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보이스피싱 배상까지…당국발 비용리스크에 밸류업 동력 ‘흔들’

시간 입력 2025-08-29 17:21:00 시간 수정 2025-08-29 17: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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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과실 배상 책임 법제화…금융권 부담 가중
LTV 담합·ELS 과징금까지…은행권이 비용 떠안고

정부가 은행 등 금융회사가 고의나 과실이 없더라도 보이스피싱 피해액을 배상하도록 하는 ‘무과실 배상 책임’을 법제화하기로 했다. 일정 범위 내에서 금융회사가 배상하는 구조가 마련되면, 더 폭넓은 피해구제와 함께 금융권의 선제적 대응을 촉진할 수 있다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다만 은행권에서는 이미 각종 정책·제도 변화에 따른 비용 부담이 누적된 상황이어서 추가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주주환원 확대를 내세운 밸류업 전략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보이스피싱 태스크포스 회의에서 금융회사의 ‘무과실 배상 책임’을 포함한 보이스피싱 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지금까지는 비밀번호 위·변조 등 일부 사고에만 제한적으로 금융권 배상이 이뤄졌으나, 앞으로는 피해자가 사기범에게 속아 본인이 직접 이체한 경우에도 일정 범위에서 금융회사가 피해액을 보상하게 된다. 이에 따라 금융사는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 고도화, 전담인력 확충 등 대응역량을 강화해야 하며, 당국은 연내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문제는 은행권이 이미 정부 주도의 각종 정책과 규제 대응 비용을 떠안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공정거래위원회의 LTV 담합 조사, 국민성장펀드 출자, 장기연체자 채무탕감을 위한 배드뱅크(부실채권 처리 전담법인) 설립, 세제개편안에 따른 교육세 인상 등이 꼽힌다.

여기에 금융당국의 제재절차가 진행 중인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 사태도 뇌관으로 남아 있다. 불완전판매가 확인된 규모가 크고 피해자 수가 광범위해 예상 과징금 규모는 수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노조도 ELS 과징금에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노조는 “투자원금 전체를 기준으로 과징금을 부과하면, 이미 배상 비용을 부담한 은행에게 또 한 번 비용을 씌우는 꼴”이라며 “실제 피해 규모보다 훨씬 큰 금액을 물리면 시장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은 깨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정부발 비용 리스크가 연쇄적으로 불어나면서 은행의 재무건전성뿐 아니라 주주환원 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금융지주들은 정부가 추진하는 ‘밸류업(Value-up)’ 정책에 호응해 배당 확대와 자사주 매입을 핵심 과제로 제시해 왔다.

그러나 추가적인 비용 부담이 현실화하면 이러한 계획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교육세 인상과 배드뱅크 출자금, ELS 과징금이 동시에 들이닥칠 경우, 금융지주가 약속한 30%대 배당성향 목표 달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지주가 주주환원의 기준이 되는 보통주자본비율(CET1)을 13% 이상 유지하려면 위험가중자산(RWA)을 낮춰야 한다.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지주의 RWA는 지난 2021년 말 971조8768억원에서 지난해 말 1201조8637억원으로 23.7% 증가했다.

자사주 매입 역시 재원 확보가 어려워져 계획 규모가 축소되거나 시점이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곧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밸류업 프로그램의 실행력이 약화하고, 결과적으로 주가 개선 효과와 주주 기대치도 동시에 반감될 수 있다는 의미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주주환원 확대는 금융당국이 강조하는 밸류업의 핵심축으로 예상치 못한 비용 리스크가 줄줄이 발생하면 현실적으로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며 “정부 정책의 필요성과 명분은 이해하지만, 은행의 안정적 이익 창출과 주주가치 제고라는 본래의 역할과 균형점을 찾는 논의가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김기율 기자 / hkps099@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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