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가중치 중심 규제, 저위험 자산 쏠림 심화 가능성 지적
과도한 위험 억제, 위험자본 공급 기능 자체 약화 가능성↑
20일 서울 중구 소재의 은행회관에서 한국금융연구원 주최로 열린 ‘생산적 금융과 은행 건전성 규제’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이지원 기자>
금융당국과 학계가 생산적 금융 확대와 은행 건전성 규제 간 균형점을 모색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글로벌 건전성 규제인 바젤Ⅲ(Basel III)가 강화되는 가운데 은행의 생산적 금융 기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20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한국금융연구원 주최로 열린 ‘생산적 금융과 은행 건전성 규제’ 세미나에서 김석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바젤Ⅲ 최종안처럼 위험가중치를 세부적으로 규정할 경우 은행이 위험가중치가 낮은 자산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면서 생산적 금융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특히 기업대출보다 주택담보대출 등 저위험 자산 선호가 강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 연구위원은 “생산적 역할을 수행하는 기업 익스포저는 일반적으로 위험가중치가 높다”며 “과도한 위험 억제는 결국 위험자본 공급 기능 자체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강화된 자본규제가 은행 건전성을 높였지만, 동시에 위험가중자산(RWA)을 줄이기 위한 안전자산 중심 운용을 확대시켰다고 지적했다.
은행 건전성 규제는 1988년 바젤Ⅰ 도입으로 시작됐다. 당시 규제는 은행 자산을 네 가지 위험가중치로만 분류했다. 구조가 단순해 적용은 쉬웠지만, 획일적인 기준이 은행별 실제 리스크 차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를 보완해 2004년 도입된 바젤Ⅱ는 △최소자본요구 △감독당국의 점검 △시장규율 등 세 가지 축을 포함했다. 위험가중치 산출 방식도 표준방법(SA)과 내부등급법(IRB)으로 이원화됐다.
외부 신용평가기관의 등급을 활용해 바젤Ⅰ보다 세분화된 위험가중치를 적용한 데 더해, 내부등급법을 통해 감독당국 승인 아래 은행이 자체 과거 데이터를 바탕으로 부도율 등 리스크 요소를 직접 추정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기존 규제의 허점을 드러냈다. 미국 5대 투자은행은 위기 직전까지 위험가중자본비율은 양호했지만 레버리지비율은 이미 꾸준히 악화되고 있었다. 위험가중치에만 의존한 규제가 실제 위험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이에 2010년 도입된 바젤Ⅲ는 기존 위험가중자본비율에 더해 레버리지비율을 추가해 이중 안전망을 구축했다. 자기자본비율 기준도 대폭 상향됐다.
바젤Ⅲ 도입 이후에도 문제는 남았다. 내부등급법을 허용하자 은행들이 자의적으로 리스크를 낮게 평가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BIS의 2016년 연구에 따르면 은행별 실제 부도율 대비 예상 부도율은 최대 0.5~1.5배까지 차이를 보였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마련된 최종안에서는 정교화된 표준방법을 사실상 기본 기준으로 적용했으며, 표준방법으로 산출한 위험가중자산(RWA) 대비 내부등급법 결과의 하한선인 ‘아웃풋 플로어(최저하한 72.5%)’도 도입했다.
하지만 건전성 규제가 강화될수록 은행들은 위험가중치가 낮은 자산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는 방식으로 대응해 왔다. 이에 따라 생산적 금융을 위축시킨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국가별 규제 차별화 사례를 보면 영국은 주식 위험가중치 규제를 세분화해 업력 5년 이하 기업 등에만 400% 위험가중치를 적용하고 있다. 일본 역시 구조적 외환포지션 규제에서 금융기관 자율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운영 중이다.
주택담보대출 규제와 관련해서는 국내외 주요국이 위험가중치 하한을 높이는 추세라는 점도 언급됐다. 김 연구위원은 “주택가격 상승과 대출 확대가 반복되는 증폭 사이클을 막기 위한 목적”이라며 “스웨덴·노르웨이·홍콩 등도 유사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스위스 사례를 언급하며 특정 자산군에만 추가 자본규제를 적용하는 ‘부문별 경기대응완충자본’ 제도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김 연구위원은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 증가 속도가 빠른 만큼 관련 규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연구위원은 은행 건전성 제고와 자원배분 효율성이라는 두 가치가 양립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 마련이 중요하다고도 강조했다. 글로벌 규제 체계와의 정합성을 유지하면서도 국내 산업 구조와 성장 전략을 반영한 규제 체계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또 바젤Ⅲ 최종안의 표준방법 강화가 새로운 시스템 리스크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도 이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저위험 자산으로 분류됐던 미국 모기지담보증권(MBS) 일부에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했던 사례를 들며 위험가중치 자체도 완벽한 기준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김 연구위원은 “금융의 역할 중 하나가 위험자본을 공급하는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과도한 위험 억제는 위험 추구 행위 자체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다”며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에서 표준방법이 인식하지 못했던 시스템 리스크 누적 현상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요국 규제 동향과 국내 경제 여건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은행 건전성 제고와 자원배분 효율성이라는 두 가치가 양립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이지원 기자 / easy910@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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