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 과제, 탄소중립] ②‘기후 리스크’ 극복 과제…중후장대, ‘에너지 전환’ 사활

시간 입력 2023-05-09 17:47:38 시간 수정 2023-05-09 17:4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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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모비스, 재생에너지 100% 전환 가속
제품·사업장 탄소 감축으로 탄소 배출 ‘제로’
포스코·현대제철, 저탄소 제품 연구개발 집중
대한항공·아시아나, 바이오 항공유 도입 나서
높은 가격·공급 부족 여전해…정부 지원 절실

탄소중립이 전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는 탄소중립을 위한 정책을 잇따라 발표하고, 실현을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우리나라도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내놓은 상태라 국내 산업계에서는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상황이다. 국내 일부 기업들은 탄소중립 실현 시점을 설정하고, 이를 위한 중장기 로드맵을 속속 내놓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에게 탄소중립은 쉽지 않은 도전이며 과제가 되고 있다.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은 물론 신기술 개발도 병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본지는 국내 기업들이 시대적 과제로 떠오른 탄소중립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또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어떠한 정책적 지원이 있어야 하는지 등에 대해 3회에 걸쳐 살펴 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2050년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에너지 백년대계 실행이 시급하다.”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가 지난 4월 확정한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과 관련한 재계 한 관계자의 제언이다. 유럽연합(EU)과 미국·일본을 필두로 탄소중립 실현을 목표로 한 에너지 전환이 본격화한 가운데 우리나라도 친환경·탈탄소 경쟁력 확보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특히 제조업 비중이 크고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특성상 탄소중립 추진과 온실가스 감축을 통한 기후 리스크 극복은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가 됐다.

탄소중립은 이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과 함께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은 글로벌 기업들의 최대 화두로 부상했다. 탄소중립이 경제·산업·통상 등 사회 전 분야에 걸친 초장기 프로젝트인 만큼 국내 산업계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이에 자동차·항공·조선·철강 등 중후장대 기업들은 업종별 특성을 살린 자원순환 생태계 구축에 사활을 걸었다. 세계 각국이 자국 중심으로 친환경 규제를 강화하는 일명 ‘녹색 무역장벽’을 쌓고 있는 가운데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자동차·부품 업계, 자원 선순환 체계 구축 ‘가속’

9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현대위아 등 4개 계열사는 지난해 4월 ‘RE100’ 가입 이후 탄소중립 달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RE100은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 100%’의 약자다. 2050년까지 기업의 사용 전력량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는 목표 하에 글로벌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캠페인으로, 현재 전 세계 400여개 기업이 동참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탄소중립 시점을 정부의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인 2050년보다 5년 앞당긴 2045년으로 잡고 전사적인 체질 개선에 돌입했다. 우선 현대차그룹의 완성차 계열사인 현대차는 ‘기후변화 통합 솔루션’을 바탕으로 차량 생산부터 운행·폐기까지 모든 단계에서 발생하는 탄소 순배출량을 2045년까지 제로(0)화할 방침이다. 순배출량은 전체 배출량에서 제거·흡수된 양을 차감한 실질적인 배출량을 뜻한다. 핵심은 제품 탄소 감축을 위한 전동화 전환이다. 전체 탄소 배출량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차량 운행 단계에서의 배출 저감을 위해 글로벌 판매량 중 전동화 모델의 비중을 2030년까지 30%, 2040년까지 80%로 끌어올린다는 전략이다.

현대차는 전동화 전환 과정에서 수소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현대차는 수소전기차 라인업을 현재 1종에서 3종으로 늘리고, 수소연료전지시스템 보급을 비 자동차 영역으로 넓혀 수소 생태계를 확장한다는 복안이다. 수소전기차의 경우 내년 넥쏘 페이스리프트(부분변경) 모델 출시를 시작으로 목적기반차량(MPV)인 스타리아급 수소전기차와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급 수소전기차를 연이어 선보일 예정이다.

제품뿐 아니라 사업장 탄소 감축도 가속화한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려 제조 공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게 골자다. 현대차는 국내외 사업장의 전력 수요 90% 이상을 2040년까지, 100%를 2045년까지 재생에너지로 전환할 예정이다. 체코 공장의 경우 지난해 현대차 해외 사업장 중 가장 먼저 재생에너지 전환을 완료했다. 현대차는 2040년까지 차량 운행과 사업장(공장)·공급망(협력사)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2019년 수준 대비 75% 줄이고,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기술을 도입해 2045년까지 완전한 탄소중립을 실현할 방침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탄소 감축을 위해 내연기관 차량 중심의 제품·사업 구조를 전동화 차량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고, 수소연료전지시스템을 모든 모빌리티에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전 사업장에서 고효율 설비 도입과 공정 개선 등 에너지 저감 활동을 지속하고,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기반으로 친환경 공장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의 부품 계열사인 현대모비스는 2021년 말 국내 자동차 업계 최초로 과학 기반 감축목표 이니셔티브(SBTi)에 가입한 이후 탄소 감축에 고삐를 죄고 있다. SBTi는 파리기후협약 이행을 위해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검증하는 글로벌 이니셔티브다. 현대모비스는 2030년까지 2019년 대비 30% 수준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2040년까지 국내외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전력을 모두 재생에너지로 전환한다. 2045년에는 공급망까지 탄소 배출량을 제로화할 방침이다.

구체적으로 사업장이 보유한 차량을 2030년까지 전기차와 수소전기차로 모두 전환한다. 2025년 30%, 2028년 70%, 2030년 100% 전환을 목표로 하며, 이에 따른 사업장 충전 인프라 구축을 병행한다. 또 에너지 전환과 연계해 노후 설비 교체와 고효율 기기 확대 등을 통해 설비·기기 효율을 최대화하고, 공장 에너지 관리를 통해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할 계획이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공급망 탄소중립을 위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산출할 수 있는 IT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며 “협력사별 온실가스 배출 특성을 파악해 그룹화하고, 그룹별로 적합한 온실가스 관리 방안을 수립해 효과적인 감축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철강업계, 수소환원철·저탄소 강재 등 기술 개발 

현대제철의 1.0GPa급 저탄소 판재가 적용된 자동차 부품.<사진제공=현대제철>

철강산업도 탄소중립 실현이라는 도전에 직면해 있는 상황이다. 그동안 철강산업은 대규모 온실가스를 내뿜는 산업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쇳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석탄이 사용되는데 석탄에서 발생하는 일산화탄소가 철광석의 환원물로 투입된다. 여기서 반응 생성물로 이산화탄소가 발생하면서 철강산업은 그동안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탄소중립에 대한 요구가 철강산업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저탄소 제품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국내 철강업계도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연구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먼저 포스코는 수소환원제철을 활용해 탄소중립을 이뤄나간다는 계획이다. 수소환원제철은 기존에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 대신 수소를 사용해 철을 생산하는 기술이다. 수소는 철광석과 반응하면 온실가스가 아닌 물이 발생하기 때문에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기술로 꼽힌다.

포스코는 수소환원제철을 ‘하이렉스(HyREX)’로 명명하고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하이렉스는 포스코가 보유하고 있는 파이넥스(FINEX) 유동환원로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2030년에 수소환원제철의 상용화를 마무리하고, 2050년에는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목표도 설정했다.

현대제철은 저탄소화된 자동차용 고급 강재를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전기로-고로 복합 프로세스’ 생산 체제를 구축할 예정이다.

1단계로 기존 전기로를 활용한 저탄소화 쇳물을 고로 전로공정에 혼합 투입하는 방식을 적용한다. 2단계는 현대제철 고유의 신전기로를 신설해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이 약 40% 저감된 강재를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신전기로에는 현대제철의 저탄소제품 생산체계 ‘하이큐브(Hy-Cube)’기술이 적용된다. 

이를 통해 현대제철은 2030년 지금보다 탄소 배출량을 12% 감축하고,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항공업계, 바이오 항공유 급한데…과제 ‘산적’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등 국적 항공사들은 친환경 항공기 도입을 통해 세계 각국의 환경 규제에 대응하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주로 도입 중인 친환경 항공기는 A321NEO다. A321NEO는 에어버스사의 주력 차세대 항공기로, 6시간 내외의 중·단거리 노선에 특화된 소형 항공기다. 기존 1세대 A321 항공기보다 연료 효율이 약 15% 높고, 이산화탄소·질소산화물 배출이 적어 대표적인 친환경 항공기로 꼽힌다. 동남아 노선 기준 A321NEO 항공기 1대당 연간 10억원의 유류비가 절감되고, 연간 5000톤의 탄소 배출 저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적 항공사들은 지속가능항공유(SAF) 도입에도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SAF는 폐식용유·생활 폐기물 등 대체 원료로 생산된 항공유로, 원료 수급부터 소비까지 전 과정에 걸쳐 탄소 배출량을 기존 항공유 대비 최대 80%까지 감축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26일(현지시간)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가 SAF 도입을 의무화하는 ‘리퓨얼EU(REFuelEU)’ 법안에 최종 합의하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당장 2025년부터 EU 27개국의 공항에서 항공기 급유 시 등유 기반의 기존 항공유에 SAF를 최소 2% 이상 섞어야 하는 탓이다. SAF 의무 포함 비율은 2025년 2%로 시작해 2030년 6%, 2035년 20%, 2050년 70%로 확대된다.

EU가 유독 항공사에 엄격한 환경 규제를 적용하는 이유는 비행기가 다른 운송 수단보다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기 때문이다. 유럽환경청(EEA)에 따르면 항공기를 이용하는 승객 1명이 1km를 이동할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85g으로 자동차(158g)와 기차(14g) 대비 훨씬 많다. 이 때문에 비행기는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으로 꾸준히 지목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현재 연 2만~3만톤 수준의 SAF 수요는 2040년 연 6000만톤 규모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높은 가격과 공급 부족이다. 우선 SAF를 비롯한 바이오 항공유는 기존 항공유 대비 가격이 최소 2배, 최대 5배 비싸다. SAF를 생산하는 국내 정유사가 아직은 적은 만큼 전량 수입할 경우 환율 변동 등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도 크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9월, 아시아나항공은 올해 1월 각각 글로벌 에너지 기업 쉘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2026년부터 5년간 SAF를 공급받기로 했지만, 비용 부담을 낮추기 위해서는 향후 공급망 다변화가 필수적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기존 항공유 대비 가격이 높은 SAF 혼합 의무화 규제 도입 시 중·단기적인 운항 비용 상승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국적 항공사들의 SAF 도입을 위한 정부의 실효성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과 같은 대형항공사(FSC) 대비 재무구조가 취약한 저비용항공사(LCC)들은 SAF 도입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올해부터 내년까지 자국 내에서 사용·판매되는 SAF에 갤런당 1.25~1.75달러의 세액공제를 적용하는 등 제도적 뒷받침에 나서고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장거리 노선 운항을 준비 중인 국적 항공사로서는 SAF 도입 자체만으로 재정적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SAF 도입이 꼭 필요한 만큼 보조금 등 세제 혜택을 주는 방식의 정부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김병훈 기자 / andrew45@ceoscore.co.kr]

[CEO스코어데일리 / 박준모 기자 / Junpark@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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