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별’이 된 한종희, 전영현 외로운 ‘홀로서기’…‘반도체 위기’속 경영 공백 ‘비상’

시간 입력 2025-03-25 17:47:08 시간 수정 2025-03-25 17:4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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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종희·전영현 투톱 체제 완성 일주일 만에 다시 1인 체제로
부문별 사업 책임제, 사실상 마비…전사 사업 추진 동력 약화
DX 부문장·DA사업부장·품질혁신위원회 위원장 자리도 공석
이재용 ‘사즉생’ 각오 주문 …삼성전자 경영 리더십 타격 우려

37년 간 ‘삼성맨’으로 활약해 온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이 갑작스레 별세했다. 최근까지도 삼성전자 주주 총회(주총), 중국 출장 등 여려 경영 일정을 바삐 소화해 온 한 부회장이었기에 삼성전자는 물론 재계 전반에 적잖은 충격을 안겼다.

한 부회장의 갑작스런 별세로 당장 삼성전자의 경영 리더십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삼성은 지난해 수개월 간 한종희 단독 대표이사 체제를 유지하다, 전영현 대표이사 부회장이 합류하면서 ‘투톱’ 체제를 다시 복원시킨 바 있다. 

그러나 한 부회장의 부재로 삼성전자는 다시 1인 대표 체제로 회귀했다. 반도체 위기가 날로 심화하고 있고, TV·가전 시장 내 경쟁 또한 첨예해지는 상황에서, 자칫 ‘경영 공백’이 장기화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대표이사를 한종희, 전영현 공동 체제에서 전영현 단독 체제로 변경했다고 25일 공시했다. 삼성전자측은 “한 부회장의 유고(사망)에 따른 대표이사 변경 공시다”고 설명했다.

한 부회장의 갑작스런 별세로 전 부회장이 단독 대표이사를 맡게 되면서, 삼성의 경영 공백이 현실화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어렵게 완성한 2인 대표이사 체제가 한순간에 무너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삼성전자는 DX(디바이스경험) 부문을 이끄는 한 부회장과 반도체 사업 수장이었던 경계현 전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장 사장을 중심으로 투톱 체제를 유지해 왔다. 여러 사업을 전개 중인 삼성의 경영 구조에 맞춰, 각 사업 부문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해 책임 경영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지난해 5월 경 사장(현 고문)이 DS 부문장에서 물러나면서 삼성전자의 대표이사 체제는 한종희 단독 체제로 바뀌었다. 해당 체제는 같은해 11월 전 부회장이 대표이사에 내정되기까지 반년 가량 지속됐다. 이 기간 동안 삼성은 ‘반도체 경쟁력 약화’라는 큰 부침을 겪기도 했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사진=연합뉴스>

결국 삼성은 ‘한종희·전영현 투톱’ 체제를 재건하고 나섰다. 핵심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지속 성장이 가능한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서다. 당시 삼성전자는 “2인 대표이사 체제를 복원해 부문별 사업 책임제를 확립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 이달 19일 열린 정기 주주 총회(주총)에서 전 부회장의 대표이사 선임이 확정되면서, 삼성전자의 대표이사 투톱 체제가 복원됐다. 그러나 이날  한 부회장의 별세로 삼성전자의 2인 대표이사 체제는 일주일 만에 와해됐다.

재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예기치 못한 비보로 책임 경영 실천에 비상등이 켜졌다며 우려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급작스러운 일이라 삼성 내부에서도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쉽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문제는 주력인 반도체를 비롯해 삼성전자를 둘러싼 경영 환경이 녹록치 않다는 것이다. AI(인공지능) 핵심 메모리 HBM(고대역폭메모리) 등 첨단 반도체 경쟁이 심화하고 있고, TV·가전·모바일 등 IT 기술이 급속도로 변화하는 등 경영 여건이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특히 삼성은 효자 상품이었던 반도체 패권을 빼앗기며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DS 부문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익은 2조9000억원에 그쳤다. 이는 경쟁사인 SK하이닉스(8조828억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부진한 실적이다.

지난해 1분기 영업익 1조9100억원에 그쳤던 DS 부문은 2분기 6조4500억원을 기록하며 실적 반등의 신호탄를 쏘는 듯했다. 그러나 3분기 3조8600억원으로 반토막 났고, 4분기엔 3조원대 아래로 추락하며 시장에 큰 충격을 안겼다.

이에 삼성 반도체의 지난해 연간 영업익은 15조1200억원으로, 15조원선을 겨우 넘겼다. 반면 SK하이닉스는 23조4673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며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삼성전자가 실망스러운 실적을 낸 것은 HBM 주도권 경쟁에서 SK하이닉스에 밀린 요인이 컸다. 실제 DS 부문은 HBM 분야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엔비디아를 고객사로 확보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지만, 경쟁사인 SK하이닉스를 넘어서지 못하면서 고전하고 있다.

비단 반도체 사업 뿐만 아니다. DX 부문의 경쟁력도 빠르게 약화하고 있다. 지난 19일 열린 정기 주총에서 주주들은 삼성전자를 향해 “주가 부진 이유와 주가 부양 대책 등을 답하라”고 성토했다. 이에 한 부회장은 “스마트폰, TV, 생활가전 등 주요 제품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시인하며 주주들에게 사과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직접 나서 “현재의 삼성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존의 기로에 놓여 있다”며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복합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고 경영진들을 강하게 질책하기에 이르렀다.

복합 위기 돌파가 시급한 삼성전자로선 각 사업 부문을 이끄는 두 부문장을 중심으로 핵심 역량을 제고하고 미래 성장 전략을 실천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한 부회장의 갑작스런 별세로, 삼성으로서는 위기 상황에서 사업 추진 동력에 상처를 입게 됐다.

더구나 한 부회장의 유고로 당장 DX 부문의 세부 사업부 운영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한 부회장은 대표이사직뿐만 아니라 TV·가전·모바일 사업 등을 총괄하는 DX 부문장, DA(생활가전)사업부장, 품질혁신위원회 위원장 등을 모두 도맡아 왔다.

그러나 한 부회장의 사망으로 당장 이들 직책은 모두 공석이 됐다. 각 사업별로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 책임자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한 부회장의 죽음은 삼성전자가 글로벌 가전 수요 부진에 적극 대응하고 AI 메모리 분야에서 SK하이닉스를 따라잡아야 하는 중대한 시기에 발생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사진=삼성전자>

한편 1962년생인 한 부회장은 삼성 TV를 19년 연속 글로벌 1위로 만든 주역이다. 신입사원에서 시작해 대표이사 부회장까지 오른 ‘샐러리맨의 신화’로 평가되고 있다.

천안고와 인하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1988년 삼성전자 영상사업부 개발팀에 입사해 LCD TV 랩장, 개발그룹장, 상품개발팀장, 개발실장 등을 역임했다. 2017년부터는 VD(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 사장을 맡는 등 30여 년 간 TV 개발 부서에 몸 담았다. 이에 브라운관 TV부터 PDP TV, LCD TV, 3D TV, QLED TV 등 모든 삼성 TV 제품에 한 부회장의 손길이 닿아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이날 사내 게시판에 “지난 37년 간 회사에 헌신하신 고인의 명복을 빈다”며 “고인은 삼성 TV 사업의 글로벌 1등을 이끌었으며, 어려운 대내외 환경 속에서도 DX 부문장과 DA사업부장으로서 최선을 다해 왔다”고 추모했다.

업계 안팎에서도 고인을 기리는 추모 메시지가 이어지고 있다. 한 부회장의 업계 동료인 조주완 LG전자 사장은 이날 LG전자 주총 후 취재진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부회장은 한국의 전자 산업 발전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주셨다”며 “지난 37년 간 회사의 발전을 위해서 누구보다 많은 기여를 하신 분이다”고 애도를 표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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