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위기 해법은] ⑤SK, ‘시나리오 플래닝’ 강화한다…반도체 위기 타개, 실적 반등

시간 입력 2023-07-28 07:00:01 시간 수정 2023-07-27 17: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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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한파’에 그룹 핵심 사업 적자 기조 심화
미·중 패권 경쟁 여파…SK 중국 사업에 ‘적신호’
위기 극복 위해 시나리오 플래닝 경영 고도화
‘AI’ 특수 대응…HBM·DDR5 등 앞세워 실적 개선

서울 종로구 SK 서린빌딩. <사진=SK>

“지금 우리는 과거 경영 방식으로는 살아남기 어려운 글로벌 전환기에 살고 있다. 미·중 패권 경쟁과 이코노믹 다운턴(하강 국면) 등 예기치 못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시나리오 플래닝’ 경영을 고도화해 나가야 한다.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시나리오에 맞춰 조직과 자산, 설비 투자, 운영 비용 등을 신속하게 바꿀 수 있는 경영 체계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최근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전 세계에 불어 닥친 글로벌 복합 위기를 이겨내고, 경기 침체에 따른 실적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그룹 전체에 시나리오 플래닝 경영 실천을 주문하고 나섰다. 축구 선수들이 세트 플레이를 반복 연습하듯, SK그룹도 다양한 상황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경영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최 회장이 직접 목소리를 높여가며 그룹의 쇄신을 당부하고 나선 것은 현재 SK가 처한 상황 때문이다. SK그룹 계열사 대부분이 코로나 팬데믹 이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특히 SK가 미래 먹거리로 점찍은 ‘BBC(배터리·바이오·반도체)’ 중 하나인 반도체는 수조원대의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SK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SK하이닉스가 흔들리게 되면 그룹 전체가 위태로워질 지도 모를 일이다. 당장 SK는 올 하반기 반도체 한파를 돌파할 해법은 물론이고, 미·중 갈등, 공급망 위기 등 대외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한 탈출구를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다.

◇최태원, SK그룹 ‘확대경영회의’ 주재…그룹 핵심 SK하이닉스 위기 점검

SK는 지난달 15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에서 최 회장 주재로 상반기 최대 전략 회의인 ‘2023 확대경영회의’를 개최했다. 확대경영회의는 매년 8월 이천포럼, 10월 CEO(최고경영자) 세미나와 더불어 그룹 최고 경영진이 모여 경영 전략을 논의하는 중요 연례 행사다.

이날 확대경영회의에는 최 회장을 비롯해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장동현 SK㈜ 부회장,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 추형욱 SK E&S 사장, 지동섭 SK온 사장, 유영상 SK텔레콤 사장 등 그룹 내 핵심 수뇌부 30여 명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최 회장은 그룹 최고 경영진과 함께 ‘반도체 한파’의 직격탄을 맞은 SK하이닉스가 당면한 대내외 위기를 살피고, 이를 타개할 방안에 대해 중점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SK하이닉스의 경영 상황은 매우 좋지 않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연결 재무제표 기준 올 2분기 SK하이닉스의 매출액은 7조3059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13조8110억원 대비 47.1% 감소한 수치다.

영업이익은 아예 적자전환했다. 올 2분기 영업적자 규모는 2조8821억원으로, 지난해 4조1926억원의 흑자에서 큰 폭으로 감소했다. 지난해 4분기 이후 3개 분기 연속으로 대규모의 적자 기조를 이어 갔다.

반도체 업황 부진으로 메모리 출하량이 급감한 여파가 최근까지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이에 SK하이닉스는 물론 삼성전자, 미국 마이크론 등 주요 반도체 업체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메모리 감산에 돌입했다.

반도체 감산 효과에 제품 가격 하락세는 점차 둔화하기 시작했다. 한때는 잠시 반등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메모리 반도체 가격은 SK하이닉스의 실적에 변화를 줄 수 있을 만큼 의미 있는 오름세를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패권을 둘러싼 미·중 간 갈등도 SK하이닉스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미국은 앞서 지난해 10월 주요 반도체 장비 업체들이 중국에 첨단 장비를 수출하지 못하도록 통제에 나선 바 있다. 당시 미 정부는 중국이 미국의 첨단 장비를 통해 반도체를 제조하고, 이를 군사적 목적으로 활용한다는 이유를 들어 강도 높은 대중 수출 규제를 단행했다.

해당 조치는 △18nm(1nm는 10억분의 1m)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 플래시 △핀펫(FinFET) 기술을 사용한 로직 칩(16nm 내지 14nm) 등 첨단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장비·기술을 중국에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로 인해 고도화된 반도체를 생산 중인 SK하이닉스 역시 반도체 제조 장비 반입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문제는 SK의 중국 생산 의존도가 상당히 높다는 점이다. 현재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에서 D램 메모리 반도체 생산 시설을 가동 중이다. 인텔로부터 인수한 다롄 낸드공장에서도 제품을 양산하고 있다. 중국공장이 차지하는 생산 비중은 D램의 경우 전체의 40%, 낸드는 20%에 달한다.

익명을 요구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는 중국 반도체 사업을 당장 접을 수 없는 상황이다”며 “이에 미국의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 조치를 유예하거나 아예 적용받지 않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시급한 시점이다”고 전했다.

SK하이닉스 이천공장. <사진=SK하이닉스>

◇최태원 ‘파이낸셜 스토리’ 계승…SK, 글로벌 반도체 수요 변화 발맞춰 신속·탄력 대응 전략 세워

최 회장은 ‘파이낸셜 스토리’를 통해 SK하이닉스가 직면한 어려운 대내외 환경을 돌파해 나가야 한다고 당부하고 나섰다.

파이낸셜 스토리는 최 회장이 2020년부터 강조해 온 경영 비전이다. 자본 시장을 의미하는 ‘파이낸셜’과 기업의 생존 전략에 대한 ‘스토리’를 합친 단어로, 매출과 영업이익 등 기존 재무 성과 뿐만 아니라 시장이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는 목표와 구체적 실행 계획을 담은 성장 스토리를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고객, 투자자, 시장 등 이해 관계자들의 신뢰와 공감을 이끌어내 성장을 가속화하겠다는 복안이다.

최 회장은 “기업을 둘러싼 국내외 경영 환경은 어느 날 갑자기 변하는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사인포스트(징후)가 나타나면서 서서히 변한다”며 “이같은 징후들이 나타날 때마다 즉각적이고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SK 구성원들이 충분히 훈련돼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의 뜻에 따라 SK는 올 하반기 글로벌 반도체 수요 변화에 발맞춰 신속하고 탄력적으로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먼저 SK하이닉스는 낸드 감산 규모를 더욱 확대키로 했다. D램에 비해 낸드의 재고 감소 속도가 더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4분기부터 레거시(구형) 및 저수익 제품 위주로 감산에 돌입한 SK하이닉스는 낸드를 중심으로 5~10%가량 추가 감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김우현 SK하이닉스 CFO(최고재무책임자) 부사장은 26일 실적빌표 콘퍼런스콜에서 “낸드는 AI 서버 수요 확대에 대한 영향이 D램보다 제한적이다”며 “메모리 업계 전반적으로 낸드 재고 수준이 높은 탓에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에 낸드 감산 규모를 확대해 재고 정상화 시기를 앞당기겠다”며 “올해 전사 투자도 지난해 대비 50% 이상 축소한다는 기조도 변함없이 이어갈 것이다”고 덧붙였다.

SK하이닉스 반도체 생산 현장. <사진=SK하이닉스>

SK는 최근 인공지능(AI) 열풍에 힘입어 HBM(고대역폭메모리) 등 AI 서버용 메모리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는 데 주목했다. SK하이닉스는 글로벌 HBM 시장에서 확보한 경쟁 우위를 바탕으로 미래 수요를 적극 확보해 나가기로 했다.

현재 SK하이닉스는 글로벌 HBM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SK하이닉스의 글로벌 HBM 시장 점유율은 50%에 달한다.

지난해 6월 세계 최고 성능 D램인 HBM3를 세계 최초로 양산하며 글로벌 시장을 선점한데 이어 내년 상반기에는 HBM3E 양산을 목표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박명수 SK하이닉스 부사장은 지난 4월 열린 올 1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올 하반기 8Gbps HBM3E 제품 샘플을 준비하고, 내년 상반기부터 양산할 예정이다”고 밝힌 바 있다.

SK하이닉스 HBM3 24GB. <사진=SK하이닉스>

또한 SK하이닉스는 고성능 D램인 DDR5, LPDDR5와 176단 낸드 기반 SSD 등의 판매도 꾸준히 늘린다는 방침이다. 이 외에도 올해 10나노급 5세대(1b) D램과 238단 낸드의 초기 양산 수율과 품질을 향상시켜 다가올 업턴(상승 국면) 때 메모리 반도체 양산 비중을 늘리겠다고 강조했다.

김 부사장은 “그동안 경영 효율화를 통해 확보한 재원으로 향후 시장 성장을 주도할 고용량 DDR5와 HBM3의 생산 능력을 확대하기 위한 투자는 지속하겠다”며 “SK하이닉스는 고성능 제품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실적을 개선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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