭게 공유·활용할 수 있는 환경 구축에 나섰다.

구체적으로 업무 현황과 의사결정을 관리하는 지라(JIRA)와 두레이(Dooray), 문서 공동작성과 지식 공유를 지원하는 컨플루언스(Confluence)를 2022년부터 순차 도입했다. 같은 해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 협업 플랫폼 ‘Microsoft 365’를 업무 시스템에 적용해 글로벌 전 사업장의 협업 방식을 표준화했다. 보안 규정상 외부 협업 도구를 쓰기 어려웠던 자율주행·수소 등 연구개발 조직도 정부 부처의 가이드라인 제정을 거쳐 동일한 환경에 편입됐다.

데이터 영역에선 ‘글로벌 원 데이터 파이프라인’을 통해 연구개발·생산·품질·판매에 흩어져 있던 데이터를 표준화하고 연결했다. 개발 단계의 정보가 생산·품질로, 판매 현장의 데이터가 다시 제품 개발과 공정 개선으로 순환하는 구조다. 이렇게 마련된 협업·데이터 기반이 이후 AI가 학습하고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 자산으로 쌓였다.

12일 ‘현대차그룹 AX 성과 발표회’에서 현대차 제네시스고객경험팀 장영석 책임매니저(왼쪽부터), 현대차·기아 ICT담당 진은숙 사장, 정보보안2실 이상홍 상무, 웹프론트엔드개발팀 서창윤 책임매니저가 발표하고 있다.<사진제공=현대자동차그룹>

◇H Chat Pro 3만명…누구나 AI를 쓰는 단계로

AX 확산의 중심에는 사내 생성형 AI 플랫폼 ‘에이치 챗 프로(H Chat Pro)’가 있다. 보안이 확보된 환경에서 챗지피티, 제미나이, 클로드 등 외부 생성형 AI 모델을 임직원이 선택해 쓸 수 있도록 한 전용 플랫폼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부터 이 플랫폼을 특정 조직이나 일부 인력에 한정하지 않고 일반 임직원 전체에 개방했다. 그 결과 지난 7월 기준 사용자는 3만명을 넘어섰다. 현대차·기아 일반·연구직의 약 80%에 해당하는 규모다. 임직원들은 문서 작성과 정보 탐색, 데이터 분석, 코드 개발 등에 생성형 AI를 일상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개발자가 아닌 직원이 업무에 필요한 AI 에이전트를 직접 만들어 쓰는 사례도 늘고 있다.

조직 문화도 바뀌고 있다. 그룹은 경영진이 직접 참여하는 AI 교육과 사내 커뮤니티·협의체를 운영하며 임직원의 활용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이날 류석문 현대오토에버 대표가 진행하는 ‘바이브 코딩(Vibe Coding)’ 실습이 함께 열렸는데, 코드를 일일이 작성하는 대신 자연어로 원하는 결과를 설명하고 AI와 협업해 결과물을 만드는 방식이다. 정의선 회장을 비롯한 주요 경영진이 앞서 받았던 교육과 동일한 내용으로 구성됐다.

12일 ‘현대차그룹 AX 성과 발표회’에서 현대차·기아 AX PMO분과 성화창 팀장이 발표하고 있다.<사진제공=현대자동차그룹>

◇R&D부터 고객 채널까지…숫자로 확인된 AI 성과

이날 발표회에서는 부문별로 AI를 적용해 생산성과 비용 효율을 끌어올린 사례가 공개됐다. 주목할 부분은 시범 운영에 그치지 않고 실제 현장에 적용돼 수치로 확인되는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연구개발 부문에선 지난해 말 남양기술연구소에 도입된 ‘충돌안전 AI 어시스턴트’가 대표 사례로 꼽혔다. 여러 시스템에 분산돼 있던 과거 충돌 시험 결과와 이미지, 해석 자료를 통합 검색하고 유사 사례를 비교·분석하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이다. 그간 엔지니어의 경험과 노하우에 의존하던 자료 탐색이 데이터 기반으로 바뀌면서 관련 사례 탐색과 분석에 걸리던 시간이 약 90% 단축됐다. 확보된 시간은 결과 해석과 설계 개선, 시험 전략 수립 같은 고부가가치 업무로 옮겨갔다.

제조 현장의 성과는 비용 절감으로 이어졌다. 차량 식별번호(VIN)를 실시간으로 대조·검증하는 비전 AI 기반 ‘AI 자동화 인식 서비스’는 국내와 미국·유럽·인도·아시아태평양 등 글로벌 생산 거점 약 70개소에 적용돼 연간 52억4000만원의 비용 절감 효과를 내고 있다. 강화학습을 접목해 대차 이동 경로를 자동 최적화하는 ‘대차 정렬 최적화 기술’은 불필요한 생산 중단 시간을 약 86% 줄였다. 여기에 현업 엔지니어가 직접 AI 에이전트를 만들고 검증·운영할 수 있는 제조 특화 플랫폼 ‘E-FOREST: POLARIS(이포레스트: 폴라리스)’를 구축해 개인의 경험과 노하우를 조직의 디지털 자산으로 전환하고 있다.

서비스와 고객 채널에서도 성과가 확인됐다. 해외 정비 현장에 적용된 LLM 기반 ‘정비 지원 AI 서비스’는 오류 코드나 증상을 자연어로 입력하면 관련 매뉴얼과 과거 기록을 종합 분석해 진단 결과를 제시한다. 이를 통해 정비 대응 시간은 약 42% 단축됐다. 고객이 모바일 앱에 남긴 리뷰를 AI가 분석·분류하고 답변 초안까지 작성하는 ‘고객 리뷰 대응 자동화 솔루션’은 리뷰 1건당 처리 시간을 평균 35분에서 5분 수준으로 줄였다. 현재 전체 리뷰의 85% 이상이 AI 기반으로 처리되고 있으며, 오는 9월부터는 리뷰 대응 프로세스 전체가 자동화될 예정이다.

◇“많이가 아니라 제대로” …다음 목표는 ‘피지컬 AI’

현대차그룹은 이번 성과를 AX의 완결이 아닌 다음 단계로의 이행으로 규정했다. AI 활용의 목표를 ‘규모’가 아닌 ‘수준’에 두고, 이를 물리 세계로 확장하겠다는 것이다.

진은숙 사장은 “현대차그룹의 목표는 AI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업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AI를 가장 제대로 활용하는 기업이 되는 것”이라며 “새로운 기술을 가장 빠르게 배우고 현장에 적용해 고객 가치와 사업 성과로 연결하는 역량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이 AX 성과를 피지컬 AI의 발판으로 규정하는 근거도 여기에 있다. 박근한 현대차·기아 머신러닝랩 상무는 “피지컬 AI를 비롯한 모든 AI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 가능성”이라며 “데이터를 확보해 AI 모델을 학습시키고 서비스에 적용한 뒤 그 서비스에서 다시 데이터를 얻어 시스템을 발전시키는 과정이 끊임없이 돌아가야 한다”고 전했다.

진은숙 사장은 “AX를 통해 축적한 데이터와 운영 경험, 실행 역량은 다가올 피지컬 AI 시대를 준비하는 가장 강력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김병훈 기자 / andrew45@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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