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국내외 사업장 누비며 미래 준비 박차
반도체·바이오 등 미래 먹거리 투자 대폭 확대
삼성 구성원 만나 당면한 위기 극복 의지 고취
사법 리스크·그룹 콘트롤타워 복원 등은 과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취임한 지 꼭 1년이 됐다. 지난 1년 간 삼성의 수장으로서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 온 이 회장은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미래 기술 투자와 인재 양성에 주력하며 ‘뉴 삼성’ 시대를 주도하고 있다.
27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이 회장 취임 1주년인 이날 별다른 공식 행사를 열지 않았다. 별도의 메시지도 내지 않았다.
일각에선 이날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부당 합병·회계 부정’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는 이 회장이 취임 1주년 소회를 밝히지 않겠느냐는 추축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 회장은 이와 관련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재판정으로 향했다.
공교롭게도 이 회장은 삼성전자 이사회에서 회장 승진 안건이 의결된 지난해 10월 27일에도 재판에 출석했다.
당시 이 회장은 “국민에게 조금이라도 더 신뢰받고 사랑받는 기업을 만들어보겠다”며 의지를 내비쳤다. 이어 “제 어깨가 많이 무거워졌다. 많은 국민의 응원을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회장직에 오른 지난해와 취임 1주년을 맞은 올해 모두 조용하게 보내며 소탈한 모습을 내보이고 있다.
그러나 지난 1년 간 걸어 온 이 회장의 경영행보는 현장에 가깝게, 그리고 더 공격적인 모습이었다. 그는 회장 취임 이후 국내외 사업장 곳곳을 누비며 미래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가장 관심을 갖고 육성 의지를 내비치고 있는 분야는 단연 반도체다.
이 회장은 지난 19일 ‘삼성 반도체 신화’의 핵심 거점인 삼성전자 기흥·화성캠퍼스를 찾아 차세대 반도체 연구개발(R&D) 단지 건설 현장을 직접 둘러보고, 반도체 전략을 점검했다.
현재 삼성전자는 기흥캠퍼스에 그룹의 미래를 책임질 차세대 반도체 R&D 단지를 짓고 있다. 2030년까지 약 20조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해당 단지는 삼성의 미래 반도체 기술을 선도하는 핵심 연구 기지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특히 연구, 생산, 유통이 한 곳에서 이뤄지는 복합형 연구 단지로 조성된다. 이에 첨단 기술 개발의 결과가 양산 제품에 빠르게 적용될 수 있는 고도의 인프라를 갖추게 될 예정이다.
이 회장은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다시 한 번 반도체 사업이 도약할 수 있는 혁신의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며 삼성 반도체의 역량 제고 의지를 다졌다.
대규모 투자도 약속했다. 올 3월 삼성은 향후 20년 간 총 300조원을 들여 경기 용인에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기로 했다.
해당 클러스터가 조성되면 ‘화성·기흥-평택-용인’ 등 경기 남부권을 연결하는 삼성 반도체 삼각 편대가 구축된다. 이를 통해, 현재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뿐만 아니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분야에서도 경쟁력을 극대화한다는 구상이다.
반도체 업황 부진으로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은 극심한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은 R&D 투자를 오히려 늘리며 미래 준비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는 기술 초격차 전략을 중시해 온 이 회장의 뜻과도 일맥 상통한다. 그는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기술 리더십과 선행 투자가 매우 중요하다”며 “세상에 없는 기술로 미래를 만들자”고 강조해 왔다.
‘제2의 반도체’로 낙점한 바이오 사업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한 토대 마련에도 적극 힘쓰고 있다.
지난 5월 이 회장은 세계 최대 바이오 클러스터인 미국 동부를 찾아 글로벌 빅파마, 바이오 벤처 인큐베이션 회사 등 글로벌 바이오 시장을 선도하는 제약사 CEO들과 연쇄 회동했다.
이 회장이 글로벌 바이오 리더들과 연쇄 회동한 것은 전 세계 바이오 산업 전반에 걸쳐 협업을 더욱 강화함으로써 바이오 사업을 제2의 반도체로 육성하기 위해서다.
삼성은 앞서 지난 2011년에는 삼성바이오로직스, 2012년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연이어 설립하며 바이오 사업을 본격화했다. 여기에는 바이오를 반도체에 버금가는 미래 먹거리로 육성하겠다는 이 회장의 의지가 뒷받침됐다. 당시 이 회장은 “출발점은 중요하지 않다”고 운을 뗐다. 그는 “과감하고 끈기 있는 도전이 승패를 가른다”며 “반도체 성공 DNA를 바이오 신화로 이어가자”고 당부했다.
이같은 이 회장의 의지에 발맞춰 삼성은 바이오 분야 육성을 위해 향후 10년 간 바이오 사업에 7조5000억원을 추가 투자한다는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인재 중시’ 경영 기조도 이어 오고 있다. 이 회장은 국내외 주요 사업장을 두루 둘러보며 구성원들을 격려하고,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의지를 고취시키고 있다.
올 3월 이 회장은 삼성 반도체 연구소 신입 박사 연구원들과 간담회에서 “연구소를 양적·질적 측면에서 두배로 키워나갈 예정이다”며 R&D 역량 강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올 2월에는 삼성전자 천안·온양캠퍼스를 찾아 첨단 패키지 기술이 적용된 반도체 생산라인을 살폈다. 이 회장은 “어려운 상황이지만 인재 양성과 미래 기술 투자에 조금도 흔들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같은달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캠퍼스를 방문한 이 회장은 QD(퀀텀닷)-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 생산라인도 점검했다. 그는 “끊임없이 혁신하고 선제적으로 투자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실력을 키우자”며 미래 핵심 기술 확보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이 뿐만 아니다. 지난해 10월 회장 취임 후 첫 행보로 삼성전자 광주사업장을 찾은 데 이어 11월에는 삼성전기 부산사업장, 12월에는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 위치한 삼성물산 바라카 원전 건설현장, 베트남 스마트폰·디스플레이 생산공장 등을 방문해 구성원들을 격려했다.
‘민간 외교관’으로서의 역할도 자처하고 있다. 이 회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아랍에미리트(UAE)와 스위스, 일본, 미국, 프랑스, 베트남, 사우디아라비아 방문 등에 동행하며 글로벌 네트워크를 공고히 다지고 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를 비롯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 엔비디아 CEO, 크리스티아누 아몬 퀄컴 CEO,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 등 글로벌 인사들과의 만남도 잇따랐다.
‘이재용 시대’가 도래한 지 불과 1년 동안 삼성을 초일류기업으로 재도약시키려는 행보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 회장의 ‘뉴 삼성’ 비전을 구체화하기에는 여전히 산적한 과제가 쌓여 있다.
당장 사법 리스크가 시급한 문제로 지목된다. 이 회장은 삼성물산·제일모직의 부당 합병과 이를 위한 회계 부정을 지시한 혐의로 2020년 9월 기소돼 3년 넘게 재판을 받고 있다. 거의 매주 재판에 출석하는 터라 해외 출장 등에 제약이 많다.
다음달 결심 공판에 이어 늦어도 내년 초에 1심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만약 유죄 판결이 나오면 이 회장의 그룹 경영에 차질을 빚게 될 수도 있다.
지배구조 개선과 컨트롤타워 복원도 서둘러 해결해야 할 현안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이 회장은 삼성전자 회장이지 그룹 회장직에 올라선 것은 아니다. 삼성전자가 그룹의 핵심 계열사이긴 하지만, 이 회장이 그룹 내 각 계열사의 의사결정까지 직접적으로 관여하려면 이 회장을 중심으로 한 단일 지배구조 개편이 필수적이다.
전체 계열사를 일사불란 하게 진두지휘하기 위한 컨트롤타워의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다. 삼성은 2017년 그룹의 컨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미전실)을 폐지하고, 사업 부문별로 3개의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각 사업을 통합 관리하는 조직의 부재로 업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줄곧 제기돼 왔다.
국내 굴지의 여타 그룹들은 컨트롤타워를 통해 그룹을 진두지휘 하고 있다. LG의 경우 지주사인 LG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고 있다. 이를 통해 그룹의 의사결정 사안을 계열사에 안정적으로 전달한다. SK도 SK수펙스추구협의회(SK수펙스)를 통해 계열사들이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최근 이 회장은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한 지속 투자, 각 계열사 현장 경영 등 굵직한 현안들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TF 체제로는 뉴 삼성 비전을 구체화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과거 미전실에 준하는 그룹 내 컨트롤타워를 복원해 이 회장이 그룹을 효율적으로 총괄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재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삼성은 현재 반도체·바이오 등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면서 “이 회장이 그룹 계열사 전반을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제2의 미전실’ 복원의 필요성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