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인재양성 비상] ② ‘K-디스플레이’의 위기…“중국 추격 거센데, 석박사급 인재 턱없이 부족”

시간 입력 2023-04-26 07:00:02 시간 수정 2023-04-26 0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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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디스플레이 고급 인력 2688명…전체의 약 5% 불과
1년 이내 조기 퇴사율 34.5% 달해…인재 양성 정책 부재 탓
‘디스플레이 육성’ 선언한 정부, 반도체 정책 대거 양산
“디스플레이 산업분야 고급 인력 수혈, 종국엔 중단될 수도”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전략 산업과 각 산업별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분야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진 가운데 미국, 중국 등 주요국들이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한 기술 패권 경쟁에 사활을 걸고 있다. 세계 각국 간 경쟁이 격화하면서 그간 글로벌 시장을 선도해 온 우리나라 역시 차세대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정작 산업 현장에서는 첨단 기술 개발을 위한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계속되고 있다. 이에 CEO스코어데일리는 미래 디지털 산업의 핵심인 반도체를 비롯해 첨단 디지털 산업을 이끌어나갈 인재 양성 실태를 살펴보고, 글로벌 경쟁력을 이어가기 위한 인재 발굴 방안 등을 3회에 걸쳐 조명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정부가 디스플레이 산업을 ‘제2의 반도체’로 삼고, 국가 미래 먹거리로 집중 육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전 세계적으로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저가 전략을 앞세운 중국 업체들이 추격의 속도를 높이면서 그간 글로벌 시장을 선도해 온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가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디스플레이 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목표 아래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마이크로 LED 등 차세대 패널과 관련한 기술을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했다. 또 미래 디스플레이 기술로 일컬어지는 ‘Ex(확장형)-OLED’ 등을 상용화하는 데에도 힘쓰기로 했다. 이에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등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는 중국을 따돌리고 글로벌 시장 내 입지를 공고히 할 수 있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그러나 K-디스플레이 산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첨단 디스플레이 기술인재들의 이탈은 심각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국가 전략적으로 오랜 기간 인재 발굴에 힘써 온 반도체와 달리 ‘K-디스플레이’ 부문은 인재 양성 을 위한 로드맵도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디지털 기술인력 육성 정책의 대부분이 반도체 분야에 쏠리면서, 상대적으로 디스플레이 부문은 후순위로 밀려나고 있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반도체에 밀려 뒷전” 디스플레이 인재 양성 정책 ‘부재’

산업통상자원부의 ‘산업기술인력수급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디스플레이 산업 기술인력은 2021년 기준 4만8864명으로 집계됐다. 이 중 첨단 기술개발의 주역인 석·박사급 인력은 2021년 기준 2688명(석사 2197명, 박사 491명)에 그쳤다. 디스플레이 산업에 종사하는 석·박사급 인력이 전체의 5%에 불과한 것이다.

비단 고급 인재만 부족한 것이 아니다.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의 전체 인력 부족 문제도 심각한 수준이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최근 5년 간 디스플레이 산업 분야의 기술 부족 인력은 △2017년 282명 △2018년 256명 △2019년 281명 △2020년 237명 △2021년 274명 등 매년 300명에 육박했다.

우수 인재를 확보했다 하더라도 안심할 수 만은 없다. 디스플레이 업계에서 타 분야로 이탈하는 인력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가 공개한 ‘디스플레이 산업인력수급실태조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구인 활동을 통해 채용하고자 했던 산업 인력은 총 2989명이었다. 이 가운데 약 92.8%인 2775명이 최종 채용됐다. 그러나 이들 중 1년 이내 조기 퇴사한 인원이 34.5%인 956명으로 나타났다. 

이달 4일 충남 아산시 삼성디스플레이 아산 제2캠퍼스에서 열린 ‘신규 투자 협약식’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왼쪽에서 세번째) 등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달 4일 충남 아산시 삼성디스플레이 아산 제2캠퍼스에서 열린 ‘신규 투자 협약식’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왼쪽에서 세번째) 등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문가들은 디스플레이 핵심 고급 인력의 부족, 기술인력의 이탈이 디스플레이 전문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정책의 부재에서 기인한다고 보고 있다. 상대적으로 범 정부차원에서 공을 들이고 있는 반도체 인재육성 정책과 비교되는 부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7월 ‘반도체 인재 양성 방안’을 발표하면서 향후 10년 간 반도체 인재 15만명을 육성한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2031년까지 반도체 산업 기술 인력 수요가 30만 4000명까지 증가할 것이란 분석에 따른 것이다.

정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참가하는 ‘민·관 공동투자 반도체 고급인력양성사업’을 올해부터 본격 추진키로 했다. 정부와 기업이 각각 절반씩 R&D(연구개발) 자금을 마련해 대학과 연구소에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2032년까지 총 2228억원을 투입해 석·박사급 반도체 인력 2365명 이상을 양성한다는 구상이다.

또 수도권과 지방 구분 없이 반도체 등 첨단 분야와 관련된 학과의 입학 정원을 늘릴 수 있도록 규제도 대폭 완화했다. ‘계약정원제’를 통해 일반 학과 정원을 20% 이내에서 한시적으로 늘려 채용 연계형 교육 과정을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반도체 계약학과의 경우 대학 전체 입학 정원의 20%까지만 받을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최대 50%까지 확대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디스플레이 인력을 발굴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은 좀처럼 찾아보기가 어렵다. 당장, 학계와 업계에서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교수는 “정부는 국부산업인 반도체 인력 양성 정책만을 최우선적으로 마련하고 있다”며 “디스플레이를 제2의 반도체로 키우겠다고 하지만, 디스플레이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시도는 아직 전무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탈원전 정책을 펼치면서 원자력공학 전공 지원율이 급락했던 전철을 디스플레이 전공에서도 밟을 수 있다”며 “윤 정부의 정책적 지원 여부에 디스플레이 산업의 명운이 걸려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당사자인 디스플레이 업체들의 위기감은 더 크다.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각종 지원이 뒷받침되는 반도체에 밀려 디스플레이를 전공하려는 석·박사는 나날이 줄어들고 있다”며 “이같은 추세가 지속되면, 디스플레이 산업 분야의 고급 인력 수혈이 조만간 중단될 지도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LG디스플레이와 연세대학교 대학원 간 채용 연계형 디스플레이 계약학과 설치·운영 협약식. <사진=LG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와 연세대학교 대학원 간 채용 연계형 디스플레이 계약학과 설치·운영 협약식. <사진=LG디스플레이>

◇답답한 현실에 직접 미래 인재 확보 나선 LG디스플레이·삼성디스플레이, 대학과 손잡고 계약학과 운영

보다 못한 국내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직접 미래 인재 확보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5월 LG디스플레이는 연세대학교, 한양대학교,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 채용 연계형 디스플레이 계약학과를 설립하고, 올해부터 석·박사급 디스플레이 전문 인력을 본격 양성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와 이들 3개 대학은 해마다 각 대학원별로 10명의 석·박사급 인재를 육성키로 했다. 선발된 학생들은 재학 기간 동안 △학비 전액 △학비 보조금 △연구비 등을 지원받고, 졸업 후 LG디스플레이로의 취업도 보장된다.

앞서 2021년 12월 LG디스플레이는 연세대와 채용 연계형 디스플레이융합공학과 설립을 추진한 바 있다. 여기에 3개 대학원과도 계약학과를 운영하면서 LG디스플레이는 학부부터 석·박사급까지 디스플레이 우수 인재 육성 시스템을 구축하게 됐다. LG디스플레이는 2027년까지 OLED를 포함한 차세대 디스플레이 산업의 리더가 될 전문 인력을 200명 이상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윤수영 LG디스플레이 최고기술책임자(CTO)는 “디스플레이 산업은 인공지능(AI)을 포함한 차세대 기술 혁신과 함께 자동차, 건축 등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과 융복합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나가고 있다”며 “디스플레이 계약학과 개설로 전문성과 다양한 분야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겸비한 석·박사를 양성함으로써 미래 디스플레이 산업을 선도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삼성디스플레이와 KAIST 간 채용 연계형 인재 양성 과정 신설 업무 협약식. <사진=삼성디스플레이>
삼성디스플레이와 KAIST 간 채용 연계형 인재 양성 과정 신설 업무 협약식. <사진=삼성디스플레이>

삼성디스플레이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손을 잡았다. 지난해 1월 삼성디스플레이는 KAIST와 채용 연계형 인재 양성 과정을 신설하고, 전기·전자공학부 등 관련 학과에서 석·박사급 인재를 대상으로 디스플레이 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2026년까지 총 50명의 우수 인재를 선발해 석·박사 과정에 필요한 장학금과 학자금을 지원키로 했다. 졸업 후에는 삼성디스플레이에 입사할 수 있다.

최주선 삼성디스플레이 사장은 “디스플레이 산업의 기술 경쟁이 갈수록 첨예해지면서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 전문 인재를 육성하고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며 “이번 협력이 삼성디스플레이의 경쟁력을 높이고, K-디스플레이의 저변을 강화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고 밝혔다.

◇디스플레이 전문인재 로드맵 부재, R&D 투자만 늘리겠다는 정부

지난 6일 정부는 반도체·디스플레이·차세대 배터리 등 우리나라 3대 주력 기술 분야에서 ‘초격차’를 확보하기 위한 미래 핵심 기술 100개를 선정하고, 2027년까지 민간에서 156조원, 정부 4조5000억원 등 총 160조5000억원 규모의 연구개발(R&D) 자금을 투입키로 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들 3개 분야는 국가 경제 버팀목이자 향후 시장이 크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기술군이다”며 “민·관 협업 기반의 선제적 R&D가 시급한 상황이다”고 투자 배경을 설명했다.

이 중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는 OLED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 고도화를 위한 핵심 기술 28개에 대해 R&D 지원을 추진한다. 또 초실감 영상 구현을 위한 초고해상도 디스플레이 기술, 3차원(3D)과 홀로그램 기술, 시각 외에도 촉각 등 다양한 감각을 제공하는 다중 감각 디스플레이 기술, 디지털 입체 구현 및 의류 탈부착이 가능한 융복합 디스플레이 기술개발도 지원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번 정부 발표에서도 구체적인 디스플레이 전문 인력 양성 방안은 제시되지 않았다. 최첨단 기술 개발을 위한 R&D에만 대규모 지원이 계획됐을 뿐 산업 현장에서 기술 개발을 수행하는 인재 육성에는 여전히 소홀하다.

LG디스플레이 8인치 360도 폴더블 OLED. <사진=LG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8인치 360도 폴더블 OLED. <사진=LG디스플레이>

정부가 디스플레이 인력 양성을 뒤로 미뤄두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지난해 11월 정부는 ‘제1차 국가첨단전략산업위원회’를 열고, 3대 국가첨단전략산업으로 반도체·이차전지·디스플레이를 선정했다. 이 자리에서 정부는 “국가첨단전략산업의 석·박사급 전문 인력 부족 현상을 해소하고자 각 기술 분야별 특성화대학원을 지정해 중점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따라 디스플레이 산업 분야 특성화대학원은 내년 중 1~2곳이 선정돼 시범 운영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반도체 산업 분야 특성화대학원은 당장 올해부터 본격 운영된다. 올 상반기 중 3곳을 선정하고, 하반기부터 수업에 들어가는 것이다. 반도체가 우리나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큰 만큼, 반도체 특성화대학원을 우선 운영하는 것이다.

이와 달리, 정부는 역시 석·박사급 전문인력 부족을 호소 중인 디스플레이 특성화대학원 설립에는 미온적인 반응이다. 정부가 언급한 ‘내년 1~2개 대학원 시범 지정’도 확정된 스케줄이 아니다.

이와 관련해 산업부 관계자는 “디스플레이 특성화대학원 지정과 관련해선 예산 당국과 협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폴더블과 슬라이더블, 두 가지 혁신 기술이 하나로 집약된 삼성디스플레이 ‘플렉스 하이브리드’. <사진=삼성디스플레이>
폴더블과 슬라이더블, 두 가지 혁신 기술이 하나로 집약된 삼성디스플레이 ‘플렉스 하이브리드’. <사진=삼성디스플레이>

전문가들은 반도체 못지 않게 디스플레이 산업의 중요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 만큼, 고급 인력 양성을 위한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교수는 “디스플레이 인력 양성을 위한 정책 역시 반도체 수준으로 마련돼야 한다”며 “반도체의 경우 특화단지 조성과 계약학과 확대 등 전문 인력 양성에 한창인데 디스플레이는 아직 그런 논의도 없다”고 꼬집었다.

이동욱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부회장은 “반도체에 집중된 관심으로 디스플레이 전문 인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차세대 디스플레이와 혁신 기술을 개발하려면 석·박사급 고급 인력 양성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올해 산업부가 미래 디스플레이 공정‧장비‧소재 전문가 뿐만 아니라 무기발광 디스플레이 전문 인력 양성 사업, 산업계 주도 인력 양성 기관 설립 등을 추진하기로 한 것으로 안다”며 “이같은 정부 계획이 실제로 시행돼 고급 인력이 하루 빨리 배출되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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