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K TV 선봉장’ 삼성전자, 유럽 환경 규제에 수출길 ‘빨간불’

시간 입력 2022-12-15 17:01:31 시간 수정 2022-12-15 17:01:31
  • 페이스북
  • 트위치
  • 카카오
  • 링크복사

EU, 내년 3월 EEI 강화 규제 시행
삼성 8K 라인업, 강화된 기준 충족 못 해
업계 “유럽 판매 가능 8K TV 한 대도 없을 것”

글로벌 TV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근심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환경 규제 강화 방침을 유지하기로 결정하면서 당장 내년부터 8K TV 판매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15일 이탈리아 IT 매체 DDay(디지털데이) 등 외신에 따르면 EU는 27개 회원국에서 판매되는 TV의 에너지효율지수(EEI) 강화 규제를 내년 3월 예정대로 시행할 예정이다.

EU 집행위원회는 이미 설정된 TV 에너지 효율 기준의 새 한도를 검토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DDay는 “이달 25일까지 해당 환경 규제의 개정 여지는 남아 있는 상황”이라면서도 “그러나 EU 집행위원회는 기존 계획대로 내년 3월 1일부터 강화된 환경 규제를 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EU는 기존 4K TV에 적용하던 에너지 효율 기준을 8K TV 등 프리미엄 제품에도 확대 적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 새 규정을 내년 3월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에너지효율지수(EEI)가 0.9보다 높을 경우 EU에서의 TV 판매는 원천 금지된다.

이에 TV 업체들은 유럽에서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 지금보다 더 낮은 최대 전력 소비 기준을 맞춰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문제는 삼성의 8K TV가 한층 강화된 에너지 효율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8K TV는 그동안 환경 규제를 적용받지 않았다. 별도의 에너지 효율 기준이 없었던 까닭이다. 이에 글로벌 TV 업체들은 환경 규제를 피해 프리미엄 제품들을 판매해 왔다.

그러나 내년 3월부터는 에너지 효율 기준이 8K TV에도 확대 적용되면서, EEI를 0.9 이하로 낮춰야만 유럽 시장에서의 판매가 가능하게 됐다. 8K UHD(해상도 7680x4320) TV는 기존 4K UHD(3840×2160) TV와 비교해 해상도가 4배 더 높은 초고해상도 TV다. 화질이 매우 선명하게 구현되지만 전력 소비량 또한 비례해 증가한다.

삼성전자 Neo OLED 8K TV. <사진=삼성전자>

EU의 이 같은 조치에 TV 업계는 강력 항의에 나섰다. 삼성전자가 주도하는 ‘8K 연합’은 EU의 환경 규제 강화와 관련해 성명을 내고 “지금 무언가 바뀌지 않으면 내년 3월 시행되는 환경 규제로 새 산업 자체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8K TV의 전력 소비 제한이 너무 낮아 어떤 장치도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미국의 IT 매체 디지털트렌드도 “현재 제조되는 8K TV는 EU가 제안한 기준을 통과할 정도의 낮은 EEI를 보유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일부 65인치 8K TV는 기준을 조금 넘으나 대다수 프리미엄 제품들은 기준을 통과하려면 현 EEI를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TV 업계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EU는 강화된 환경 규제를 밀어붙인다는 입장이다.

EU 집행위원회는 DDay와의 인터뷰에서 “위원회는 TV 업체들이 강화된 TV EEI를 충족하는 8K TV를 제조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정보를 갖고 있다”며 “TV 업체들이 기술 또는 소프트웨어(SW)를 개선해 소비 전력을 줄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EU발(發) 악재와 직면하게 된 삼성전자는 당장 8K TV 판매에 적신호가 켜졌다. 환경 규제가 강화되는 유럽 시장은 전 세계에서 8K TV가 가장 많이 팔리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전자 점유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시장조사업체 DDSC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8K TV 출하량 지역별 비중은 서유럽이 31%로 가장 높았다. 서유럽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8K TV 판매량은 LG전자, 중국 TCL, 일본 소니 등을 제치고 수년째 1위를 달리고 있다. 올해 상반기 서유럽을 포함한 글로벌 8K TV 시장 점유율을 살펴보더라도 삼성전자가 63.1%로 압도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EU의 TV 에너지 효율 기준 강화 조치는 8K TV 판매 확대를 늘리려는 삼성의 발목을 잡을 뿐만 아니라 판매량을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이러한 우려와 관련해 EU 집행위원회는 “내년 3월 시행을 앞둔 환경 규제가 계획대로 추진될 것”이라며 “새로운 환경 규제가 8K TV를 유럽 시장에서 몰아내지 않을 것이다”고 일축했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사진=연합뉴스>

8K TV의 성장세가 꺾인 것 아니냐는 부정적인 시각도 삼성전자에게 큰 악재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는 전 세계 8K TV 보유 가구가 지난해 80만가구에서 2026년 270만가구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매년 약 38만가구씩 늘어나는 셈이다. 다만 전 세계 연간 TV 출하량이 약 2억대에 달한다는 것을 감안할 때 연간 8K TV의 보급량은 0.2%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옴디아에 따르면 올 1분기 8K TV 출하량은 8만5300만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2.0% 감소했고, 직전 분기인 지난해 4분기에 비해선 13.0%나 줄었다. 보통 신형 TV 출하량이 꾸준히 증가세를 나타내는 것과 달리 8K TV는 이미 정점을 찍고 내리막을 탔다는 게 옴디아의 분석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8K TV가 소비자 설득에 실패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8K 콘텐츠 부족 등 소비자가 8K TV를 구매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8K 영상 장비 확산 없이는 8K TV 시장이 당장 커지긴 어렵다”며 “일례로 4K TV도 소니의 4K 영상 장비가 본격 보급되면서 확장됐다”고 전했다.

EU의 강화된 환경 규제가 시행되기까지 3개월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삼성전자 등 국내 TV 업체들은 대책 마련에 비상이 걸렸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등 국내 TV 업체들은 진퇴양난에 처해 있다”며 “EU의 에너지 효율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선 8K TV의 휘도를 비롯한 여러 성능을 낮춰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제품의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유럽발 규제에 이어 암울한 전망까지 닥치면서 8K TV 시장이 성장 동력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며 “전 세계 TV 제조사 모두 영향을 받겠지만, 특히 8K 라인업이 가장 많은 삼성전자는 TV 사업 전략 구상에 고민이 깊어졌다”고 우려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