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인재양성 비상] ① ‘반도체 한파’ 보다 더 심각한 인력난…“의대로 몰리는 반도체 인재들”

시간 입력 2023-04-24 07:00:01 시간 수정 2023-04-24 04:3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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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부족 고급 인력 1752명…2031년엔 5.4만명 달할 수도
고급인력 이탈 심각…삼성·SK, ‘반도체 인력 양성 중요’ 한 목소리
정부, 향후 10년 간 인재 15만명 육성…대학 입학 정원 늘린다
1년 단기 교육 대책도 내놓지만…“전문 역량 갖추기 어려워”
업계 주도 인력 양성이 해법…학생 가르칠 교수 재원 확보도 절실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전략 산업과 각 산업별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분야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진 가운데 미국, 중국 등 주요국들이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한 기술패권 경쟁에 사활을 걸고 있다. 세계 각국 간 경쟁이 격화하면서 그간 글로벌 시장을 선도해 온 우리나라 역시 차세대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정작 산업 현장에서는 첨단 기술 개발을 위한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계속되고 있다. 이에 CEO스코어데일리는 미래 디지탈산업의 핵심인 반도체를 비롯해 첨단 디지털 산업을 이끌어나갈 인재 양성 실태를 살펴보고, 글로벌 경쟁력을 이어가기 위한 인재발굴 방안 등을 3회에 걸쳐 조명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등 세계 주요 국가들이 반도체 지원법을 제정해 디지털 산업의 근간이 되는 반도체 육성에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도 범 국가적으로 반도체 관련 산업의 투자를 확대하기 위한 반도체 지원법 제정을 통해 경쟁력을 끌어 올리는 시도가 전개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반도체 수요 급감과 가격하락에 따른 이중고로, 이른바 ‘반도체 한파’가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경쟁업체와 격차를 더 벌이기 위한 ‘기술 초격차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와 함께 기술 초격차 구현을 위한 기술 인재 확보에 사할을 걸고 있다.

그러나 기업 차원의 대규모 투자에도 불구하고, 국내 반도체 업계의 구인난은 날로 더 심화하고 있다. 삼성·SK를 필두로 관련 기업들이 반도체 관련 전문인재 육성에 사할을 걸고 있지만, 출산율 감소에 따르는 경제인구 감소, 고급 기술인력들이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등 미래 디지털 산업분야 보다는 의료 등 다른 전문분야로 유출되면서 한계상황을 맞고 있다. 

이같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정부도 나서고 있지만, 상당 부문이 당장 보여주기식 단발성 정책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정부나 대학, 기업 모두 미래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더 고도화하기 위한 중장기적인 로드맵을 갖고 반도체 인재육성 정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외면 받는 반도체 계약학과…의대 등 타 분야로 인재 이탈 심각

산업통상자원부의 ‘산업기술인력수급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산업 기술 인력은 2021년 기준 10만4004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2020년 9만9285명 대비 4.8%(4719명) 늘어난 수치다.

이중 첨단 기술 개발의 첨병 역할을 맡고 있는 석·박사급 인력은 2021년 기준 9170명(석사 6706명, 박사 2464명)으로 나타났다. 반도체 산업에 종사하는 석·박사가 전체의 10%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비단 최고급 전문 인재만 부족한 것이 아니다. 국내 반도체 업계 전체 인력 부족 문제도 심화되고 있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최근 5년 간 반도체 산업분야의 기술 부족 인력은 △2017년 1423명 △2018년 1528명 △2019년 1579명 △2020년 1621명 △2021년 1752명으로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일각에선 향후 10년 간 반도체 부문의 인력부족이 3만명에 달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내놓고 있다.

7일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방문해 생산 현장을 둘러보는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사진=연합뉴스>

전문가들은 특히 반도체 산업 분야를 이끌어 나갈 고급인재들이 타 산업분야로 이탈하는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 당장, 삼성, SK 등 반도체 기업의 취업이 보장되는 이른바 반도체 계약학과가 우수 학생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다. 

실제로 올해 2월 종로학원이 서울대·연세대·고려대의 추가 합격자 발표 내용을 분석한 결과,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의 추가 합격자는 11명인 것으로 조사됐다.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의 모집 인원은 10명이다. 해당 학과 학생들은 삼성전자 채용이 보장된다. 그러나 해당 학과에서 11명의 추가 합격자가 나온 것으로 발표되면서 사실상 1차 합격자 전원이 등록을 포기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뿐만이 아니다. 올해 수도권 주요 대학의 반도체 계약학과 최초 합격자의 등록 포기율은 155.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와 연계된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등록 포기율은 130.0%에 달했다. SK하이닉스와 연계된 고려대 반도체학과와 서강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의 등록 포기율도 각각 72.7%, 80.0%를 기록했다. 한양대 반도체공학과는 등록 포기율이 무려 275.0%에 달했다.

대기업과 함께 협력해 만든 대학의 반도체 계약학과가 정작 우수 학생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는 것이다. 교육계에서도 반도체 계약학과를 비롯해 기술인재들의 이탈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우수 인재들이 과학기술분야에 몰리고, 이를 기반으로 첨단 기술산업을 일궈온 산업 생태계에도 균열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종로학원 관계자는 “대기업이 앞장서서 반도체 계약학과를 만들고, 이를 통해 인재 확보에 힘쓰고 있지만 의·약학계열, 서울대 이공계 등에 밀려 학생 수급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업계도 미래 인재 육성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김기남 삼성전자 SAIT(옛 종합기술원) 회장은 지난 2월 1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림대 도헌학술원 개원 기념 학술 심포지엄에서 “반도체 첨단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인력”이라 면서 “우수한 인력을 통해 만들어진 최첨단 기술로 규모의 경제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2월 15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림대 도헌학술원 개원 기념 심포지엄에서 기조 연설을 하고 있는 박정호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부회장. <사진=연합뉴스>

특히 그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삼성전자도 반도체 계약학과를 만드는 등 노력을 기울였는데 잘 안 된다”며 “이는 기업이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고 국가와 학계, 산업계가 공동으로 노력해 선순환 사이클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정호 SK하이닉스부회장도 반도체 인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박 부회장은 “반도체 계약학과에 입학하기로 한 학생들이 끝내 안 들어왔다고 한다”며 “이같은 인재 이탈이 지속되면 2031년께 학·석·박사 기준으로 총 5만4000명 규모 반도체 전문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이어 “반도체 인재 양성을 위해 일부 대학이 아닌 전국 지역 거점 대학에 반도체 특성화 성격을 부여하는 것도 고려해봐야 하는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기업들, 인력 육성 자구 노력…삼성, 과학기술원 3곳서 학·석사 통합 우수 인재 양성

인력 수급에 비상이 걸린 업체들은 직접 인재 육성에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는 울산·대구·광주 등 3개 과학기술원과 반도체 계약학과 신설 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에 따라 삼성전자와 울산과기원(UNIST), 대구과기원(DGIST), 광주과기원(GIST) 등 과학기술원 세 곳은 올 하반기부터 신입생을 선발해 내년 3월부터 계약학과를 운영키로 했다. 과학기술원 세 곳에 신설되는 반도체 계약학과는 학사·석사 교육을 통합한 최초의 ‘학·석 통합 반도체 계약학과’ 과정으로, 교육 기간은 총 5년이다. 학·석사 과정을 통합해 우수 전문 인재를 원스톱으로 양성한다는 구상이다.

선발 인원은 △UNIST 40명 △DGIST 30명 △GIST 30명 등 총 100명이다. 삼성전자는 향후 5년 간 반도체 인재 총 500명을 양성한다는 포부다. 이들은 반도체 전액 등록금과 장학금을 받을 수 있고,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으로의 취업도 보장된다.

지난달 27일 광주과학기술원(GIST)에서 열린 삼성전자와 GIST 간 반도체 계약학과 신설 협약식. <사진=삼성전자>

이번에 공정 전문가를 육성하는 계약학과 3곳이 신설되면서 삼성전자는 반도체 계약학과를 통해 △설계 △SW △공정 등 반도체 핵심 분야 인재를 골고루 양성할 수 있는 체계를 완성하게 됐다.

앞서 삼성전자는 국내 반도체 전문 인재 양성을 목표로 2006년 성균관대, 2021년 연세대, 지난해 KAIST, 올해 포항공대 등 4개 대학과 차례로 반도체 계약학과 신설 협약을 맺고, 현재까지 운영해 오고 있다.

송재혁 삼성전자 DS부문 최고기술경영자(CTO)는 “계약학과 신설로 서울·대전·포항에 이어 울산·대구·광주에도 반도체 인재를 체계적으로 육성할 수 있는 거점을 마련하게 됐다”며 “이는 반도체 강국이라는 위상에 걸맞은 인재를 지속 확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또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정부와 손잡고 우수 전문 인재 육성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정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참가하는 ‘민·관공동투자 반도체 고급인력양성사업’을 올해부터 본격 추진키로 했다. 정부와 기업이 각각 절반씩 R&D(연구개발) 자금을 마련해 대학과 연구소에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2032년까지 총 2228억원을 투입해 석·박사급 반도체 인력 2365명 이상을 양성할 예정이다.

이번 사업은 기존 반도체 인력 양성 사업과 성격이 다르다. 기존에는 정부가 대학이나 연구소, 기업 등에 투자하고, 이를 통해 길러진 인재들의 취업을 보장해줬다. 이러다 보니 실제 육성된 인재와 기업이 원하는 인재 간에 격차가 컸다. 그러나 이번에는 처음부터 정부와 기업이 함께 우수 인력을 양성한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결국 인재를 활용하는 곳은 기업이다”며 “기업의 입맛에 맞게 전문 인력을 양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 대책 내놨지만 업계 상황 제대로 반영 안 돼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7월 ‘반도체 인재 양성 방안’을 발표하면서 향후 10년 간 반도체 인재 15만명을 육성한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2031년까지 반도체 산업 기술 인력 수요가 30만4000명까지 증가할 것이란 분석에 따른 것이다.

정부는 수도권과 지방 구분 없이 반도체 등 첨단 분야와 관련된 학과의 입학 정원을 늘릴 수 있도록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우선 ‘계약정원제’를 통해 일반 학과 정원을 20% 이내에서 한시적으로 늘려 채용 연계형 교육 과정을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반도체 계약학과의 경우 대학 전체 입학 정원의 20%까지만 받을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최대 50%까지 확대할 수 있다.

지난해 6월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화성캠퍼스 생산라인에서 3나노 웨이퍼를 보여주고 있는 정원철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상무(맨 왼쪽부터), 구자흠 부사장, 강상범 상무. <사진=삼성전자>

업계는 반색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최근 학생들이 극심한 구직난에 시달리는 동안 반도체 업체들도 덩달아 구인난에 허덕이는 ‘채용 미스매치’가 지속돼 왔다”며 “이번 규제 개선으로 반도체 산업 현장에서 필요한 인력 풀이 대폭 늘어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이 너무 근시안적이라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가장 논란이 된 것은 1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속성교육을 통해 배출한 인재를 반도체 업체에 취업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지난 13일 교육부와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은 ‘첨단산업 인재양성 부트캠프’에 참여할 10개 대학을 모집한다고 밝혔다.

첨단산업 인재양성 부트캠프는 반도체 등 첨단 산업의 특성을 반영한 새로운 인재 육성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업계의 요구를 반영해 마련된 신규 프로그램이다. 다양한 분야의 학생들에게 대학과 기업이 공동 운영하는 단기 집중 교육을 제공하고, 반도체 업체에 취업할 수 있도록 돕는다.

교육부는 올해 일반대 5개교, 전문대 5개교를 선정해 향후 5년 동안 총 150억원을 지원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통해 연간 100~300명의 인재를 배출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최은희 교육부 인재정책실장은 “이번 사업은 기업과 소통·교류를 활성화하고, 교육의 현장성을 높이는 대학 교육의 혁신 사례가 되기를 기대한다”며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융‧복합 인재로 성장해 첨단 산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1년 이내의 짧은 교육 기간으로 전문성을 갖춘 우수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지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반도체 기술 경쟁이 날로 첨예해지는 상황에서 일회성 프로그램으로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계의 눈높이를 충족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교수는 “반도체 인력을 육성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알겠지만 단기 집중 교육으로 얼마나 수준 높은 인재를 배출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며 “시간이 들더라도 중장기적인 플랜을 가지고 우수한 전문 인력을 키워내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7일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방문해 생산 현장을 둘러보는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사진=연합뉴스>

전문가들은 국내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선 정부가 업계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이를 토대로 우수 전문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창한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은 “국내 학생 수가 줄어드는 데다 석·박사 과정으로 진학하려는 비율도 줄어들고 있다”며 “이러한 현실을 고려할 때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직접 주도해 미래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고급 인력은 업계에서 내생적으로 양성하는 것이 유리하다”며 “대학을 졸업해 공학 분야의 기초적인 배경 지식을 갖춘 학생들이 산업 현장에서 실무를 통해 업그레이드하면 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해외 인력 유치를 위한 이민 정책 등 제도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대규모 R&D 지원을 통해 반도체 분야로의 진출을 꿈꾸는 교수와 학생 모두를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글로벌 선두 주자로서 첨단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석·박사급 우수 인력이 필요하지만 이들의 수가 너무 적다”며 “특히 반도체를 깊이 있게 공부한 전문 인력이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김 단장은 반도체 인재 부족의 원인으로 교수 인력 부족을 꼽았다. 김 단장은 “결과적으로는 교수가 없으니 이들을 가르칠 석·박사 인력도 부족한 것이다”며 “국내 반도체 업계에 필요한 전문 인력을 육성하기 위해 교수 재원 확충이 우선돼야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학계에 대한 정부의 과감한 R&D 지원이 우리나라 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뒷받침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고 덧붙였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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