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저력 잃어, ‘사즉생’ 해야”…이재용, 임원들에 ‘독한 삼성인 돼라’ 질책

시간 입력 2025-03-17 17:32:12 시간 수정 2025-03-17 17:3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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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다움 복원 위한 가치 교육’서 임원 질책
“삼성 저력 잃어…‘사즉생’의 각오로 위기 대처해야”
HBM·파운드리 경쟁력 약화…삼성 반도체 위상 추락
트럼프 리스크 등 불확실성도 심화…위기 타개 시급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 임원들을 따끔하게 질책하고 나섰다. 현재의 삼성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존의 기로에 놓였다고 보고,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복합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전 세계를 호령했던 삼성 반도체는 AI(인공지능) 시대 핵심 메모리인 HBM(고대역폭메모리) 주도권 확보에 실패한 데다,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로 인해 범용 메모리 분야에서도 큰 부침을 겪고 있다. 이에 지난해 4분기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에서 3조원에도 못 미치는 영업이익을 거두며 경쟁사에 ‘메모리 최강자’ 타이틀을 내준바 있다. 여기에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글로벌 경기 침체 장기화 등 경영 불확실성까지 심화하면서 안팎으로 큰 위기에 봉착한 상황이다.

이렇듯 전례 없던 위기 상황과 맞닥뜨리자 이 회장은 ‘독한 삼성인’이 될 것을 주문하며 ‘삼성 재도약’에 드라이브를 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7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은 전 계열사의 부사장 이하 임원 2000여 명을 대상으로 순차 진행 중인 ‘삼성다움 복원을 위한 가치 교육’에서 이 회장의 메시지를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의 메시지에는 경영진들을 통렬하게 꾸짖는 내용이 담겼다. 이 회장은 “삼성다운 저력을 잃었다”며 “사즉생의 각오로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중요한 것은 위기라는 상황이 아니라 위기에 대처하는 자세”라며 “당장의 이익을 희생하더라도 미래를 위해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상에 직접 등장한 것은 아니지만 이 회장이 ‘생존의 문제’, ‘사즉생’ 등을 언급하고, 임원들을 강하게 질책하는 내용의 메시지가 대외에 알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이 회장은 각 사업부를 일일이 질책했다. 그는 “메모리사업부는 자만에 빠져 AI 시대에 대처하지 못했다”고 했고, 파운드리사업부에 대해선 “기술력 부족으로 가동률이 저조하다”고 꼬집었다.

이 회장이 강한 어조의 메시지를 경영진들에게 전한 것은 현재 삼성에 닥친 복합 위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효자로 자리매김했던 반도체 패권을 빼앗긴 것이 특히 뼈아팠다. 반도체 사업부문인 DS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익은 2조9000억원에 머물렀다. 이는 경쟁사인 SK하이닉스(8조828억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부진한 실적이다.

지난해 1분기 영업익 1조9100억원에 그쳤던 DS 부문은 2분기 6조4500억원을 기록하며 실적 반등의 신호탄를 쏘는 듯했다. 그러나 3분기 3조8600억원으로 반토막 났고, 4분기엔 3조원선 아래로 추락하며 시장에 큰 충격을 안겼다.  이에 따라, 삼성 반도체의 지난해 연간 영업익은 15조1200억원으로, 15조원선을 겨우 넘겼다. 반면 SK하이닉스는 23조4673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며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갈아치웠다.

삼성전자가 실망스러운 경영 실적을 낸 것은 HBM 주도권 경쟁에서 SK하이닉스에 밀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DS 부문은 HBM 분야에서 큰 부침을 겪고 있다. 엔비디아를 고객사로 확보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지만, 경쟁사인 SK하이닉스를 넘어서지 못하면서 고전하고 있다.

그간 삼성전자는 글로벌 HBM 패권 다툼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SK하이닉스와 치열한 경쟁을 벌여 왔다. 그러나 HBM 최초 개발에 성공한 곳은 SK하이닉스였다. SK는 2013년 세계 최초로 TSV(실리콘관통전극)와 WLP(웨이퍼레벨패키지) 기술을 기반으로 1세대 HBM을 선보였다. 이에 질세라 삼성전자는 2015년 10월 2세대 HBM ‘HBM2’를 개발, 기술적 우위를 증명했다.

그러나 지난 2019년 SK하이닉스가 3세대 HBM ‘HBM2E’를 개발하며 ‘세계 최초’ 타이틀을 재탈환 했고, 2021년에는 4세대 HBM ‘HBM3’, 2023년에는 업계 최고 성능의 5세대 HBM HBM3E를 연달아 개발하며 승승장구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24년 10월 필리핀 칼람바에 위치한 삼성전기 필리핀 생산 법인을 찾아 MLCC 제품 생산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삼성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HBM 역량 강화에 박차를 가해 온 삼성은 지난해 2월 24Gb D램 칩을 TSV 기술로 12단까지 적층해 업계 최대 용량인 36GB HBM3E 12H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며 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기 시작했다. 이어 10월 31일에는 지난해 4분기 엔비디아의 HMB3E 품질 테스트를 통과하고, 본격적으로 판매를 늘려 나갈 것이라고 깜짝 발표했다.

그러나 SK하이닉스가 HBM3E 12단 제품을 먼저 개발한 삼성전자를 제치고 엔비디아에 HBM3E 12단을 납품하면서 삼성의 자존심에 큰 흠집이 생겼다. AI 메모리 경쟁에서 밀려 최신 제품 양산에 돌입하지도 못하고, 품질 검증 마무리 여부도 확정 짓지 못한 삼성 반도체가 자존심을 구기고 만 것이다.

이에 ‘만년 2등’으로 여겨지던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를 뛰어 넘어 ‘메모리 최강자’ 자리를 꿰차게 됐다.

비단 HBM뿐만 아니다. 삼성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경쟁력도 빠르게 약화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TSMC의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67.1%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8.1%를 기록한 삼성전자였다.

이에 삼성과 TSMC 간 점유율 격차는 무려 59.0%p나 됐다. 세계 2위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도 삼성 파운드리가 TSMC를 따라잡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TSMC가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을 잠식하며 삼성전자와의 간극을 크게 벌리는 사이 삼성은 또다른 위협과 마주하게 됐다. 중국 SMIC가 빠른 속도로 삼성의 뒤를 추격해 오고 있어서다.

지난해 4분기 SMIC의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5.5%로 나타났다. 이에 삼성과 SMIC 간 점유율 격차는 2.6%p에 그쳤다. 수 분기 내에 따라잡힐 수 있을 정도로 간극이 좁아진 것이다.

TSMC 따라잡기에 실패하고, SMIC의 추격까지 허용한 삼성 파운드리는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가 위태로워질 수 있는 급박한 상황에 처했다.

이른바 ‘트럼프 리스크’로 인해 삼성의 경영 환경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점도 문제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반도체 지원법(CSA)’을 폐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에 전임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에 투자한 주요 반도체 업체에 지불키로 한 보조금이 자칫 공수표가 될 수 있다는 불안이 확산하고 있다.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해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키로 한 삼성으로선 근심이 깊어질 수 밖에 없다.

현재 삼성전자는 지난 2021년 미 텍사스에 170억달러 규모의 파운드리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현재 건설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2030년까지 누적으로 약 450억달러를 투자해 미 텍사스주 테일러에 건설 중인 반도체 생산 공장에 추가로 신규 공장을 건설하고, 패키징 시설과 첨단 연구개발(R&D) 시설을 신축키로 했다.

삼성의 공격적인 대미 투자에 당시 바이든 행정부도 화답했다. 미 상무부는 지난해 12월 CSA에 근거해 삼성전자에 47억4500만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키로 했다.

그러나 K-반도체에 대해 결정된 보조금은 실제 트럼프 2기 행정부 임기 중에 집행될 예정으로 파악됐다. 삼성에 대한 지원금이 아직 지급되지 않은 것이다.

이런 와중에 트럼프 대통령이 CSA를 폐기하겠다고 엄포를 놓으면서 당장 삼성전자의 미 현지 반도체 생산 거점 구축에도 제동이 걸리게 됐다. 바이든 행정부 때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미 현지에 반도체공장을 짓고 있지만, 정권이 교체되면서 정작 보조금을 못 받을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안팎으로 위기상황에 몰린  가운데, 이 회장은 경영진들을 질책하며 당면한 위기를 돌파해 나가자고 나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삼성다움 복원을 위한 가치 교육에 참석한 임원들에게 나눠준 크리스털 패에는 각자의 이름과 함께 ‘위기에 강하고 역전에 능하며 승부에 독한 삼성인’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23년 10월 삼성전자 기흥·화성캠퍼스를 찾아 차세대 반도체 R&D 단지 건설 현장을 직접 둘러보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삼성다움 복원을 위해선 ‘독한 삼성인’이 돼 삼성의 재도약을 이뤄내야 한다는 게 이 회장의 의중이다.

삼성을 초일류 기업으로 재도약시키겠다는 이 회장의 ‘뉴 삼성’ 비전은 이미 시동을 걸고, 본격적으로 속도를 올리고 있다. 

먼저 삼성전자는 이사회에 반도체 기술 전문가를 대거 보강하며 첨단 칩 경쟁력을 빠르게 강화키로 했다. 신규 사외이사진으로는 반도체 전문가인 이혁재 서울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가 내정됐다. 신규 사내이사의 경우 전영현 DS 부문장 부회장과 송재혁 DS 부문 CTO(최고기술책임자) 겸 반도체연구소장 사장이 내정됐다.

다수의 칩 베테랑들을 이사회에 합류시킨 삼성전자는 눈앞에 닥친 글로벌 복합 위기를 극복할 타개책을 마련하고, 반도체 역량을 빠르게 끌어올려 ‘메모리 최강자’ 타이틀을 되찾겠다는 복안이다.

이들 사내·외이사 내정자는 이달 19일 열릴 주주 총회(주총)을 거쳐 최종 선임될 것으로 점쳐진다. HBM 역량도 대폭 끌어올린다. 삼성은 HBM3E 개선 제품을 올 1분기 말부터 주요 고객사에 공급하고, 2분기엔 본격적으로 공급을 확대키로 했다.

6세대 ‘HBM4’ 개발에도 박차를 가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1c 나노 기반 HBM4는 올해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기존 계획대로 개발을 진행 중이다”고 전했다.

한편 삼성인력개발원이 주관하는 이번 교육은 임원의 역할과 책임 인식 및 조직 관리 역할 강화를 목표로 경기 용인에 위치한 인력개발원 호암관에서 다음달 말까지 순차적으로 열린다.

삼성이 전 계열사 임원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진행하는 것은 지난 2016년 이후 9년 만이다. 삼성은 앞서 2009년부터 2016년까지 매년 임원 대상 특별 세미나를 개최한 바 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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