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인재양성 비상] ③ “전장 등 신기술 인재 하늘의 별따기”…소부장 업계, 인재발굴 정책 전무

시간 입력 2023-04-28 07:00:02 시간 수정 2023-04-28 08: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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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전략 산업과 각 산업별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분야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진 가운데 미국, 중국 등 주요국들이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한 기술 패권 경쟁에 사활을 걸고 있다. 세계 각국 간 경쟁이 격화하면서 그간 글로벌 시장을 선도해 온 우리나라 역시 차세대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정작 산업 현장에서는 첨단 기술 개발을 위한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계속되고 있다. 이에 CEO스코어데일리는 미래 디지털 산업의 핵심인 반도체를 비롯해 첨단 디지털 산업을 이끌어나갈 인재 양성 실태를 살펴보고, 글로벌 경쟁력을 이어가기 위한 인재 발굴 방안 등을 3회에 걸쳐 조명한다. <편집자주>

반도체, 디스플레이를 비롯한 첨단산업을 둘러싼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제조업의 근간이 되는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산업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정부는 국내 소부장 기업의 생산역량을 제고하고, 더 나아가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파트너로 부상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전략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국내 소부장 산업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왔던 인력부족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대기업의 경우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자금을 투입해 계약학과를 운용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약한 소부장 중견중소 기업들은 이마저도 어려운 실정이다. 소부장 산업의 기술 경쟁력을 키우는데 앞서, 기술 인재를 확보할 수 있는 명확한 정책방안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 인력난 덮친 반도체·디스플레이…중소·중견 소부장 기업에 ‘직격타’

산업통상자원부의 ‘소재·부품·장비 전문기업 기술인력 수급동향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 반도체 소부장 산업 기술 인력은 2만1821명, 디스플레이 소부장 산업 기술 인력은 7857명으로 나타났다.

이 중 첨단 기술 개발의 핵심 인력인 석·박사급 인력은 2021년 기준 반도체 부문 3448명(석사 2851명, 박사 597명), 디스플레이 부문은 1051명(석사 922명, 박사 129명)에 그쳤다. 각 산업에 종사하는 석·박사급 인력이 전체의 15% 안팎에 불과한 것이다.

국내 소부장 산업의 전체 인력 부족도 심각한 문제점으로 떠올랐다. 지난 2021년  기준으로, 반도체 소부장 산업 분야에서 부족한 기술인력은 615명, 디스플레이 분야의 부족인원은 193명으로 각각 2.7%, 2.4%의 부족률을 기록했다. 이는 소부장 외 기타 분야를 포함한 전체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의 부족률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진행한 ‘산업기술인력 수급실태 조사’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의 기술인력 부족률은 각각 1.7%, 0.6%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소부장 업계의 기술인력 부족이 인력 수급의 불균형으로부터 기인된 것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를 생산하는 대기업이 앞다퉈 인재 영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반면에,  소부장 분야의 인재 양성정책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업계에서는 중소·중견 기업 위주인 소부장 산업을 위한 별도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내 대표 반도체, 디스플레이 기업인 삼성, SK, LG는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들여 유수 대학과 함께 계약학과를 운영하고 있다. 계약학과는 대학과 기업이 계약을 맺고 기업이 요구하는 특정 전공 인력을 양성하는 과정으로, 졸업 후 채용 등 각종 혜택을 전제로 입학생을 모집한다.

현재 삼성전자는 7개 대학에 반도체 계약학과를 설립했고, SK하이닉스는 고려대를 시작으로 서강대, 한양대 등과 손을 잡았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도 연세대, 카이스트 등과 함께 채용 연계형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그러나이들 대기업에 비해 자금력이 부족한 국내 소부장 업체로서는 계약학과 운영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실제 삼성, LG 등 주요 기업이 설립한 계약학과에 비해 소부장 관련 계약학과는 미비한 실정이다.

앞서 지난 2020년, 중소벤처기업부는 소부장 중소기업 근로자에게 석사 학위를 제공하는 방식의 ‘중소기업 계약학과’를 명지대와 인하대 두 곳에 개설했으나 모집 정원은 각각 20명에 불과했다. 지난해 소부장 기술인력 부족인원이 800명에 육박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이에 따라, 지난해 국내 소부장 기업들은 정부와 함께 컨소시엄 형태로 소부장 관련 계약학과를 신설하는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대기업들이 대학 내 관련 학과를 만들고 졸업생을 데려가는 것처럼, 소부장 기업들도 공동으로 자금을 지원해 소부장 계약학과를 만들어 인력난을 해소하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중소·중견 기업의 인력난 해소를 위해 10개의 소부장 계약학과를 설립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기존 계약학과와 달리 민관이 합동으로 운영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실제 개설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 핵심 기술인력 확보 총력전…LG이노텍·삼성전기, 대학에 인재 양성 과정 개설

핵심 기술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소재·부품 업계의 대표 주자인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은 직접 인재 양성에 앞장서고 있다.

카메라모듈 사업에 주력하고 있는 LG이노텍은 연세대와 손을 잡고 첨단 부품 관련 인재 확보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 2013년부터 연세대에 광과학공학과 석사 교육과정을 운영 중이다. 졸업 이후에는 LG이노텍의 R&D 연구원으로 입사하게 된다.

삼성전기 장덕현 사장(왼쪽)과 포항공대 김무환 총장(오른쪽)이 업무협력 협약식 후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기>
삼성전기 장덕현 사장(왼쪽)과 포항공대 김무환 총장(오른쪽)이 업무협력 협약식 후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기>

삼성전기도 지난해 11월 포항공대와 소재·부품 인재 양성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채용 연계한 전문 인력 양성 과정을 신설했다.

협약 체결에 따라, 삼성전기는 소재·부품 관련 미래 기술 테마를 포항공대에 제안하고, 포항공대 신소재공학과 등 관련 학과에서는 과제 연구 및 맞춤형 교육 과정을 운영한다. 양성과정에는 포항공대 14명의 교수가 참여한다.

포항공대 소재 부품 관련 분야 석·박사 과정 대학원생 가운데 선발된 인원들은 장학금 및 학자금을 지원받는다. 졸업 이후에는 삼성전기에 입사하게 된다.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은 “소재·부품 산업의 기술 경쟁이 갈수록 첨예해지면서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문 인재를 양성하고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포항공대와의 협약은 삼성전기의 기술 경쟁력은 물론, 한국 소재·부품 산업의 뿌리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슈퍼 을’ 글로벌 소부장 기업 키운다…전장 등 신사업 기술인력 확보 방안 제시해야

지난 18일 정부는 ‘제11차 소부장 경쟁력강화위원회’를 열고 소재‧부품‧장비 핵심전략기술을 확대 지원해 ‘슈퍼 을’로 불릴 만한 글로벌 소부장 기업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간 소부장 기업의 자립과 다변화를 위한 노력이 전개됐다면, 첨단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글로벌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을 새롭게 수립하겠다는 복안이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우리의 소부장 산업이 2001년 부품소재특별법 제정, 2019년 일본 수출규제 대응의 두 번째 변곡점을 지나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경제 안보 경쟁이라는 세 번째 변곡점을 맞는 시점”이라며 “글로벌 공급망 ‘새판짜기’를 우리 소부장 산업의 글로벌 진출 기회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4월 18일 오후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소재·부품·장비 경쟁력강화위원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산업통상자원부>
정부가 4월 18일 오후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소재·부품·장비 경쟁력강화위원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산업통상자원부>

정부는 ‘소재·부품·장비 글로벌화 전략’을 통해 △기술 혁신 △생산 혁신 △수출 확대 등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지원 방안을 마련했다. 핵심은 글로벌 소부장 혁신 허브 조성이다. 이를 위해 반도체 등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를 6월에 신규 지정하고, 소부장 특화단지도 7월에 추가 지정할 계획이다. 아울러 국내외 기술·시장전문가와 함께 기술․시장 성장 로드맵을 수립하고 이에 따라 원천-상용화기술을 통합한 7년 이상의 장기 연구개발(R&D)도 지원한다.

그러나 이번 정부 대책에도 소부장 업체에 투입될 전문 인재 양성 방안은 제시되지 않았다. 최첨단 기술 개발을 위한 R&D에만 대규모 지원이 계획됐을 뿐 산업 현장에서 기술 개발을 수행하는 인재 육성 계획은 전무하다. 

당장, 소부장 업계에서는 “사람 뽑는 게 가장 힘들다”고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소부장 업체 대표는 “산업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역량을 갖춘 인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며 “특히 전장 등 미래 산업분야에서 개발능력을 갖춘 인재를 찾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정부 지원이 부족한 것을 원인으로 꼽는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은 “정부에서 지원 중인 석·박사급 인재 양성 프로그램으로 배출되는 인력은 해마다 200여 명도 채 안 된다”며 “소부장 업계에서 예상하는 필요 인재와 워낙 괴리가 큰 만큼 더 많은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국내 소부장 업체에 수혈 가능한 고급 인력을 육성하기 위한 생태계 조성도 시급하다. 

이서규 한국팹리스산업협회 회장은 “전문 인력이 1년에 1000명 정도 나오게끔 만들어야 한다”며 “이 정도 규모의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선 석·박사와 고졸 인재를 나눠 육성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장기적인 관점에서 소부장 업계와 관련해 대학 교수들의 깊이 있는 연구와 성과가 나올 수 있도록 정부가 뒷받침해야 한다”며 “그래야 해당 분야의 석·박사 인력이 다수 배출되는 선순환 구조를 확립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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